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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배 비싼 선풍기도 완판 하는 '발뮤다'의 비결

by 강센느

여름의 필수 가전인 선풍기는 오랜 기간 늘 똑같은 모습이었습니다. 형태도, 기능도, 가격도 큰 차이가 없었죠. 그런데 그 오랜 정적을 깨고 혁신적인 선풍기와 함께 “디자인 가전” 트렌드의 바람을 몰고 온 브랜드가 있었으니, 그 주인공은 바로 '발뮤다(BALMUDA)'입니다. 일본의 작은 기업이었던 발뮤다가 만든 선풍기는 출시 당시 무려 기존 제품의 10배에 가까운 가격이었음에도 완판 행진을 이어갔는데요. 대체 무엇이 이 제품을 그렇게 만들었을까요?


발뮤다 그린팬 ©BALMUDA


발뮤다는 원래 노트북 받침대, LED 스탠드 등을 하이퀄리티로 제작하여 고가로 판매하는 브랜드였습니다. 그런데 2008년 리먼사태가 벌어지면서 시장에서 고가의 제품들이 전혀 팔리지 않는 상황이 벌어졌고, 이에 발뮤다는 도산 위기에 처했습니다. 이때 창업자 테라오 겐은 결과적으로 사람들에게 ‘꼭 필요한 물건’만이 남는다고 깨닫게 됐고, 사람들의 생활에 정말로 필요한 제품을 개발해야겠다고 다짐합니다.


발뮤다의 첫 제품 X-base(노트북 받침대) ©BALMUDA


이러한 새로운 지침 아래 처음으로 선택한 제품은 선풍기였습니다. 경기가 어려워진다 해도 선풍기는 에어컨보다 먼저 사람들이 찾게 되는 필수 제품이고, 또 지구 온난화 시대의 해결책으로도 에어컨보다 더 나은 대안이라는 점이 발뮤다 창업자 테라오 겐의 마음에 와닿았습니다.


테라오 겐은 새로운 선풍기 개발에 착수하면서 우선 기존 선풍기가 가진 문제점이 무엇인지에 대해서 고민했습니다. 그렇게 그가 발견한 가장 큰 문제점은 선풍기의 바람에는 특유의 ‘소용돌이 성분’이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이 때문에 자연의 바람과 달리 선풍기 바람은 다소 인공적인 느낌의 불편한 바람이 형성되고 이러한 연유로 선풍기를 쓰는 사람들은 선풍기 바람을 직접적으로 맞는 것을 꺼려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선풍기 제작에 열을 올리며 공장을 방문하던 테라오 겐은 어느 날 공장 장인들이 선풍기를 독특한 방식으로 사용하는 모습을 발견했습니다. 그들은 선풍기 바람을 바로 쐬지 않고 벽에 부딪혀, 한 번 튕겨 나온 바람을 쐬고 있었습니다. 테라오 겐이 그 이유를 묻자 공장 장인들은 “이렇게 하면 바람이 부드러워진다”라고 답했고 테라오 겐이 직접 비교해 보니 과연 선풍기 바람을 직접 쐬는 것과 비교했을 때 벽에 부딪혀서 쐬는 바람이 더 부드러운 것을 체감할 수 있었습니다. 즉, 선풍기 바람의 소용돌이 성분이 벽에 부딪히면서 깨지고, 그 덕분에 바람이 자연의 바람과 비슷하게 넓게 퍼져나가는 바람으로 바뀐 것입니다.


“이 바람을 만드는 것을 목표로 하자”


테라오 겐은 그렇게 새로운 선풍기의 개발 방향성에 이정표를 얻었습니다. 하지만 벽 없이 선풍기 본체의 구조만으로 자연의 바람을 만들어내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수차례 제품 개발에 실패하며 난항을 겪고 있던 그는 어느 날, TV에서 아이들이 서로의 발을 끈으로 묶고 달리는 이인삼각 경주를 보게 됩니다. 서로의 발이 묶인 채로 앞으로 나아가다 보니 부딪히고 엉키고를 반복하는 아이들의 모습을 보면서 그는 어쩌면 똑같은 일이 바람에서도 일어날지도 모른다는 영감을 얻었습니다.


발뮤다 그린팬의 날개 디자인 ©BALMUDA


그리고 이를 통해 생각해 낸 것이 바로 이중구조 날개였습니다. 내측의 느린 바람이 외측의 빠른 바람을 끌어당겨 한 점에서 서로 부딪히면 소용돌이 성분을 없앨 수 있을 거라 생각했고 그대로 실험을 해보니 정말로 소용돌이 성분 없이 넓게 퍼져나가는 부드러운 바람이 불었습니다. 그리고 더 부드러운 바람을 만들기 위해서 기존 선풍기에는 사용된 적이 없는 고가의 DC 모터를 세계 처음으로 채용했습니다. 그 결과, 세상에서 가장 부드러운 바람을 만드는 선풍기가 개발되었지만 가격은 기존의 선풍기들보다 최대 10배 비싼 선풍기가 되었습니다.


하지만 제품 가격은 테라오 겐에게 큰 걸림돌이 되지 않았습니다. 그는 정말 좋은 제품이라면 가격이 얼마든 고객이 찾아줄 것이라는 믿음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이러한 연유로 그는 기능성뿐만 아니라 심미성까지도 갖춘 선풍기를 만들기 위해서 기존의 선풍기와는 완전히 다른, 새로운 디자인을 고안해 내는 것에도 많은 시간을 할애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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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존 선풍기 디자인(좌) / 발뮤다 그린팬 디자인(우)


이러한 그의 노력 끝에 탄생한 발뮤다 그린팬은 군더더기 없는 미니멀한 외관에 심플한 조작 방식까지 갖춘 혁신적인 제품이었고 기존 제품보다 10배 이상 비싼 가격이었음에도 '선풍적인 인기'를 얻을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발뮤다 특유의 심플한 디자인 덕분에 '가전계의 애플'이라는 별칭까지 얻으며 발뮤다의 인기는 고공행진하게 되었습니다.


흔히 제품을 개발할 때 '가격 경쟁력'을 최우선 과제로 삼는 경우가 많습니다. 혹자는 가격 경쟁력을 갖춘다는 명목으로 원가절감을 위해 제품의 부품을 더 값싼 소재로 교체하기도 하죠. 하지만 발뮤다의 스토리는 꼭 가격이 전부는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게 해 줍니다. 만약 고객에게 기존 제품보다 10배 이상 나은 경험을 제공해 줄 수 있는 제품이라면 가격이 10배 이상 비싸도 고객의 지갑은 열린다는 사실을 증명해 냈으니까요. 그러므로 정말 좋은 제품이라는 확신이 있다면 어떻게 가격 경쟁력을 갖출 것인지를 고민하기보다 어떻게 이보다 더 나은 경험을 제공할 것인지를 고민해 보세요. 그럼 고객들은 아무리 비싼 가격이어도 기꺼이 지갑을 열 테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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