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ㅎ..지..ㄴ..!’
‘가..ㅇ..혀…ㄱ..진!’
곤히 자고 있던 설 명절 새벽. 희미하게 누군가를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꿈인가 싶었다. 아니, 꿈치고는 너무 생생했다. 눈뜨기 힘들 걸 보니 잠든 지 얼마 안 된 새벽이라는 걸 직감할 수 있었다. 희미했던 소리가 순식간에 선명해졌다. 이 목소리, 분명 내 이름을 부르는 아내의 목소리였다.
‘강혁진!!’
직감할 수 있었다. 무슨 일이 나도 크게 났다는 걸. 잠들기 전에 벗어 둔 안경을 집어들 생각도 하지 못한 채 아이와 아내가 자고 있던 옆 방으로 용수철처럼 튀어갔다.
“왜 무슨 일이야?”
“내가 몇 번을 불렀는데 이제야 일어나! 당장 불 좀 켜봐!”
조금 억울했다. 난 분명 내 이름이 들리자마자 일어났는데. 잠결에 조금 억울하기도 했고 의아하기도 했다. 하지만 무슨 일이냐고, 억울하다고 이야기할 타이밍이 아니라는 건 온몸으로 느낄 수 있었다. 아내와 처음 만난 건 8년 전이었는데, 이렇게 크게 아내가 소리를 지르는 건 처음이었으니까. 안방 전등 스위치를 켰다. 수유등으로 희미하게 밝혀지던 방안이 순식간에 환해졌다. 아내는 앉은 채로 이서를 안고 있었다.
이서가 구토를 했다. 옷이며 이불이며 할 것 없이 사방이 엉망이었다. 더러워진 요와 이불을 갈아내고 옷을 갈아입혔다. 전날 처가 식구들이 모여 맛있는 음식을 잔뜩 먹었다. 아이도 랍스터를 배부르게 먹은 터였다. 처음에는 그저 아이가 소화가 안 됐나 싶었다. 그런데 조금 이상했다. 아이들이 토하는 거야 흔한 일이지만 멀쩡히 자고 있던 아이가 일어나 토하는 일은 없었다. 아이의 등에 낮은 베개를 깔고 상체를 조금 세운 체 눕혔다. 그 순간, 아이는 다시 구토를 시작했다. 다시 이불과 요를 갈고 옷도 갈아 입혔다. 그리고 이서는 다시 구토를 했다.
4번째 구토를 하고 나서였을까, 119에 전화를 했다. 119는 구조서비스를 제공하기도 하지만 의료지원 서비스도 제공한다. 의사인지 구급대원인지 알 수 없는, 전화기 너머의 사람에게 아이의 증상을 이야기했다. 상체를 조금 세워 재워보라고 했다. 이미 그렇게 해도 구토가 멈추지 않는다고 했다. 그러자 그는 한 번 더 같은 자세로 재워도 구토를 하면 바로 병원에 가라고 했다. 그러면서 소아응급실이 있는 병원들을 일러주었다.
이서는 첫 구토를 시작한 지 1시간 만에 5번째 구토를 하기 시작했고 우리 부부는 부랴부랴 짐을 챙겼다. 4시 30분. 119에서 알려준 병원 중에 가장 가깝고 큰 병원은 서울에 있었다. 고속도로에 차를 올렸다. 조심히, 안전히 그리고 빠르게 달렸다. 20분 만에 병원 소아응급실 앞에 도착했다. 자동문 앞에는 나보다 몇 살쯤 어려 보이는 남자가 서 있었다. 그 남자를 지나쳐 응급실 자동문 앞에 섰다. 보호자는 한 명밖에 들어가지 못한다고 했다. 아까 문 앞에 서 있던 그 남자도 가족을 기다렸나보다.
아내가 아이를 안고 응급실 안으로 들어갔다. 아내의 뒷모습이 더는 보이지 않게 되자 왈칵 눈물이 차올랐다. 이성적으로 생각해보자면 당연히 별일이 없을 거라는 생각도 들었지만, 머릿속에는 온갖 생각이 교차했다. 소아응급실 앞 야외에 임시로 만들어 둔 대기공간에서 기다리다가 차로 향했다. 시동을 켜지 않은 차 안은 롱패딩을 입고 있어도 버틸 수 없을 정도로 추웠다. 병원 본관 로비에 있는 의자로 자리를 옮겼다. 그렇게 4시간이 지났다.
아내에게 카톡이 왔다. 장염이라고 했다. 익숙한 병명을 듣고 나니 그제서야 마음이 놓였다. 하지만 치료받는 상황은 녹록지 않았다. 병상이 다 차서 이서는 수유실 소파에 누워 수액을 맞고 있다고 했다. 아내가 사진 한 장을 보내왔다. 밤새 구토로 고생하다가 약이 포함된 수액을 맞으며 겨우 잠든 아이의 사진이었다. 곱게 잠든 아이의 얼굴을 보며 안도의 마음이, 아이의 손에 꽂힌 수액주사를 보며 측은함과 미안한 마음이 동시에 들었다.
아내가 아이와 함께 응급실을 나섰다. 수액 말고 병원에서 더 해줄 수 있는 건 없었다. 아이를 차에 태우고 다시 집으로 향했다. 오는 길에도 아이는 구토를 했다. 집에 돌아온 아이는 구토 대신 설사를 시작했다. 오후까지 7~8번은 설사를 했던 것 같다. 탈수가 오지 않도록 물을 먹여가며 간호를 했다. 지쳐 쓰러져 오후 늦게 낮잠을 자고 일어난 뒤에야 아이의 구토와 설사가 잦아들기 시작했다. 다행이었다. 그렇게 아이는 조금씩 컨디션을 회복했다. 그 뒤로도 얼마간 제대로 먹지 못하고 간혹 구토를 하기도 했지만 빠르게 나아졌다. 한 달 가까이 지난 지금은 언제 아팠냐는 듯 잘 먹고 잘 뛰어논다.
자기를 걱정해준 어른들의 마음을 알았던 걸까? 묘한 경험을 하나 했다. 설 연휴가 끝난 바로 다음 날, 아픈 아이를 조금이라도 더 돌보기 위해 재택근무를 했다. 아침 일찍, 아직 기력이 채 돌아오지 않은 아이를 안고 처가에 도착했다. 아이를 내려놓은 순간, 할머니와 할아버지에게 다가간 아이가 두 사람을 차례로 안아주었다. 그리고 나까지. 그냥 안아주기만 한 것이 아니었다. 작은 손을 까딱까딱 거리며 어른 셋을 토닥여주었다. 어떤 의미를 담은 토닥거림이었는지는 알 수 없었지만 적어도 아이의 작은 손짓이 어른 셋에게 감동을 준 것만은 확실했다. 순간 내 심장이 빠르게 뛰었다.
구토를 하며 얼굴이 빨갛게 달아오를 정도로 고통스러워 했던 아이, 그리고 그 고통을 지켜보는 양육자 모두 서로의 소중함을 깊게 느꼈으리라 믿는다. 그리고 우리가 함께 느낀 고통의 크기만큼 살을 부대끼고 사는 ‘가족'으로서의 사랑도 커졌으리라 믿는다. 아이가 더 이상은 아플 일이 없으면 좋겠지만 그럴 수 없음을 안다. 별수 있겠나. 그저 아이가 아플 때면 우리 가족의 사랑이 깊어지는 시간으로 여기고 잘 간호하는 수밖에.
2023-2-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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