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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혁진 May 07. 2024

뒷것 김민기 그리고 인간 김장하

어떻게 살 것인가

1. 몇달 전, 연예인들이 TV 프로그램에 나와 한 공연장의 폐관 소식을 전하는 걸 봤다. 경영난을 겼던 대학로의 오래된 공연장이 문을 닫는다는 이야기였다. 내심 나는 세월의 흐름을 이겨내지 못한 오프라인 공간의 폐관에 유명 배우와 가수들이 저리 나서는 까닭이 궁금했다. 


2. 그리고 얼마 전 우연히 한 다큐멘터리를 봤다. '뒷것'이라 불리는 연출가 김민기를 다룬 3부작. 얼마 전 대학로에서 폐관한다던 공연장은 김민기가 운영하던 '학전'이라는 곳이었다. 다큐는 김민기가 어떤 사람이었고, 그가 학전을 만들게 된 계기, 학전을 거쳐간 수많은 배우와 가수들의 이야기를 담았다. 그리고 그 다큐를 보면서 김민기가 얼마나 대단한 사람인지를 알 수 있었다. 


3. 김민기는 아침이슬, 상록수를 짓고 직접 부른, 우리나라 최초의 싱어송 라이터다. 그러나 독재군부 시절 고초를 당한 그는 공장 사무직, 농부로 살며 뒷것의 삶을 시작했다. 노동자들을 위한 음반을 몰래 제작해 유통하기도 했고, 쌀 농사를 지으며 연천의 농부들이 전국으로 직거래를 활 수 있도록 해주었으며, 후배들의 요청으로 서울에 유치원을 짓기 위해 자선공연을 열기도 했다. 


4. 그가 극단이자 공연장인 학전을 만들고 나서는 수 많은 공연과 작품이 무대에 올랐다. 승승장구하던 그는 어느날 '어린이 뮤지컬'을 시작한다. 돈이 안되기로 소문난 어린이 공연을 오랜 시간 끌고간 그는 공연이 있을 때마다 아이들의 웃음 소리를 듣고자 매번 객석에 내려왔다고 한다. 


5. 김민기의 일대기를 보며 '어른 김장하'가 떠올랐다. 꼭 봐야 한다는 이야기만 듣다가 얼마 전 참여한 모임에서 적극 추천을 받아 이제서야 챙겨본 다큐멘터리. 진주시에서 한의원을 운영하던 김장하씨의 이야기다. 어린 나이에 한의사가 되어 큰 부를 이룬 김장하는 그 돈을 평생 좋은 일에 썼다. 


6. 지역 신문사를 먹여살리기도 했고 역사적으로 인정받지 못한 사람들을 기억하는데 돈을 아끼지 않았다. 나아가 고등학교를 만들어 운영하다가 국가에 헌납하기도 했다. 그가 지역에서 후원하여 대학까지 마친 학생들의 수는 정작 본인이 기억하지도 못할 정도로 많았다. 그런 그는 평생 자가용 한번 사지 않고 검소한 생활을 이어왔다. 


7. 두 사람의 모습을 보며 어떻게 살 것인가를 떠올린다. 고민이 많은 시기다. 나는 어떤 일을 하고 살것인지, 가족은 어떻게 잘 꾸려 나가야 할지, 아이 교육은 어떻게 해야 할지. 남들 다하는 고민이라지만 정작 내 입장에서는 어떤 고민하나 쉬운 일이 없는 것이다. 하지만 고민이 스스로를 멈추게 두어서는 안된다. 고민은 고민한다고 해결되지 않는 법이다.


8. 김장하는 자신이 누군가를 돕는다는것을 결코 외부에 알리지 않았다. 다큐를 찍으면서 그제서야 밝혀진 기부처가 드러나기도 했다. 김장하가 한 단체에 기부하는 것이 알려지자 전화로 쌍욕을 하는 사람도 있었다. 김민기 역시 자신이 그 옛날 아침이슬과 상록수를 비롯해 수많은 명곡을 짓고 불렀다는 것을 드러내기 싫어했다. 하지만 두 사람은 남을 돕는 선행과 새로운 콘텐츠를 만드는 일을 멈추지 않았다. 


9. 고민은 고민대로 두고 자신이 할 수 있는 이어가는 것, 그것만이 자신을 구원하는 일이 될 것이다. 어떤 고민이 나를 막고 있더라도, 타인이 내가 만든 결과물에 대해 하는 평가가 좋지 않을지라도, 내가 옳다고 생각하는 일을 꾸준히 해나가는 것이야 말로 가장 기본이 되는 일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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