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마냥 Nov 29. 2017

곁까지 소요시간은 얼마나, 휴게소는 어디쯤.

6월의 화요일 : 곁



06.06


그대 곁이면, 
그저 곁에서만 있어도 행복했단 걸

- 악동뮤지션, '오랜 날 오랜 밤' 中


의외로 마지막 날
한적하다
함께 이 텅 빈 밤을 걸어갈까

- 성기완, '한적한 엔딩' 中


우리 중 어느 누구도 마지막을 언급하지 않았다. 그러나 이들은 나의 아쉬움을 짐작하고 있을 테다. 어쩌면 홀로 챙기는 '마지막' 앞에 울컥하는 마음을 일단 오늘 일을 다 끝나고 나서 살피자는 다짐도, 같이 점심을 먹으러 뒤꽁무니를 급히 쫓아가는 발걸음도, 어디를 가나 살피는 눈길도, 일 하다 말고 먼 산 내다보려 사무실 밖을 자꾸 찾게 되는 심정도, 이들은 모른다. 그러나 이들은 나의 불안한 상태를 안다.

그리하여 나는 또 똑같은 질문 앞에 선다. 이런데 이들을 사랑하지 않을 수 있냐고. 이것은 내가 믿고 싶은 나만의 허상이냐고. 어리석은 사회 초년생의 질척거림이냐고. 이런 나를 버려야 하냐고. 그렇지 않다면 이런 나를 도대체 어떻게 해야하냐고.

이제 우리를 역사 속으로 보낸다. 주절거린 투정과 어리광은 모두 나의 짙은 애정과 의리에 의한 것임을 언급하며 글을 마무리한다. 2년이 넘는 시간 동안 '우리'로 일하는 날들이 무던히 좋았다. 힘든 날이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곁이 좋아 시간 가는 줄도 모르고 시간을 보내왔다. 적당한 거리에서 서로에 대한 인정, 믿음, 배려가 있었기에 가능하였고, 그럴 줄 아는 사람들이었기에 마음껏 좋아할 수 있는 행운이 내 곁에 있었다.

우리가 '나'이자 내가 '우리'였던, 소중한 시간을 이제 추억으로, 덤덤히 그 시간 위를 걸어가자.

- 마지막 앞에 선 어느 날의 기록


곁이 좋아, 날도 좋았던 무던한 시간들




06.13.


곁이라 함은 어느 정도의 거리를 뜻하는 것일까. 그 거리 밖은 왜 이리 두렵고, 그 거리 안은 또 얼마나 외로울 수 있는가. 곁이라 부르는 우리 사이의 거리가 매일 달라진다. 멀어지기도 했다가 가까워지기도 한다. 불안을 달래려 사랑을 꺼낸다. 더 큰 마음의 사랑은 어디서든 해피엔딩을 만들어주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품는다. 잃어버릴는지, 잊어버릴는지. 그에게 달린 우리 사이의 거리, 오늘은 몇 km나 될까.


잠깐 미친척하고 전속력으로 다녀올까. 주변 따위 신경 쓰지 말고.




06.20.


1.

곁을 조금씩 비운다.

푸른 잔디밭이 보인다.


이내 싹도 자라고 꽃도 피어서

홀로 있어도 외롭지 않게 하소서.


2.


너의 선물이라고 해두자
그것은 상어에게 물어뜯긴 언어의 따끈따끈한 걸음걸이
반짝이는 비늘을 번번이 바닷가에 흘리고야 마는 너의 오래된 실수

기어이
서글픔이 다정을 닮아간다
피곤함이 평화를 닮아간다

고통은 슬며시 우리 곁을 떠난다

- 김소연, '너를 이루는 말들' 中


네 곁에서 비로소 내쉴 수 있던 숨, 가끔 이렇게 쉬었다 갈게.




06.27.


1.

내 입으로 차마 꺼낼 수 없던 말을 타인을 통해 들었다.


'그때의 사람들이 그립구나-'


그립다 하면 더 그리워질까 봐, 보고 싶다 하면 더 보고 싶을까 봐 누구에게도 하지 못했던 말을 들었다.

약간의 감정적 해소를 대리만족한 후의 집으로 가는 밤 길, 어찌나 당신들 생각이 나던지. 얼마나 어지럽던지. 울렁거리기까지 하더라.


+ 한참의 시간이 흐른, 지금도 혼자서 가끔 그래. 울렁거리면서 밤길을 돌아다녀. 우리 생각에.


네가 만들어 준 시계를 들여다보면서, 그런 생각을 했어.
시침과 분침이 겹쳤다가 떨어지는 순간, 그건 멀어지는 걸까. 아님 다시 가까워지는 중인 걸까.

- 김중혁, '가짜 팔로 하는 포옹' 中


2.

당신에게 위안을 주는 사람이라고 해서 그가 하는 말처럼 소박하고 평안하게 산다고 생각하지 마라.
그 역시 어려움과 슬픔 속에서 살고 있으며, 당신보다 훨씬 더 뒤처져 있을 수 있다. 그렇지 않으면 그 좋은 말들을 결코 찾아낼 수 없었을 것이다.

- 라이너 마리아 릴케


때로 너는 내게 위안을 주는 사람이고, 때로 나는 네게 위안을 주는 사람이야.

손도 한번 맞잡아 보고, 어깨동무도 해보고, 포옥 껴안아 보기도 하자. 나나 너나 하니.



월간 4X5 <다섯 개의 단어, 스무 번의 시>는 한 달 동안 다섯 개의 단어, 각 단어 당 네 번의 생각을 정리한 글이다. 동일한 대상에 대한 짧고 주기적인 생각, 무질서한 개인의 감정과 사유를 담았다.

매거진의 이전글 선택의 여파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