뒤끝 작렬 옹졸했던 마음
나이를 먹을수록 주변 상황들로 인해 혹은 나로 인해 화가 나는 일들이 많아졌다. 특히 많은 시간을 보내는 직장과 그와 관련된 사람들 그리고 스스로에 대한 화가 많아졌다. 나의 분노는 어디에서부터 언제부터 시작되었는지 과거를 되짚어볼수록 막 스무 살이 되었던 때였다고 생각했는데, 불현듯 그게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 사실은 어린 시절부터 화를 내었던 것이다. 왜 기억하지 못했을까. 그때도 분명 그때의 주변 상황들이 어린 마음을 다치게 했고 나름 ‘화‘라는 감정을 표출할 줄 알았었다.
이제는 그런 정도는 웃으며 넘길 수 있는 나이가 되었지만 그 시절 어린 마음에도 나름 작고 큰 사건들로 화를 내기도 하고 화를 삭이지 못해 눈물로 지새운 밤이 있었다.
기억으로는 열한 살, 초등학교 5학년 때였던 것 같다. 왜냐면 6학년 2학기가 시작되기 전에 지금 사는 동네로 이사를 왔고 그전까지 3년 반 정도를 새로 지은 디귿자 모양의 복도식 아파트에서 살었었다. 우리 집이 ‘ㄷ’ 디귿자 모양의 위쪽에 있다면 나보다 한 살 어렸던 소위 동네 동생은 디귿자 모양의 아래쪽, 우리 집 바로 맞은편에 살았다. 우리는 각자 집의 현관문을 열고 복도에서도 얼굴을 볼 수 있는 거리에 살았고 엄마들끼리 같은 성당에서 알고 지내던 사이라서 자연스럽게 어울리게 되었다. 디귿자 모양의 복도식 아파트는 참 재미있던 곳으로 기억된다. 그 당시에는 다들 문도 열어 놓고 살았다. 낮에는 물론 여름밤에도 더우면 문을 열어놓고 자던 때였다. 롤러스케이트장 마냥 복도에서 종횡무진 롤러스케이트를 타도 시끄럽다 하는 어른들이 없었다. 대신 “조심히 타라, 넘어질라:”고 걱정스러운 말 한마디씩 하고 가실 뿐이었다.
동네 동생의 이름은 ‘현주‘였다. 한 살 어린 동생이었지만 나보다 키가 두 뼘이나 더 크고 말랐었다. 모르는 사람이 보면 내가 동생이고 현주가 언니라고 오해했을 정도로 체격 차이가 났다. 그리고 항상 예쁜 원피스를 입고 긴 머리를 단정하게 양갈래로 따고 다녔다. 눈이 많이 나빴는지 눈이 아주 커 보이는 볼록렌즈 안경을 끼고 다녀서 안 그래도 큰 눈이 더 커 보였다. 항상 단정한 모습의 그녀가 내 기억에는 참 예뻤다. 우리는 학교 끝나고 굳이 만나자고 하지 않아도 복도에서 자주 마주쳤기 때문에 자주 어울렸다. 특히 여름에는 종종 내가 받은 용돈으로 아이스크림 하나를 사서 나눠먹었는데 지금도 팔고 있는 ‘쌍쌍바’였다. 나는 내가 언니이기 때문에 동생에게 나눠주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했고 그 점에 대해서는 불평불만이 없는 편이었다.
어느 여름날도 어김없이 쌍쌍바 하나를 샀다. 내가 쌍쌍바를 사는 이유는 순전히 나눠먹기 위함이었다. 내 용돈이 많이 받아봤자 1,000원 정도 하던 때였는데 쌍쌍바 하나에 100원이었으니 적지 않은 소비였지만 나눠먹는 기쁨이 있었다.
그날은 유독 현주가 조급해 보였다. 안 그래도 큰 눈이 볼록렌즈를 통해 튀어나올 것 마냥 뚫어지게 아이스크림을 쳐다보고 있었기 때문에 나 또한 조급해졌었는지 쌍쌍바를 정확히 반으로 가르지 못했다. 현주와 나눠먹기 위해 양손의 엄지 손가락과 검지 손가락의 조심스러운 줄다리기가 실패하고 만 것이다. 예전에 먹었던 쌍쌍바 아이스크림은 거의 50프로의 확률로 똑같이 반반 잘라지지 않고 어느 한쪽이 더 크게 잘려나갔던 거 같다.
그 50프로의 확률로 쌍쌍바 한쪽이 더 크게 잘려버린 순간, 현주는 큰 쪽의 아이스크림 막대를 낚아채듯 빼앗아갔고 반대편 막대 쪽의 아이스크림 한 덩이가 덜렁대는 부분을 입을 크게 벌려 한입에 먹어버렸다. 너무 순식간의 일이었다. 순간적으로 내 손에 남아있는 아이스크림을 봤을 때, 현주는 내 손에 남아있던 아이스크림까지 빼앗아 달아나 버렸다. 나는 달아나는 현주의 뒷모습을 보며 소리칠 수밖에 없었다.
“야! 내 쌍쌍바!”
내가 울었었는지는 모르겠다. 조금 화가 났던 것 같다. 그 뒤로 나는 현주를 피해 다녔다. 나중에 이사 갈 때는 그러지 말걸 자책하기도 했다. 현주 어머니는 그동안 고마웠다며 우리 엄마를 통해 내게 예쁜 묵주를 선물해 주셨다. 현주와 제대로 된 인사를 하지 못했던 것이 두고두고 후회가 됐다.
현주는 지능지수가 정상 이하인 지적장애인이었다. 그래서 내가 그녀에게 다정했는지, 정다운 아파트 분위기 때문이었는지, 유독 상냥했던 그녀의 어머니 때문이었는지는 모르겠다. 어쨌든 내게 중요한 건 ‘쌍쌍바‘ 사건 이후로 내가 그녀에게 다정하지 못했다는 점이다. 아마도 친구가 없었던 그녀에게 유일한 친구는 나였을 것이다.
화를 내도 이상하지 않은 상황이었지만 화를 내고도 이내 후회가 되고 두고두고 후회가 되는 화가 있다. 그때의 내가 조금만 더 성숙했었다면 좋았겠다는 후회가 있다. 그래서 더 두고두고 오랫동안 기억에 남았었다. 잠시 잊고 있었지만 나의 ’화’를 되짚어가다 보니 다시금 생각이 났다. 뒤끝 작렬했던 나의 옹졸한 마음과 함께 복도 저 끝에서 나를 보며 해맑게 웃으며 달려오던 나보다 더 언니 같았던 모습의 현주가 잊히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