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고 20대의 마지막 페이지
나의 당찬 2022년 신년 목표는 휴대폰 너머의 그녀의 울먹이는 모습에 처참히 무너졌다. 다시는 안 볼 것처럼, 평생 인연이 끝이라고 다짐하고 다짐했으나, 자신의 일방적인 이별통보를 사과하는 문자 메세지에 흔들렸고, 울먹이는 그녀의 표정에 나의 벽은 무너져 내렸다. 내가 할 수 있는 말은 괜찮다는 말 뿐이었다.
해외 대학원 준비와 이직으로 힘들어하던 그녀는 내게 종종 연락을 하였고, 나는 묵묵히 들어주고 잘할 수 있을 것이라며 응원을 하였다. 그러나 연락을 거듭할 수록, 그 빈도가 늘어날 수록 나의 고민과 의문점은 더해져갔다. '다시 예전 관계를 회복하고 싶은 건가..?'
혼란스러운 마음에 나는 여러번 그녀의 마음을 확인하고자 했으나, 근본적인 문제조차 해결되지 않은 채 재결합은 그녀에게 여전히 걱정스러운 부분이었다. 그런 상황에서 연락을 계속 이어가는 것은 내게 또한 답답하고 혼란스러운 일이었다.
대화를 거듭한 끝에 우리는 얼굴을 보고 대화하기로 결정했다. 아무리 영상통화를 한다고 한들, 진심이 느껴지지 않을 뿐더러 겉도는 이야기만 반복할 뿐이기 때문이었다. 우리가 항상 그래왔듯, 우리의 가장 진실된 대화는 실제로 얼굴을 마주봐야만 가능한 일이었다.
우리는 서로에게 가장 여유있는 연말에 만나기로 했다. 장소는 시애틀. 여행 기간은 일주일. 서로에게 부담되지 않으면서도, 이전과는 다른 대화와 기억을 남길 수 있는 장소와 시간이라 생각했다. 언제나 돈이 없어 여유로운 해외여행을 하지 못한 내 미안한 마음을 담은 결정이기도 했다. 20대 때는 돈이 없으면 없는대로 데이트하는 게 당연하다고 생각했는데, 30대가 되니 더 좋은 곳을 가지 못한 것에 대해 미안한 마음이 커졌다. 대학원 유학생인 현재 예나 지금이나 상황이 크게 달라지지 않았지만, 프리랜서로 틈틈이 일을 하며 조금이나마 넉넉한 여행을 하고자 했다.
그렇게 비행기 티켓과 숙소를 예약한 두세달 뒤에 우리는 약속한 시애틀 공항에서 만났다. 사실, 시애틀에 오기 전에 몇몇 친구들에게 얼떨결에 이 여행 소식을 전하기도 했다. 알고 지낸지 3년이지만 그녀를 개인적으로 알지 못하는 친구는 '미쳤냐'는 반응이었고, 그녀와의 관계를 가장 오랫동안 가까이서 본 커플의 반응은 반가움 반, 걱정 반이었다. 어쨌든, 그들이 걱정하는 핵심적인 문제는 관계를 완전히 정립하지 않은 상태에서 오랜 시간을 함께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이젠 더이상 연인이 아닌 친구인 관계임을 다시 한번 상기하였다.
처음에는 내 차가운 모습에 그녀도 적잖이 당황한 모습이었지만, 그녀와 대화를 하면 할수록 나의 마음의 벽도 점차 허물어져갔다. 2년 만에 실제로 만나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마치 지난달에 만난 것처럼 우리 관계에는 전혀 이질감이 느껴지지 않았다. 언제나 그랬듯이, 우리는 서로를 디스하며 장난쳤고 그간의 근황을 이야기하면서 서로의 상황을 이해하기도 했다. 언제나 그랬듯이, 우리는 맛있는 커피로 하루를 시작했고, 맛집을 찾아다니면서 맛있는 음식에 감탄하는 모습에 웃기도 했다. 그리고, 언제나 그랬듯이, 저녁이 되면 그간의 쌓여온 감정들을 털어놓으면서 감정의 실타래를 풀고 서로의 감정을 감싸안았다.
이 일주일간의 여행은 우리의 10년에 비하면 너무도 짧은 시간이었지만, 하루하루 우리의 기억들과 관계들을 하나하나 짚어볼 수 있었기에 지난 10년의 축소판도 같았다. 여전히 우리는 서로의 말투와 눈빛, 미묘한 표정들만 보아도 서로의 생각들을 알 수 있었고, 왜 그녀와 대화만 나눠도 행복할 수 있었는지 알 수 있었다. 서로의 예민함을 보면서 왜 그토록 자주 싸웠는지, 서로의 다른 태도를 보면서 왜 자주 삐그덕 거렸는지 알 수 있었다. 그리고, 결혼관을 다시 얘기해보면서 왜 우리가 결국 헤어졌는지 다시금 알 수 있었다.
나는 이상주의자로서 결혼에 있어서 크게 계획이 중요하지 않았다. 가장 중요한 것은 어떤 사람과 결혼하느냐 였다. 그래서 나는 서른이 되어도 불확실한 대학원생이라는 이유로 별다른 결혼 계획을 세우지 않았고, 결혼할 사람이 있다면 그때부터 함께 세워가는 것이라 생각했다. 그러나, 현실주의자인 그녀는 달랐다. 도대체 어디서 어떻게 돈을 벌 것인지, 결혼 전엔 얼마나 모을 것이고, 언제 아이를 낳고 어떻게 비용을 충당할 것인지에 대한 계획이 필요했다. 우리의 이런 근본적인 차이는 시애틀에 와서도 여전히 좁혀지지 않았다. 그리고, 우리는 지난 이별의 이유를 확신하였다.
우리는 더이상 연인관계는 아니다. 그럼에도, 우리는 여전히 서로를 사랑한다. 한 인간으로서, 친구로서, 동생으로서, 누나, 오빠로서, 한 부모로서 우리는 서로를 너무도 애정하고 존경한다. 그리고, 우리는 서로의 미래를 진심으로 응원하고 축복한다. '연인'이라는 단어로 우리의 지난 10년의 관계와 감정을 담기에는 그 의미가 너무도 비좁다. 7년차 커플도 이 감정을 공감하지 못하는 것을 보면, 단순히 오래만난다고 느낄 수 있는 것이 아닌가 보다. 수많은 다툼과 화해, 애증, 신뢰, 존경, 그리고 수차례의 이별과 재회가 뒷받침되어야만 가능한 감정인가 보다.
지난 몇달간은 이런 관계와 감정을 받아들이기가 참으로 어려웠다. '우리는 꼭 연인이어야만 한다'라는 생각으로 인해, 나는 그녀를 나의 틀에 끼워맞추려고 억지를 부렸고, 그녀는 그런 나의 비좁은 틀에 고통스러워하였다. 그러나 이제는 받아들 수 있다. 그녀는 더이상 나의 연인이 아니어도 좋다. 그리고, 그녀가 나의 연인이 아니더라도 그녀의 행복을 진심으로 소망한다. 내가 사랑하는 것은 그녀 자체이지 나의 연인인 그녀가 아니기 때문이다.
공항에서 작별 인사를 하고 보안장에 들어가면서 몇번이나 뒤돌아보던 그녀의 모습이 눈에 아른거린다. 여행 마지막 날 밤에도 눈물이 나지 않았는데, 그녀가 희미하게 보일쯤에야 눈물이 쏟아졌다. 단순히 여행이 끝났다는 사실에 눈물이 났다기 보다는, 내 부족함과 불안함 뿐이었던 20대를 함께 견뎌내고 성장해준 그녀에 대한 고마움과 미안함, 그리고 그녀를 담기에는 내 그릇에 충분히 크지 못한 것에 대한 스스로에 대한 안타까움이었던 것 같다. 아니면, 서로에 대한 감정 하나만으로 이렇게 먼 곳을 달려올 우리의 순수함(혹은 무모함)은 더이상 없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었을지도 모른다.
우리는 20대의 마지막 페이지를 공란으로 두었다. 언젠가 다음 이야기가 쓰여질지는 모르겠으나, 설령 영원히 쓰여지지 않는다고 해도 괜찮다. 그것만으로도 감사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