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쓰기를 결심했다면 오늘 할 수 있는 걸 당장 시작합시다!
서른 살에 책 한 권을 내 보고 싶었다. 그런데 마흔이 되도록 책 한 권을 못 썼다(참고. 저는 지금 마흔을 넘었고, 책 2권을 냈습니다). 책 한 권을 써 내려갈 만큼 내공이 쌓이지 않았기에 불가능했었다.
그런데 이런 생각도 든다. 그 나이 때에 갖췄던 수준만큼 썼어도 되는 거 아닐까? 오히려 서른 살 때의 감수성으로 쓴 글이 더욱 좋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그럼에도 그놈의 ‘나는 아직 부족해’라는 주문이 내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았었다.
‘나는 아직 책을 쓸 수 없어’, ‘나는 부족해’, ‘더 배워야 해’
이 말이 십 년은 더 힘을 발휘했다. 그러다 둘째를 낳고 하던 일을 모두 손에서 내려놓았을 때, 더 이상 무언가를 영영 할 수 없을 것 같은 기분이 휘몰아쳤을 때, ‘책을 써야겠다’는 생각이 번뜩 들었다. 눈앞에 놓인 일을 처리해야 한다는 이유로, 바쁘다는 이유로 작가가 될 수 없다고 생각했었는데 더 이상 물러설 데가 없게 된 것이었다.
그런 상황에서 ‘하루 만에 책 쓰기’라는 개념을 발견했다. 우연히 박하루의 <하루만 일하며 삽니다>라는 책을 접하게 되었는데, 여기에서는 책을 오랜 시간 동안 써야 한다는 고정관념을 버리라고 했다. ‘하루’라는 시간을 최대한 활용해서 짧고 빠르게 글을 써서 책을 내라고 말했다. 나에게 이런 주장은 적지 않은 충격을 안겨 주었다. 이렇게 획기적일 수가.
그동안 너무 작가에 대한 고정관념에 휩싸여 살았었다. 고뇌하고 오래 앉아있고 자기 세계에 빠져있고 세상의 이치를 모두 파악하는 그런 사람. 그런데 세상에 그런 사람이 있긴 한 걸까?
오히려 작가는 세상에 존재하는 근거 없는 고정관념을 바사삭 깨버리는 존재들이 아니었던가. 나는 글을 쓸 능력이 없어서가 아니라, 그 고정관념에서 벗어날 수가 없었기 때문에 책을 못 썼다. 책은, 그냥, 하루 만에도 쓸 수 있는 것이었다.
그렇게 생각하니 마음이 홀가분해져서 쉽게 시작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지금 이 순간 더 무언가를 찾아 헤매지 않고도 쓸 수 있는 것이 무엇일까?’ 지금의 나의 모습과 일상, 과거에 겪었던 일, 배운 것들… 여러 이야기가 내 안에 담겨 있었다. 그걸 택해서 써보면 되었다.
그런데 실제로 책을 쓰겠다고 덤볐을 때, 액면 그대로 하루 만에 책이 완성되는 건 아니었다. 하루 만에 책을 쓴다는 프로그램에서는 아침 일찍부터 만나서 밤이 될 때까지 앉아서 글을 쓴다고 한다.
나는 체력이 안 돼서 못한다. 아마도 그렇게 하고 나면 과장해서 일주일은 누워있어야 할 거고, 그러면 집안일은 거의 돌보지 못할 것이다. 그렇다고 해도 ‘하루에 책 쓴다’는 개념은 아주 요긴하다.
엄마들이 지난 세월 썰(?)을 풀면 소설책 한 권도 넘을 것이지만, 인생 이야기가 책이 되려면 약간의 집중력을 발휘해야 한다. 그때 하루의 힘이 필요하다. 그것도 오늘.
책을 쓰려면 무슨 이야기를 쓸 것인지, 어떤 흐름으로 쓸 것인지, 어디에 집중할 것인지, 대략 그림이 머릿속에 그려져야 한다. 이걸 ‘목차’라고 할 수도 있을 것이다. 이 작업을 ‘하루’에 끝내도록 한다.
목차를 세울 때 에너지 수준이 확 올라간다. 한 번 끌어올린 에너지를 식히지 말고 어느 정도 내용이 채워질 때까지 계속해서 작업하도록 한다. 다음에 다시 비슷한 수준으로 에너지를 올리려면 힘이 드니까 말이다. 엄마는 절전형으로 글을 써야 지속적으로 쓸 수 있다는 걸 기억해야 한다.
물론 이 목차는 진행이 될수록 상당 부분 바뀐다. 목차가 이대로 가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좋다. 여기에 쓰인 내용은 본문 어딘가에 녹아들어 가게 마련이니까 말이다. 또 책을 써 나가는 내내 방향성을 잃지 않게 해 준다. 중간에 글이 막힐 때 길을 뚫어주는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기도 한다.
주목할 점은, 이 작업을 ‘하루’에 한다고는 하지만 종일 해야 하는 건 아니다. 2~3시간 정도면 끝난다. 시간을 내서 집중해서 하루에 끝낸다는 것이 포인트다. 일단 이 작업이 끝나면, 마음이 든든하다.
원고를 쓸 때도 오늘 하루에 집중해 본다. ‘오늘 하루’에 뭘 쓰지? 여기에 집중하다 보면 고민의 범위가 확 줄어든다. 책 한 권이라는 분량에 압도되지 않고, 지금 당장 써야 할 것만 생각하면 된다.
사람마다 하루에 쓸 수 있는 글의 양이 다르니까, 자신의 상황에 맞춰서 하루에 쓸 양을 정해 보면 좋을 것 같다. 나의 경우에는, 이렇게 딱히 참고 자료가 필요 없이 내 이야기를 풀어놓는 글은 한 번에 한 편을 이어서 쓰는 편이다. 아이 유치원에 데려다주고 바로 쓰기 시작해서 점심 먹기 전에 끝낸다.
그런데 이렇게 할 수 있는 상황이 언제나 주어지는 것은 아니다. 갑자기 아이가 유치원에 안 간다고 할 수도 있고, 집안에 일이 생길 수도 있다. 그럴 때는 글을 3, 4 부분으로 쪼개서 그중 한 부분만 쓴다. 오늘 하루에 가능한 부분이 무엇일지 생각해서 거기에 집중하는 것이다. ‘통으로 시간이 나면 책을 써야지…’하는 생각을 하다가 그냥 흘려버린 시간이 많기에, 오늘 쓸 수 있는 양을 놓치지 않으려고 한다.
아주 느리게 가는 것 같지만, 이 하루하루가 모이면 생각보다 빨리 작업이 끝난다. ‘나중에 잘 써야지’, ‘나중에 몰아서 많이 써야지’라고 생각하면 십 년이 그냥 후루룩 지나간다.
“오늘, 하루동안 책을 쓰기 위해 할 수 있는 건 뭘까?”라는 질문을 던지고, 자신의 상황과 스타일에 맞게 해답을 찾아보면 좋겠다. 하루를 잘 이용해서 꾸준히 이어나가다 보면, 책을 쓰는 일이 굉장히 오래 걸릴 것이라는 통념이 깨질 것이다. ‘생각보다 빨리 끝나네…?’ 하는 경험을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니까, ‘오늘 하루’ 무언가를 시작해 보는 것도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