짬짬이 한 기록이 책으로 연결되는 마법
엄마에겐 시간이 많을까, 적을까?
무언가를 하려고 하면 할 시간이 많은 듯도 하고, 또 돌아보면 따로 무언가를 할 틈이 나지 않는 듯도 하다. 해야 할 일이 많은데 그 모든 일을 처리하는 게 벅차 보이기도 하고, 그렇다고 그 모든 일을 해내지 않는다고 뭐라 하는 사람도 없다. 함께 하는 동료도 없고 일을 제시해 주는 상사도 없는 그런 위치에 있다. 고독하다면 고독할 수 있는 이 위치에서 마음의 위안을 주는 것이 있으니, 바로 기록하기이다.
내 개인적으로 기록하기는 삶의 중심과 균형을 잡아주는 필수 아이템이라고 할 수 있다. 하여 여기에서는 엄마로 살아가면서 하고 있는 기록 루틴을 소개해 보고자 한다.
가계부를 제대로 적은 지 3년 정도밖에 되지 않았다. 돈에 대해서 많은 걱정과 불안을 안고 살았으면서도 가계부를 적어볼 생각은 하지 않았다.
늘 '난 돈이 없어. 더 벌어야 해.'라는 생각을 하며 살았다. 그런데 벌어도 벌어도 늘 돈이 없었다. 적지만 벌어들인 돈을 잘 아끼고 지키는 데에는 거의 노력을 기울이지 않아서 그렇다는 것을 몰랐다. 늘 바쁘다는 핑계로 미루고 미루기만 했다.
그러다가 코로나19 이후 정말 전업주부로 살게 되었는데, 맨 처음엔 멘붕이 왔다. 모든 시간이 자유로운데 자유롭지 않은 이 기분. 그리고 경제 활동을 모두 상실했다는 허탈감... 방향 감각을 상실했고 무엇부터 해야할지 감이 잡히지 않았다. 이때 가계부를 써봐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가계부를 써 보니까 내 생활이 다 보였다. 내가 무엇을 먹고 가고 하는지, 누구와 연결되고 있는지 한눈에 볼 수 있었다. 돈이 흐르는 곳에 나의 삶이 있었다. 돈의 흐름을 파악하고, 쓰는 방식을 조금씩 바꿔 보았다. 주로 많이 쓰던 것을 쓰지 않는 연습을 많이 했다. 미리 준비하고 계획하면 줄일 수 있는 비용이 많이 있었다.
문제는 그렇게 되기 위해서는 이전에 가졌던 생각의 순서를 완전히 바꿔야 했다. 즉흥적이고 직관적이었던 내가 계획형 인간으로 바뀌어야 했다는... 이 생각의 전환이 쉽진 않지만, 꾸준히 가계부를 적어가면서 바꿔가고 있다.
초대를 받았다. 오랫동안 감사일기를 써 오신 분께서 온라인 스터디 모임을 만드시겠다고 하셔서 흔쾌히 참여를 했다. 긍정변화와 감사는 정말 밀접하게 연관이 되어 있어서 참여해 보고 싶었다. 아주 가벼운 마음으로 쓰기 시작했는데, 이게 정말 대박이었다.
긍정변화연구소를 운영하고 있는 나는 사실, 부정적인 생각을 많이 하는 편이다. 아마도 이런 성향 덕택에(?) 긍정 심리학이나 긍정 소통에 관심을 더욱 많이 기울였던 것일지도 모른다.
부정적인 생각은 부정적인 감정과 행동을 불러일으킨다. 그래서 의식적으로 생각을 전환하는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감사하기는 이러한 관점 전환을 할 수 있는 강력한 방법이다.
감사일기를 쓰면서 내 삶에 감사할 거리가 많다는 것을 다시금 확인할 수 있었던 것은 물론이었다. 똑같은 일상을 다른 방식으로 써나가면서, 하나의 사건을 다르게 보는 방법을 몸으로 익힐 수 있었다.
만약 '아이가 유치원에 가지 않아서 하루 종일 개인 시간이 없이 붙어 있어야 해서 힘들었다.'라고 쓸 수 있는 내용은 '아이가 큰 병에 걸리지 않았고, 둘이 함께할 수 있는 시간을 가질 수 있어서 감사했다'라고 쓰는 것이다. 이것도 사실이고 저것도 사실이다. 어떤 것을 선택해도 무방하다. 감사일기는 힘든 것보다는 기쁜 것을 선택하도록 해주었다.
가장 와닿았던 것은, 주변에 가까이 있는 사람들이 다 감사한 사람이란 것이었다. 사실 가까이 있는 사람들 때문에 스트레스도 가장 많이 받는 것이 사실이다. 갈등도 많이 겪게 되고, 실망도 하게 되고, 불편함을 겪기도 한다.
하지만 가장 좋은 것을 제공해 주고, 즐거운 시간을 함께 하고, 기쁘게 해주는 것도 주변 사람이다. 가까운 사람들이 나에게 얼마나 많은 것을 해주고 있는지 몰랐는데, 감사일기를 쓰면서 하나하나 감사할 거리를 장부(?) 적듯이 적어 나가니까, 내가 받은 것이 얼마나 많은 지 한눈에 볼 수 있었다. 생각보다 더 받은 것이 아주 많았다.
SNS는 내 삶을 기록하고 다른 사람과 연결되는 소중한 통로이다. 누구에게도 배워본 적이 없는 집안 살림을 SNS로 배웠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어렸을 때 엄마는 '공부해야 하니까, 나중에 매일 해야 하니까 안 해도 된다'라고 말씀하셨다. 엄마 혼자 희생하신 것에 대한 미안함과 고마움이 있지만, 그 상태로 결혼을 하니까 할 줄 아는 게 거의 없었다.
SNS를 보면서 다른 사람들의 살림 노하우를 보고 배워 나갔다. 여러 엄마의 삶을 엿보면서 위안과 용기를 얻었다. 나보다 더 힘든 상황에서도 각자 자신의 자리에서 열심히 살아가고 있는 여자들이 많았다.
뿐만 아니라, 내 삶을 정리하고 의미 있게 만드는 데 SNS는 중요한 역할을 했다. 정신없이 애 키우고 집안 청소하고 나면 하루, 일주일, 일 년이 훅 가 있다. '뭐 하나 쌓아놓은 것 없이 뭐 했나... '하며 허무해질 때가 있는데, 그때 나의 인스타, 블로그, 브런치를 읽어 본다.
지난 일들을 돌아보면, '맞아, 맞아. 그때 그런 일이 있었지. 그런 생각을 했었지. 그런 어려움이 있었는데, 지금은 괜찮네.' 하게 된다. 그러면서 오늘의 허무함을 달랠 수 있다. 다른 건 몰라도 나에겐 이야기가 남았다.
기록을 하지 않았더라면 모두 날아가 버렸을 것이다. 대신 짬을 내어 몇 자 쓰고, 사진 찍고 하면서 기록을 남겨 두었더니, 그것이 힘이 되어 주었다. 몇 년 전에 시골에 내려가서 정신없이 살았는데, 아이 낮잠 잘 때 틈틈이 인스타를 했다.
그때 남겨 둔 글과 사진을 모았더니 책이 나왔다. 정말 다행이었다. 그때 사진을 찍어 놓지 않았더라면, 그 많은 사진을 정리해 두지 않았더라면, 아마 엄두도 내지 못했을 것이다.
기록은 나의 삶을 지탱해 주는 중요한 기둥이다.
기록은 나의 삶을 바라보고, 바꿔가고, 창조할 수 있게 해 준다.
하나하나의 기록이 모여서 결국에는 무언가 해 내지 않을까?
희망을 걸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