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발 대신 글을 씁니다
둘째를 낳고 난 후부터 책을 쓰기 시작했다. 하던 일을 모두 그만두고 전업주부가 되면서 뭔가 모를 불안감과 외로움에 시달렸기 때문이다.
육아와 살림이 중요하지 않은 건 아니지만, 쳇바퀴 도는 생활이 반복되다 보니 생활이 어디로 흘러가는 것인지 도통 방향감각을 잡을 수가 없었다.
아이 낳고 초기에는 잠도 제대로 못 자니 깜빡깜빡하고, 한 가지에 집중을 잘 못하는 일이 잦았다. 원래도 그런 성향이었는데 더욱 심각해진 것이다.
체력은 점점 고갈되고, 무언가를 해 보려고 하면 아이들이 계속 불러대고... 정신 차리기가 정말 힘들었다. 이런 상황에서 무언가라도 하지 않으면 정말 폭발해 버릴 것 같았다.
무언가를 조금씩 적으면 머리가 식고 마음이 안정되었다. 잠깐이라도 나를 돌아보고 생각이란 것을 하고 집중을 하다 보니, 내가 왜 지금 이렇게 살아가고 있는지, 아이가 나에게 어떤 의미고, 나는 이 생활을 하면서 어떻게 느끼고 있는지 등을 바라볼 수 있게 되었다. 그저 힘든 것만이 아니라 삶의 어느 한때를 재미있게 살아가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책을 쓰려면 하나의 주제에 오랜 기간 집중을 해야 한다. 여기저기에 분산되었던 관심을 하나의 주제에 쏟을 때 의외로 편안함이 느껴진다.
육아와 살림을 하면서 여러 스트레스가 생겨난다. 그런데 책 써야 하는 내용을 생각하다 보면, 자잘하게 신경이 쓰여서 열폭(!)을 하게 되는 일이 부차적인 것으로 물러 난다. 책 쓰는 데 정신적 에너지가 많이 들기 때문에 나머지 일은 그다지 크게 느껴지지가 않게 되는 것이다.
원래도 그저 스쳐 지나갈 수 있는 일인데, 신경을 집중하게 되면 그게 더 크게 느껴져서 화를 내게 된다. 그럴 필요가 없었는데... 책을 쓰다 보면 그런 후회가 많이 사라진다.
책 쓰기를 중심으로 주변이 정리되기도 한다. 살림도 최소한으로 줄이고, 쇼핑도 자제하게 되고, 사람도 만나지 않게(?) 된다. 맨 처음엔 책 쓰기 노하우를 알고 싶어서 여성 작가들의 SNS를 찾아보았는데, 의외로 '미니멀 라이프'를 먼저 실천하고 있었다.
글을 쓰기 위해서 집안 물건을 싹 치워 버리는 것이다. 물건이 줄어듦으로써 청소하고 정리하는 시간을 절약하게 된다. 또 쇼핑하는 시간이 줄면, 시간을 더 벌게 된다. 의미 없이 바깥에서 수다를 떠는 시간도 줄게 된다. 그 시간에 무언가를 생산해 내고 싶은 마음이 들어서 자연히 줄어든다.
책을 쓰면 더 넓은 세상과 연결될 수 있다. 책을 쓰기 위해 이전과는 다른 방식으로 나를 만나게 되고, 자료를 찾기 위해 책을 읽다 보면 나와 다른 생각을 하는 사람들을 접하게 된다. 이건 시공간을 뛰어넘는다.
그리고 책을 출간을 하면, 이것을 매개로 이전에 만나지 못했던 사람들과 연결이 된다. 평소 연락을 안 하던 사람들이 연락을 주고 안부를 묻고 그렇다. 전혀 알지 못했던 사람들이 책을 읽으면 더 많은 이들과 내 삶의 한때를 공유하게 되기도 한다.
이런 이유로 체력이 없어도, 시간이 없어도 책을 써보려고 애를 쓰고 있다.
우선 나를 위해서.
삶의 중심을 찾고, 의미를 찾고, 세상과 연결되기 위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