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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종혁 Feb 18. 2019

계획대로 되는 건 많이 없었다

그래도 잘만 살아있다

계획 중독자다. 미래를 예측 가능한 범위 안에 두기 위해 발악을 한다. 온갖 변수를 체크하고, 온갖 기회들을 탐색하고 몇가지 해야할 일들을 정한다. 계획을 만드는 것에도, 지키는 것에도 집착하는 편이다. 그래서 내 계획은 거의 엄청난 도덕률같은 느낌. 못지키면 계속 나를 탓할 것이고 심지어는 벌을 내릴것이다. 무능력하다고. 오늘 글 쓰기로 했잖아. 오늘 공부 여기까지 하기로 했잖아. 진짜 나는 개 노답이구나 이런 사소한거 하나도 못하고. 이런 식.

매우 매우 매우 신성한 나의 계획. 나는 이번 하루와 일주일, 달의 계획을 품에 아주 소중히 싸안고 이곳 저곳을 돌아다닌다. 최대한 수행하려 하지만 변수는 많다. 누군가가 갑자기 용건이 생겨 나의 위대한 계획을 방해 할수도 있다. 아니면 너무 재밌는게 있어서 그 시간 안에 못하게 될 수도 있는거고. 그럴때마다 무척 짜증이 난다. 나의 오지는 계획의 수행을 방해한 어떤 변수를 모조리 없애버리고 싶다. 책임을 묻고 싶다.

계획을 수행하지 못하면 나 자신을 다그치는 것처럼, 나를 방해한 누군가에게도 그러고 싶다. 왜 내 하루를 망쳤냐며. 하지만 그렇게 할 수가 없지. 그 불만까지 오롯이 내가 떠안고 산다. 남들에게 방해하지 마라고 소리를 지르고 싶은 만큼 내 탓을 또 한다. 너가 그럼 시간관리를 더 잘했어야지. 자투리 시간에 했어야지. 이런 일이 생길지 몰랐어??

매번 내 탓을 하지만 사실 계획이 온전히 다 지켜지는 날이 더 드물다. 하루하루가 예측이 힘드니까. 그런데 지켜지지 않는 날마다 미친듯이 자책을 하니 힘들다. 내탓 하지 않는 날이 없는 거니까. 잠깐 멈춰서 생각해보면 사실 지금까지 완벽히 지켜지는 상황은 거의 없었던 것 같다. 최근까지도 사실 군대에서 자격증을 두 개 따고 싶었지만 하나에 그친 것도. 복학 전에 경제학 공부를 하려고 했었던 것도 사실 거의 못했고.

내 인생 자체도. 글쓰는 일로 밥을 먹고 싶어서 문학 공부를 택했던 스무살의 나는, 이제 학교 수업이 왜이렇게 실용적이지 못하냐며 취직 비스무레한걸 걱정하는 사람이 되었다. 하고 있는게 잘 안되면 공기업 시험이라도 봐야된다면서 경제 공부를 못 놓고. 나는 내가 쿨하다고 생각해서 인생의 풍파에도 아주 고고하게 내 갈 길 갈거라고 생각했는데,아니었다. 조그만 것에도 흔들리고 계획을 짜면 버리고, 적당히 도망치며 살았다.




그 때마다 자책을 하기 마련이어서 힘들었지만. 사실 정말 잘 살아있다. 물론 정해진 것은 없지만, 막연히 정신 안 놓고 열심히 살면 뭐라도 되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들고. 사실 온갖 계획으로도 미래를 예측할 수 없어서 그냥 막연히 생각하려고 한다. 그게 맘은 더 편하다. 앞으로 흐르는 인생을 그냥 어냥저냥 맡기고, 내 탓 좀 덜하는 삶을 살고 싶다. 자책이 버릇이 된 나머지 많은 연습이 필요하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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