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사와 시, 그리고 그녀들의 이야기1
미미를 위한 토마토 달걀볶음 에그누들 수프
재료 (1인용) :
토마토, 달걀, 피망, 에그누들, 야채스톡, 일회용 훠궈소스, 코코넛오일, 올리고당, 소금, 일회용 해초믹스
만드는 과정:
1. 토마토를 웨지 썰기 하고, 스크램블 에그를 만들어준 후 함께 볶고 소금, 올리고당으로 간을 해주어 국물이 자작한 토마토 달걀볶음을 만든다.
2. 동시에 500ml 정도 물에 야채스톡을 풀고 끓이다가 훠궈소스(없으면 중국식 핫오일)를 넣는다.
3. 에그누들과 마른 해초믹스 혹은 마른미역을 끓는 국물에 넣는다.
4. 만들어 놓은 토마토 달걀 볶음을 위에 얹어서 마무리한다.
평소에 토마토와 달걀을 이용한 요리를 정말 많이 하는데, 영양과 맛을 동시에 잡을 수 있고 파프리카 소스, 설탕, 치폴레소스, 선드라이드 토마토 오일, 치즈 등, 다른 조미료나 재료를 넣으면 손쉽게 변하는 이 조합을 정말 사랑한다. 페스코 채식을 지향하는 식단에 꽃이 되기도 한다. 이 요리는 이렇게 먹던 토마토 계란 요리 베리에이션의 끝판왕 요리가 되지 않을까 생각된다. 훠궈 소스를 넣지 않고, 치폴레페퍼 소스, 태국 페퍼 페이스트 등을 넣으면 또 전혀 다른 느낌의 국물 요리가 될 것 같다.
함께 요리했던 가지 구이찜 레시피는 어느 셰프님의 레시피를 그대로 따라한 거라서 실패하지 않았는데, 무화과 샐러드는 그릭 요거트 드레싱보다는 발사믹이 더 어울렸을 것 같고, 나머지 요리와 분위기가 동 떨어져서 식전으로 먼저 내놓지 않은 게 후회가 되지만 함께 했던 게스트와 내가 좋아하는 페스코 채식 위주로 듬직한 한 상이었다.
미미와 함께
토마토 베이스 음식과 얇은 면요리를 좋아한다는 미미를 위한 밥상이었다. 시골에서 자라 고기 위주의 식단보다는 어른들의 밥상이었던 채소 위주의 식단에 익숙해져 있는 우리는 입맛이 잘 맞았다. 나만 생각하며 내가 먹고 싶은 것들 위주로 차려낸 밥상처럼 미미의 입맛에 찰떡같이 맞았고 그래서 더 맛있게 기쁘게 식사를 할 수 있었다. 미미와는 글을 쓰는 동인 모임을 함께하고 있는데 누가 글 쓰는 사람들 아니랄까 봐 끊이지 않고 틀어놓은 수도꼭지마냥 수다를 떨었다.
시골에서 자란 사람들만이 가질 수 있는 건강한 시야에 대한 동의, 성매매 법제화의 필요성에 대한 토론, 내가 변화하고 성장하면서 근사하게만 보였던 주변 사람들의 하찮음에 대한 고민, 우리처럼 생각이 많아 머리 쓰는 걸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좋은 운동에 대한 이야기, 가볍지만 가볍게 만날 수 없는 가벼운 만남에 있어서의 법칙, 좋아하는 작가를 더 이상 좋아할 수 없는 이유 등등 우리는 여러 주제를 넘나들었다. 그러나 가장 기억에 남았던 건 그녀의 심상치 않은 가족에 대한 이야기였다.
미미는 다방에서 일했던 엄마와 주변 사람들의 이야기들을 해주었고, 그 사람들의 사랑과 정을 듬뿍 받고 자라 익숙해진 것들이 사람들 시선에 재단당하며 어리둥절했던 경험에 대해서 솔직 담백하게 이야기해 주었다. 나는 미미에게서 직접 듣는 그 조심스러운 이야기들이 정말 소중했다. 그녀의 겉모습만큼 강단 있는 글 속에서도 발견할 수 있었던 한 점 부끄럼 없는 사랑 했고, 사랑하는 사람들에 대한 고민의 흔적이 사랑스러웠다.
미미는 내가 가지고 있지 않을 만한 시집을 식사에 대한 사례로 가져왔다. 미미가 가져온 세 권의 시집은 최승자 시인의 <이 시대의 사랑>, 진은영 시인의 <일곱 개의 단어로 된 사전>, 류근 시인의 <상처적 체질>이었다. 그중 미미는 류근 시인의 시집을 집어 들며 이 시인이 실제로 '너무 아픈 사랑은 사랑이 아니었기를'의 작사가면서 또 '너무 아픈 사랑'이라는 시를 지었다는 얘기를 해주었다.
너무 아픈 사랑 - 류근
동백장 모텔에서 나와 뼈다귀 해장국집에서
소주잔에 낀 기름때 경건히 닦고 있는 내게
여자가 결심한 듯 말했다
너무 아픈 사랑은 사랑이 아니었다,
라는 말 알아요? 그 유행가 가사
이제 믿기로 했어요.
믿는 자에게 기쁨이 있고 천국이 있을 테지만
여자여, 너무 아픈 사랑도 세상에는 없고
사랑이 아닌 사랑도 세상에는 없는 것
다만 사랑만이 제 힘으로 사랑을 살아내는 것이어서
사랑에 어찌 앞뒤로 집을 지을 세간이 있겠느냐
택시비 받아 집에 오면서
결별의 은유로 유행가 가사나 단속 스티커처럼 붙여오면서
차창에 기대 나는 느릿느릿 혼자 중얼거렸다
그 유행가 가사
먼 전생에 내가 쓴 유서였다는 걸 너는 모른다
너무 아픈 사랑은 사랑이 아니었을까?
어느 모텔 입구에 들어서면서 너는 모텔 주인장과 흥정을 했다. 마치 우리가 함께 있을 그 시간들에 값을 매긴다면 온 힘을 다해서 그 값을 깎아내리려는 듯이. 너와 함께 있는 시간들이 아프다 못해 온몸이 마비되어 작은 통증도 느끼지 못했고 함께 걸었던 좁고 어두웠던 시간의 통로를 걸으면서 내내 울기만 했다. 어른이 된 너는 너는 삶이 터트리지 않으면 나을 수 없는 몹쓸 종기인 것마냥 날카로운 욕을 종종 내뱉었고, 남을 웃기지 않으면 생계가 위태로운 시답잖은 코미디언처럼 스스로를 희화화하며 사람들과 시간을 보냈다. 나는 맑고 투명한 미소를 가졌던 네게 삶이라는 똥을 던졌던 사람으로 스스로를 정의했다. 나는 사춘기 시절 너의 진심 어린 고백도, 티 없이 원망 가득했던 나를 위한 눈물도, 모두 거절했던 사람이었으니까.
어른이 되어서 만난 너와의 만남은 그래서 아프기만 했다. 과거 너와의 시간이 이제는 아프지 않고, 시인의 그녀처럼 아픈 사랑을 믿었던 내가 '사랑이 아닌 사랑도 세상에는 없는 것'이고 '다만 사랑만이 제 힘으로 사랑을 살아내는 것'을 알게 된 지금, 아픈 방향으로만 너와 나를 몰고 갔던 거칠었던 나를 반성한다. 아팠던 만큼 처절하게 소중했던 너를 나는 이렇게 종종 시를 읽으면서 추억한다. 사랑은 파스텔빛이어야 한다는 믿음 때문에 잿빛이었던 너를 보듬어주지 못했고, 사랑을 힘을 믿지 않아서 내 의지대로 만들어내는 사랑의 모양만이 진짜 사랑이란 강박에 우리가 가졌던 빈약한 사랑이 마음껏 성장하지 못했다.
아직은 날이 좋았던 9월 어느 날, 여름의 흔적처럼 능소화가 동네 군데군데 아직 서성이고 있었다. 미미가 남겨준 시를 곱씹으며 나는 과거 어느 날의 아픔을 아물게 두었다. 날이 저물 때까지 떨었던 수다와 미미 만을 위한 내 밥상이 아직까지 서성이고 있는 몇 떨기 능소화 꽃잎들처럼 여운에 남기를, 혹시라도 상처받은 채로 내버려 둔 마음들이 있다면 나와의 만남을 계기로 돌아볼 수 있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