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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보드라운기린아 Sep 09. 2023

토마토와 사워크림 캐비지롤 Cabbage roll

식사와 시, 그리고 그녀들의 이야기 3

소보를 위한 캐비지롤


토마토 캐비지롤, 사워크림 캐비지롤, 비트 단감 당근 샐러드으로 구성한 식사

재료:(2인용)

 캐비지롤 속 : 두부 한 모, 쿠스쿠스 두 움큼(밥을 넣기도 한다고 함), 당근 반 개, 케이쥰(파프리카), 소금, 큐민, 계란 1개, 콜리플라워 3개, 표고버섯 5송이, 트러플소스

캐비지롤 소스 : 토마토소스 - 채소 육수(표고버섯, 콜리플라워, 월계수 잎), 토마토소스(볼로녜제) 사워크림소스 - 사워크림, 캐비지롤 속 한 움큼

만드는 과정:

1. 두부 한 모를 으깨고, 표고버섯을 잘게 다져서 소금 간을 하여 올리브유에 굽고, 당근을 채 썰고, 콜리플라워를 다져서 속을 준비한다.

2. 준비한 속에 소금, 케이준 파우드, 큐민으로 간을 하고 계란을 넣어 섞어준다.

3. 양배추 뿌리를 도려내고 통째로 뜨거운 물에 데쳐준다.

4. 한 장씩 뜯어낸 양배추 통 잎을 펼쳐서 속을 넣고 말아 롤을 만들어준다.

5. 롤에 밀가루를 솔솔 뿌리고 프라이팬에 노릇하게 구워준 뒤, 채수를 넣고 끓이다가 토마토소스와 사워크림을 각각 넣어 10여분 동안 다시 끓여준다.

6. 토마토소스에는 비건 체다 치즈로 마무리하고, 샤워크림소스에는 남은 채소 속을 넣거나 (만둣국에 만두를 으깨서 만두 속 맛이 나는 국물을 먹는 것처럼!) 취향에 따라 트러플소스를 얹어 먹으면 더 맛있다.


가장 좋아하는 요리 중 하나인 캐비지롤. 조리하는 과정도 좋아하고, 들어가는 재료들도 좋아하고, 먹기 좋은 날씨도 좋아한다. 꽤 손이 많이 가는 이 다정한 요리는 영화 <하와이안 레시피 honokaa boy, 2009>에서 처음 만났다. 무해한 재료들이 만나 포근하게 다가오는 이 캐비지롤을 항상 만들어보고 싶었다. 그래서 혼자 자주 해먹기도 했고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자주 해주는 요리이기도 하다. 캐비지롤 그러니까 일본식 발음으로 캬베츠롤은 청량한 산들바람이 항상 불고 있을 것 같은 하와이를 배경으로 한 색감이 아름다운 일본 음식 영화 속에서 주인공 할머니 비가 남자 주인공 레오에게 해주는 흥미로운 퓨전 가정식 중 하나였다. 하와이에 사는 일본 사람들의 느긋한 일상과 마음을 치유해 주는 듯한 밥상 그리고 그곳에 잠시 머무르며 그들의 일상에 울림을 주었던 주인공을 떠오르게 하여, 먹을 때마다 영화 속 풍경으로 나를 빨아들이는 이 요리를 오늘 사랑하는 동생과 함께 먹었다.


영화 하와이언 레시피 중

영화와 긴밀하게 연결된 이 요리는 내게 어떤 환상을 심어주었던 것 같다. 좋아하는 사람에게 말끔하고 사랑스러운 밥상을 차려 함께 하는 여유를 가진 삶. 사진을 찍고 그런 일상을 소소하게 기념하여 쌓이는 기록의 흔적을 갖는 것. 돌이켜보면 이런 류의 일본 영화들 <리틀 포레스트>, <카모메 식당>, <안경> 같은 영화에 이유 없이 끌렸다. 인상에 깊게 남는 강렬한 영화는 아니지만 가슴에 언제나 품고 있어서 삶의 방향을 점점 바꿔나가게 하는 여운을 가진 영화들. 그리고 나는 기어코 환상을 현실로 옮겨냈고, 그건 순전히 내 환상을 사랑해 주고 응원해 주는 영혼의 단짝들을 하나, 둘씩 만나게 된 덕분이었다.



소보와 함께


마음에 떠올리면 애정과 다정이 가득해서 기특한 사람, 보윤을 만나게 된 건 정말 우연이자 행운이자 기적이었다. 인스타로 서로가 우연히 끌려서 대화를 하다가 만나게 된 그날, 청파동의 골목 어딘가를 함께 걸으면서 가뜩이나 낮은 서로의 텐션을 최상으로 올려서 농담 섞인 수다를 조잘조잘 쉬지 않고 떠들었다. 우리는 이상주의자이자 낭만주의자였고, 그래서 글과 이미지 속의 닿을 수 없는 아득하고 광활한 세계를 너무나도 사랑하는 사람이지만, 결코 현실을 무시할 수 없는, 자라며 비교적 잘나서 부모의 기대를 한껏 받았던 K-장녀의 운명을 공유하고 있었다.



보윤은 여러 농도와 채도의 파랑을 좋아하는 사람이고, 나는 약간은 서늘하면서도 거슬거슬한 잠들어있는 겨울 바다의 색을 그에게서 느꼈다. 보윤을 사랑하는 모든 사람들이 느끼고 있겠지만, 그와 대화를 하면 내 거칠고 서툴기만 한 열정이 이성의 뼈대를 얻어 살아 움직일 수 있을 것 같으며, 마음 내키는 대로 몰아쳐도 아늑하면서도 마냥 자유로워질 수 있는 느낌이 든다.


그는 앎과 모름에 솔직하면서도 앎에는 잰 체가 없고, 모름에는 언제나 솔직하게 질문하는 용감하여 아름다운 사람이어서 대화하다 보면 정말로 내 못생긴 면들이 아름답게 기록될 수 있고, 어디로든 자유롭게 뻗어나갈 수 있는 자유로운 존재가 되어 있는 것을 느끼게 된다. 무엇이든 가능하고, 무엇이든 될 수 있는, 그래서 그 무한한 가능성을 품은 자로 존재함으로써 충분하다고 말해주는 사람이니까. 그건 보윤이 스스로를 끊임없이 긍정하고 읽어내려는 노력을 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보윤은 쓰고 기록하는 것을 너무도 사랑하고 잘하는 사람이라서 딱딱한 텍스트에도 가만한 애정이 듬뿍 묻어난다. 내가 얼마나 자주 그리고 많이 보윤의 글에 구원을 받았는지 셀 수 없지만 (도움, 위로라는 말로는 충분하지 않다. 구원이라는 단어 말고는 달리 표현할 길이 없어서) 보윤에게 받는 가장 큰 자극은 하고자 하는 바, 결심한 바를 이뤄낸 다는 것이다. 글을 쓰는 사람들이 숙명적으로 느끼는 '행동력'의 결여에서 오는 윤리적 죄책감이나, 오감으로 느끼는 바를 온전히 표현하는 데 있어서 글이라는 매개의 제약, 그리고 거기서 오는 불만족스러움 같은 것을 다른 자기 파괴적인 수단이 아니라 글 너머의 다른 작업들로 풀어낸다.


왼)보윤의 단편 소설 <수영장과 꽈배기>, 오)여러 다른 분야의 예술을 하는 친구들과 기획한 프로젝트 [결핍, 갈망, 집착] 기록
보윤이 이메일로 연재한 단편 소설 '수영장과 꽈배기' 마지막화 전문
보윤이 나날의 기록을 모아둔 아카이빙 사이트


믿음체계

강준서 '맑음에 대하여' 중

나만의 믿음체계를 만드는 일은 정체된 환경에서 나의 생활을 밀고 나가는 데 있어서 무엇보다 중요하다. 종교적 신앙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행동하는 나의 삶 자체 그리고 내가 하고 싶은 일에 대해서 믿는다는 건 생각의 절대적인 고정이 아니고, 진득하게 유지함이다. 무게중심을 잡고 문을 열어두는 것이다. 자꾸 바람이 든다는 이유로 세상과 타인과 연결되는 문을 닫아버리면 나의 절대성은 보장받으나 그것은 고여있는 절대성이다. 절대적인 것들은 변한다. 변화를 받아들이지 않으면 변질되고 만다.

나의 믿음은 산포적이다. 커다란 종이를 벽에 붙일 때, 종이를 고정시킬만한 요소들이 산포적으로 필요하다. 하나의 큰 고정 핀으로 중앙을 고정시킨다면 종이의 모서리들은 울고 말려들 것이고, 시간이 지나면 스쳐가는 바람에 너덜너덜해질 것이다. 작은 믿음들을 여기저기 박아 놓는다면, 그러니까 나의 낭만을 쪼개어 일상에 뿌린다면 하나의 요소가 변화를 겪는 시점에도 커다란 종이는 바닥으로 떨어지지 않을 것이다.

사실 세상이 그렇게나 믿음직스러운 모습을 보여줘서 믿는 것은 아니다. 믿음을 가지고 살아야만, 그 모습으로 나아갈 추동력이 생기기 때문에 믿는다. 나와 대화를 주고받는 이 사람들과 오늘 햇살의 기운을 믿을 때 아름다움이 현현한다. 믿고 기대하지 않을 때, 그 안에 내재되어 있던 아름다움은 세상 밖으로 나올 힘을 잃는다. 사실 미디어를 통해 들리는 세상은 추악하고 더러운 것들이 많다. 내가 상상하는 삶에 대한 믿음 없이는 보이는 세상대로 살게 될까 무섭다. 그러고 싶지 않아서 믿는다. 언젠가 부서진다 하더라도 날아오르다 깨지는 것을 택할 것이다. 높은 곳에서 울 것이다. 맑은 사람들은 세상물정을 모르는 것이 아니다. 세상을 있는 그대로 보려 하기 때문에 이만큼의 아름다움도 보는 것이고 아픔도 보는 것이다. 맑은 사람들이 약해지지 않기를 바란다.


https://www.instagram.com/boyunsoy/

너와 나의 믿음 체계로서의 기록


우리가 느끼는 모든 것들을 형용할 수 있다는 믿음을 갖는다. 발이 한 뼘쯤 지구에서 떠 있는 우리를 위해 대화와 사람들과의 관계라는 무게추를 달고 종종 찾아오는 무기력감과 삶이 주는 허무에서 빠져나와 땅에 발을 딛는다. 우리가 영감을 찾아 헤매는 것은, 그리고 되도록이면 우리가 발 딛고 있는 이 땅의 자연 속에서 영감을 찾으려고 하는 것은 더 나아가고자 함이다. 니체가 말한 것처럼 힘에의 의지를 통해, 보존이 아니라 더 높은 것이 되려는 욕심이자 삶의 의지를 관철시키고자 한다. 그 영감의 마지막 끝에 '믿음'이 있다. 우리의 믿음 체계는 끊임없는 대화, 전복되는 관점들, 변화하는 삶에 적응하기 위해 이를 어떻게든 이해하려는 욕심에서 우러나온 쓰기와 읽기이다. 기록의 성전에 우리의 믿음 체계를 건설한다. 신성함 Holyness은 어디에든 내 주의와 관심이 뻗어나간 곳에 존재하며 이를 포착하는 가만하고 사려 깊은 시선에서 피어나지 않을까?


니체, [유고, 1885년 가을~1887 가을] 중

세계의 가치는 우리의 해석 속에 있다는 점(단순한 인간적 해석 이외에 다른 해석들도 어디선가 가능하다는 것), 지금까지의 해석들은 우리가 힘을 증가시키기 위해 생명, 즉 힘에의 의지를 보전할 수 있도록 해주는 관점주의적 평가들이라는 점, 인간의 모든 향상은 편협한 해석들의 극복을 수반한다는 점, 힘의 강화나 증가는 새로운 관점들을 열어 놓고, 새로운 지평들을 믿게 한다는 점. 이런 생각이 나의 저작들을 관통하고 있다.


선물 받은 보윤의 그림

나는 토마토소스에 조린 캐비지롤과 샤워크림소스에 조린 캐비지롤을 우리가 함께 먹는 것을 즐기는 사람이라서 좋았다. 토마토와 크림, 조와 울, 기쁨과 슬픔, 그런 극과 극을 오가며 롤러코스터처럼 타듯 오르락, 내리락 일상을 날 수밖에 없어서 그리고 기꺼이 이를 기록하여 그 간극 속에서 새로운 시선을 발견해 내는 사람이 되어감에 뿌듯하다. 우리가 그 여정을 함께 해나가고 있다는 사실을 기억하며 훗날 더 많은 사람들과 나눌 수 있을 거라는 희망을 품고 살아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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