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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보드라운기린아 Dec 29. 2023

콜리플라워 with 베샤멜, 바나나 with 라임시럽

식사와 시, 그리고 그녀들의 이야기 5

로미를 위한 요리



재료:

-콜리플라워 with 베샤멜소스:  우유 300ml, 버터 2 tsp, 밀가루 2 tsp, 양파 반 개, 정향, 월계수잎 1/4, 화이트페퍼(블랙페퍼로 대체) 1꼬집, 너트메그 1꼬집, 콜리플라워 반개, 올리브오일 10ml, 파마잔 치즈 40g

-바나나 with 라임시럽: 설탕 2큰술, 물 3큰술, 바나나 2개, 라임 반개


만드는 과정:

-콜리플라워 with 베샤멜소스:

1. 팬에 우유를 넣고 끓인 뒤, 다른 소스팬에 버터를 중불에 녹인다.

2. 버터가 다 녹으면 밀가루를 넣어 거품기로 섞는다. 반죽이 촉촉해 보일 때까지 젓는다.

3. 우유가 끓기 시작하면 밀가루와 버터 반죽을 조금씩 넣어 뭉치지 않도록 잘 젓는다.

4. 풍미를 위해 양파에 정향을 꽂아 넣거나, 준비되지 않았다면 월계수잎과 너트메그만 넣어도 좋다.

5. 소스를 체에 거르고 소금으로 간한다.

6. 콜리플라워의 줄기와 잎을 제거하고 머리만 잘게 3cm 정도로 준비한다.

7. 큰 냄비에 물을 넣고 끓인 뒤, 콜리플라워가 부드러워질 때까지 8분 동안 끓인다.

8. 데친 콜리플라워를 망가지지 않게 잘 건져내서 소금과 화이트페퍼 그리고 올리브오일로 간한다.

9. 베샤멜소스를 얹고, 파마잔 가루를 뿌려준 뒤 피즈가 녹을 때까지 굽는다.


-바나나 with 라임시럽

1. 설탕과 물을 아담한 냄비에 붓고, 약불에서 설탕이 녹을 때까지 끓인다.

2. 시럽이 식으면 라임제스트를 갈아 넣고, 라임즙을 짜 넣고 저어준다.

3. 바나나는 껍질을 벗겨 얇게 편으로 썰고 준비된 라임시럽에 넣는다.

4. 바나나에 시럽이 잘 베어 들도록 서빙 전 1시간 전에 냉장보관한다.

5. 시럽에 물 대신 럼을 넣어도 좋다.


친구에게 선물 받은 스페인 가정식 요리의 메뉴 중 몇 가지를 채소 공급이 필요하다던 로미를 위해 시도해 봤다. 너무도 심플한 재료들과 기본적인 조리법이지만 어쩐지 생소했다. 파스타나 수프 같은 서양식 요리에서 기본 화이트소스로 쓰이는 베샤멜소스를 콜리플라워에 그냥 끼얹어 먹는다니! 모든 시럽은 사랑이지만 그중 라임 향이 나는 시럽에 바나나의 조합이라니! 스페인 본토에서는 클래식한 조합일지도 모르지만, 그저 우리에게는 생소한 그러나 상상해 보면 그 맛이 더없이 좋을 것 같은 이 레시피들을 골랐다. 화려한 레시피는 아니지만 기본에 충실하고, 재료의 본연에 맛에 집중한 이 사랑스러운 조합에 빠지지 않을 수 없었다.


페란 아드리아 셰프의 스태프밀 레시피 <The family Meal>

부족한 단백질과 탄수화물을 스크램블드 에그와 쌀국수 볶음으로 채우고 청경채, 두부, 버섯구이를 곁들였다. 맛은 좋았지만 생각했던 비주얼이 나오지 않아 사진으로 많이 기록하지 못했다. 레시피와는 다르게 파마잔 치즈가 없어 마지막 과정을 생략하기도 했고, 바나나는 1시간 정도 라임 시럽에 재워놨어야 했는데 시간이 부족해서 라임 제스트에서 색도 제대로 우러나오지 않은 말간 라임향이 나는 시럽물에 바나나를 띄워 먹는 것에 가까웠기에 아쉬움이 남았다.





간단하고 심플해 보여서 쉽게 해낼 수 있을 줄 알았던 요리가 재료에 대한 섬세한 이해와 기본 조리 과학에 대한 지식이 바탕이 되어야 성취해 낼 수 있다는 것을 다시 한번 깨닫는다. 사람과의 관계도 마찬가지인 것 같다. 어려워 보이는 사람은 피하게 되고, 쉬워 보이고 편하게 대해주는 사람과 훨씬 빨리 가까워진다. 그러나 후자의 사람과의 관계는 날이 갈수록 어려워진다.



까다로워 보이는 사람과 서로 충돌하는 경우도 생기지만 종국에는 서로 원하는 바를 알게 되어 오히려 서로가 편할 수 있는 중간 지점에 잘 도착할 수 있는 반면, 편하고 쉬워 보이는 사람과의 관계는 가면 갈수록 (선이 없는 사람, 상처받지 않는 사람이 거의 존재하지 않다는 조건을 전제로) 모호 해고 흐릿한 선 때문에 오히려 심하게 틀어지거나 서로에게 조심스러워져서 그저 그런 얕은 관계로 남아있는 경우가 많았다.



그런 고민들 끝에 사람, 인간에 대한 섬세한 이해와 기본적인 예의를 지키는 게 너무 어렵게 느껴질 때가 있었다. 그 시절 로미를 만났고 로미의 나긋나긋함 그리고 천진난만함, 그리고 로미의 작업에서 정제되지 않은 선과 어디로 튈지 모르지만 사랑스러움을 간직한 색들을 만나 나도 모르게 방어기제들이 해제되고 평안하진 않지만, 평화로운 에너지를 전해받았던 기억이 있다.



박새로미 작가_The way I dance, Live digital drawing <https://www.instagram.com/park_saeromi/>



로미와 함께


로미와는 친구들과 함께 기획한 파티에서 처음 만났다. 봄나물을 주제로 봄나물 전에 막걸리를 곁들인 왁자지껄하면서도 걸쭉한 파티였다. 도시에 사는 우리 안에 사라져 가는 계절감을 찾아보고 싶어 기획했던 파티에 관심을 가져준 사람들과 함께 아름다운 시간을 보냈다. 파티에 찾아와서 사소한 장식하나에 생생한 감탄의 시선을 보내던 그날 로미의 모습이 그날 파티의 주제색이었던 총천연색 야리야리한 무지개를 닮아있어 계속 기억에 아른거렸다. 그게 로미와의 인연의 시작이었으리라 생각한다.



로미와의 대화가 편했던 이유는 주제가 서로의 내면(의 불안)을 향해있으면서도 자신이 몰두하고 있는 작업, 사랑하는 주변 사람들 이야기, 아름다운 글과 음악, 과거의 헤매었지만 깨달음을 주었던 다양한 경험들, 외국 타지에서의 생활 속 고민과 갈등, 신의 계시처럼 다가오는 신호들(주로 무의식적으로 시계를 바라보았을 때 반복적으로 나타는 숫자들에 관한 것) 등 무궁무진했다. 타인과 밖을 향한 시선 그리고 나의 내면을 향한 애정이 담긴 시선이 공존하는 사람과의 균형감 있는 대화는 재미있을 수밖에 없었다.



대화에서 엿본 로미는 자신 안에 든 총천연색의 경험과 잔상들을 혼신의 힘을 담아 그림으로 표현해 내는 작업자였다. 삶과 작업을 분리하지 않고, 사적인 경험을 객관적인 회화언어로 표현해 내려는 끊임없이 시도하며, 적절한 미디엄을 탐구하면서 자신을 찾아나가려는 모습이 보였다. 꿈을 꾸는 사람이라서 현실과 꿈의 간극 속에 찢어진 영혼, 분열된 자신을 봉합시켜 만들어내는 로미의 작품들이 좋았다.


로미의 타투 도안 작업
앙리 보스코, [이아생트] 중

그러는 데에는 내 상상력이 한몫을 했다. 하지만 나는 때때로 내 안에 있는 이 위험한 능력이 내 고독을 지탱해 주는 감정들의 진정한 근원이 아님을 느끼곤 했다. 나는 이 땅 아래에 정신적인 지세(地勢)가 펼쳐져 있는 것을 이미 알아채고 있었다. 바위, 진흙, 물, 나무, 인간 그리고 짐승만으로는 그러한 지세(地勢)를 만들어내기에 충분치 못하다. 거기에는 신비로운 만남들, 이 요소들 사이에서 감지되는 미지의 조화, 그리고 알지 못할 지하의 자장(磁場)이 필요하다.



로미는 이 도안을 베를린에서의 경험과 인상을 바탕으로 작업하기 시작했다고 했다. 로미의 과거 속 정신적인 지세를 보고 있는 것 같았고, 어느 아름다운 꿈결의 장면 같았다. 로미를 스치고 간 여러 요소들이 천진하게 어우러져 있는 선들의 덩어리가 마음속에 콕- 박혀 꼭 타투를 받게 해달라고 부탁했다. 로미는 점, 선 하나하나의 요소에 주의를 기울여 내 몸에 새겨주었다. 그날 그녀와의 신비로운 만남에 내가 한 요소가 되고, 의미가 되어가는 특별한 기분이 들기도 했다.



서울에서의 생활은 너무도 고독하고 불안했다. 도시의 매연과 회색 속에서는 몽상과 꿈도 매캐하고 음울했다. 그런데 로미의 고독과 불안의 색이 너무도 다채롭고 사랑스러워서 위로받을 수 있었고, 로미의 손길을 받으며 나는 나만의 정신적인 지세, 몽상의 이미지들에 대해 꿈꿔보기 시작했던 것 같다.



'몽상의 중심들이 꿈의 인간에게 소통의 도구'라는 프랑스의 철학자 가스통 바슐라르의 말처럼 로미가 세상에서 읽어내는 몽상의 언어가 이미지가 되어 우리와 계속해서 소통해 주기를 조심스럽게 바랬다.



박새로미 개인전 <이세계> 중, 70-70_몽환시_2020_11_04_drawing_on_digital_print
시인 이혜미의 박새로미 작가소개
 
박새로미 작가는 존재 속에서 뒤섞이는 시간의 이미지들을
포착하려는 드문 시도를 보여준다. 화폭을 자유롭게 이용함으로써
4차원의 광대함을 표현하였고, 세계와 인간 존재 간의 연결감을
그 특유의 섬세하고도 대담한 방식으로 구현해 내었다


1995, 개인적인 봄
-김소연

세상에 대해 나는 당신들의 바깥에 있다.
개천가를 둘러싼
황색의 개나리들처럼. 또한 헐렁한 반지처럼
에워싸며. 살찌지 말거라, 중심이여.

오늘도 나는 외곽을 맴돌며
적적하였다. 초가도 흥얼거렸으므로,
당신들에게
들리지 않도록 아주 작게 불렀다.

변두리 시장에서
아기 거북이 아기 거북을 업고 가는 것을
봤다. 업힌 거북도
반쯤은 걸어야 했다.
펄펄 뛰는 미꾸라지들. 가장 큰 놈 한 마리는
죽었다. 늘씬하게 뻗어 아무렇게나 출렁이는,
그의
힘없는 전신. 작은놈들이 마구마구 넘나 든다.
좋은 풍경이다.

풀들은 다 같이 피어야 한다고
선동하지 않았다. 저 혼자
황폐한 이 대지에 여린 주먹을 짚고 힘껏
제 무릎을 편다. 각자가 그렇게 핀 것이다. 무더기무더기,

그런 봄나물을 사기 위해
좌판 앞에 머물렀다가
반지를 잃어버렸다. 그런 후에
필요 이상으로 내가 야위어졌다는 것을
알아챘다. 그래도

사랑에 대해서만큼은 아직 당신들 안쪽에
있기로 했다. 가장 여린 배춧잎과 같아서 최후에야
식탁에 오르도록.


파티와 함께 했던 김소연 시인의 시


여리여리한 배춧잎처럼 잠시 포개어져 있자



'살찌지 말거라, 중심이여.' 김소연 시인의 목소리가 들리는 지엄하게 호령하는 말투가 마음에 들었다. 물론 대지의 여신이 외는 주문처럼 부드럽고 신비롭게 들리는 사람도 있겠지만, 나는 어쩐지 시인의 결연함이 느껴졌고 그래서 단숨에 좋아하기 시작한 시였다. 인간 존재의 정수나 골수 같은 것을 중심에 비유하고, 현실 속의 모든 조건들; 재산, 재위, 직업, 스펙, 등의 '살'이 들러붙어 바깥의 삶을 들여다보지 못하는 것을 경계하라는 말 같았다.


'펄펄 뛰는 미꾸라지, 마구마구, 풀, 선동, 여린 주먹, 봄나물, 여린 배춧잎, 외곽'의 낮은 삶들이 북적이는 오래된 시장통이 떠오르는 단어들, 그래서 민중시같이 느껴지는 이 시에서 나는 봄의 개천가를 흐드러지게 에워싼 황색의 개나리들과 반짝이는 반지를 머릿속에 그려보고 탄성을 내질렀다. 조금은 휘어진 개천가에 피어난 노란 개나리 자국들이 마치 반지의 한 부분처럼 빙돌아 피어있고, 그 개나리 군락처럼 황색으로 빛나는(어쩐지 금반지) 매끈하고 헐렁해서 손가락을 빙빙 도는 시인의 반지가 아른거린다. 찌지 않은 중심을 가진 헐거운 사물에 자신을 비유하고 있는 것 같았다.


삶의 외곽을 돌며, 아주 날카로운 눈매로 중심의 사랑을, 사랑의 중심점을 짚어내고자 하는 시인의 의지가 보였기 때문일까. 인간의 살(앞에 명시한 삶의 조건들)을 발라 남은 뼈 같은 것이 사랑이라고, 영혼은 individuality 우리 모두가 다르게 가지고 있는 것, 그러므로 사랑은 우리를 모두 같게 만드는 것이라는 프랑스의 철학자 시몬 베유의 말이 떠오른다.


로미의 초기 판화 작업 <젖먹이는 엄마고양이>


외곽을 돌아야만 거친 결을 가진 모두의 삶을 들여다볼 수 있기에, 시인이 우리 대신 선동하지 않는 풀처럼 사회에 순종하며 살아가는 이웃을 보듬어주고 있다. 또 그분들이 우리의 어머니였고, 할머니였고, 가족이라는 사실과 우리의 일상을 이뤘던 과거의 것들이 우리 안에서 '중심'을 이루고 있다는 것을 다시금 새기게 한다.


우리 각자가 이렇게 '무더기 무더기' 채로 피어있어서 시인의 잃어버린 반지와 같은 이 언어들을 만나 보듬어지고 있었다. 그가 여위어 바깥을 돌지 못하는 동안에, 이 시로 보듬 당한 누군가가 또 외곽을 맴돌고 초가를 작게 흥얼거리며 적적해하고 있을 것이다. 겹겹이 폭신하게 쌓여 여리기만 한 아기 배춧잎인 우리가 마침내 우걱우걱 씹히는 스스로의 역할을 다할 수 있을 때까지 우리는 시와 음악, 그림 같은 아름다운 것들에 폭 쌓여 서로에게 포개져 지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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