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당을 나온 암탉>을 다시 보고
반복되는 현실에 꿈도 모른채 살아가던 어느날, 다른 새들과 함께 폐계 웅덩이로 내팽겨친다.
그 새 이름은 잎싹이. 잎싹이에는 차이가 하나 있었다.
잎싹이는 주어진 모이만 먹던 현실에서도, 늘 마당 너머를 쳐다봤다. 자기가 속한 닭장 너머에 더 좋은 풍경이 있다는 걸 믿게 된다. 마당에 있는 병아리와 살아가는 새들을 본 것이다. 그러다 점차 그 장면은 선명해진다. 상상은 곧 현실이 되니까.
그러나 더 넓은 세상으로 내팽겨진 잎싹이는 처음에는 그 사실을 모른다.
늘 족제비로부터 안전한 곳을 찾아야 하던 잎싹이에게 여유는 사치였으니까.
영화의 이야기는 잎싹의 꿈을 따라간다. 상상이 현실이 되었지만, 마냥 기쁜 건 아니다. 제비의 공격에 늘 숨 죽여야 하고, 다가오는 추위에도 견뎌야 한다. 직접 사냥도 나서야 한다. 마당 밖의 삶은 어쩌면 이전보다 어렵고 고난한 삶이다.
그래도 믿었던 친구를 떠나지만, 새로운 친구를 만나기도 한다. 잎싹의 상상이 현실이 되는 과정을 통해, 우리는 잎싹의 성장과 성숙을 본다. 이를 통해 삶의 의미와 여운을 느낀다. 우리도 결국 타서 사라지고 마는 유성 같은 삶을 살아가지만, 그래도 의미 있는 삶은 이러한 상상을 직접 겪는 것이니까.
그중에서도 하이라이트는 오로지 자신의 용기 하나로 키운 아이 하나가 세상을 향해 나아가겠다고 말하는 순간이다. 그게 사랑의 가장 큰 결실이라고 생각하는 나는 얼마전부터 이 영화가 보고 싶었다. 불완전하지만, 그래. 함께하면 좀 나아졌다는 이유만으로 어떻게든 해내니까. 잎싹이는 나같았다.
꿈이 있는 한, 삶은 설명할 수 없는 에너지로 가득 차기 마련이다.
그러나 꿈 안에 들어간다고 해도 휘청거리는 순간이 있다.
휘청거리고 비틀댈 때, 그것을 지탱해주는 건 용기다. 그리고 용기는 자신이 사랑하는 것들을 믿는 것에서 나온다. 잎싹이는 자신의 목숨과도 같은 나그네를 떠올리고, 아이를 사랑하고, 자신의 주변을 사랑한다.
바람과 햇빛을 양껏 마시고, 떨어진 뒤에는 거름이 되는 잎싹.
이름에서도 그렇듯이, 영화속 잎싹이의 모습에서 우리는 우리네 삶의 한 사이클을 경험한다.
위험 없는 삶이란 없어.
마지막까지 온전히 지나올때까지, 절대 아무것도 예측할 수 없어.
어느 하나, 너의 계획대로 흘러갈 수가 없을 지도 몰라.
결국 그 위험 속에서 자기 자신을 온전히 채워넣고, 노력하는 용기가 필요해.
그걸 한번 알게 된 너는, 삶이 당신을 내팽겨쳤다고 느낄때, 새로운 시작이라고 생각해보면 어떨까?
새로운 삶에 대해 꿈꿔보지 않는다면, 새로운 길이 열리는 걸 몰라.
나는 확언으로 말을 하는 편이 아니다. 그래서 말로 전하기보다는, 일기에 적고 브런치에 글을 남긴다.
그렇기에 나는 이렇게 콘텐츠를 나누는 걸 너무 좋아한다. 그런 사랑이 내게 나타날까?
이 지구 수 많은 사람중에서, 서로의 생각을 속삭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