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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숙영낭자 Jan 31. 2018

나도, 당당한 피해자입니다

미투(Me, too) 운동, 희망은 바로 여기에 


인터뷰 내내 그녀의 목소리는 떨리고 있었다. 

수년 전 성추행을 당했던 그 날의 기억을 되짚을 때마다 자꾸만 파도치는 감정을 애써 가라앉히려 

심호흡을 하던 모습에서 나는 그녀의 증언이 진실임을 직감했다. 

어제 JTBC 뉴스룸에 출연한 서지현 검사의 고백을 들었을 때, 나 역시 오래전 '그날'의 기억이 떠올라 몇 번이고 심호흡을 해야 했다. 가해자는 절대 모르는, 하지만 피해자는 아무리 오랜 시간이 지나도 잊을 수가 없는 기억. 떠올리기조차도 끔찍해서 의식의 가장 깊숙한 곳으로 봉인해 버렸던 그 기억이... 


그날은 25년 전, 중학교 1학년 여름날이었다. 

몸이 좋지 않아서 늦잠을 잤고 지각을 했다. 너무 늦어버린 탓에 마음을 비우고 천천히 한산한 등굣길을 혼자 걸었다. 갑자기 등 뒤에서 한 남자의 목소리가 들렸다. 

"학생, 지금 몇 시예요?"

반사적으로 손목시계를 보며 시간을 말해주려는 찰나, 남자의 억센 손이 내 가슴을 움켜쥐었다. 

너무나 놀란 나는 비명을 지르며 몸을 비틀어 겨우 남자의 손아귀에서 빠져나왔다. 그리고선 걸어서 15분 거리인 집까지 단숨에 뛰어왔다. 그 남자가 날 뒤쫓아올까 봐 무서워서 단 1초도 쉬지 않고 미친 듯이 내달렸다. 집에 도착해 현관문을 열고 거실에 있던 엄마 아빠를 보는 순간 주저앉았다. 그리고 엉엉 울었다. 문자 그대로  나는 대성통곡했다.


그 뒤로 학교에 갈 때마다 한동안 아빠가 동행했다. 그 등굣길을 걸을 때마다 너무 무서웠다. 그놈이 또 어디선가 나타나 나를 으슥한 곳으로 끌고 갈 것만 같았다. 그 등굣길 바로 옆에는 산으로 통하는 길이 있었는데 여차하면 저 어두운 숲 속에서 당할 뻔했겠구나 생각하니 소름이 돋았다. 지금 글을 쓰는 이 순간에도 그놈 목소리가 생생히 떠오르는 것 같다. 


더 끔찍한 것은 중학교 1학년 등굣길에 겪은 일이 처음이자 마지막이 아니라는 것이다. 

기억을 더듬어보니 12살 여름방학 때도 나는 성추행을 겪었다. 

그때 나는 광주 외가에서 방학을 보내고 있었는데 사촌언니를 따라 근처 문방구에 학용품을 사러 갔었다. 

그런데 문방구 남자 직원이 민소매 상의를 입고 있었던 내 팔뚝과 어깨를 자꾸만 쓰다듬는 거다. 

처음에 난 우리가 찾는 물건의 위치를 알려주기 위해서 내 팔을 붙잡는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다. 

그 뜨겁고도 축축한 남자의 손은 더 노골적으로 내 드러난 팔뚝을 만져댔고 나는 의아한 눈길로 그 직원을 쳐다봤지만 그놈은 "학생이 예뻐서 그래요." 라면서 행동을 멈추지 않았다. 

집에 돌아와 이모 삼촌한테 문방구 아저씨의 행동에 대해서 말했더니 다들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분위기였고, 나는 내가 예민한가? 별 거 아닌 걸 일러바치는 나쁜 아이인가? 하는 생각이 들면서 움츠러들었다. 


그리고 9살 때... 지금 생각해보면 이때가 제일 추접했던 것 같다. 

그때 우리 부모님은 작은 양말공장을 운영하고 있었는데 아래층이 공장이고 위층이 공장 언니 오빠들과 우리 가족이 지내는 숙소로 되어 있는 구조였다. 공장에 스무 명 가까운 언니 오빠들이 동거 동락했는데 9살이었던 내가 삼촌이 아닌 오빠로 불렀으니 연령대가 10대 후반이나 20대 초반이 대부분이었으리라. 

이름도 기억 안나는 수많은 오빠들이 틈날 때마다 나를 자기네 방으로 불러서 노리개로 삼았다. 

그땐 그 오빠들이 날 만지고 뒹굴고 하던 것이 날 예뻐해서 그러는 줄로만 알았다. 

정말 그렇게 믿었다. 순진하게도! 

그중 기억나는 한 가지. 어떤 오빠가 여자 친구랑 데이트를 하러 가는데 키스 연습을 해야 한다면서 내 입술에 뽀뽀를 해대던 것. 급기야 입 속으로 쑥 들어오던 그 혓바닥의 감촉이 어린 마음에도 낯설고도 이상해서 도리질을 쳤던 기억이 난다. 지금 생각하면 9살 어린 여자아이를 상대로 한 그들의 추잡하고 역겨운 행동에 구역질이 난다. 그땐 그게 노골적인 성추행이라는 걸 왜 몰랐을까! 우리 부모님은 공장일이 너무나 바빠서 공장 오빠들(나쁜 넘들!)의 그런 행동을 인지조차 못하셨던 것 같다. 


9살, 12살, 14살 이렇게 세 번에 걸쳐 내가 겪었던 성추행을 돌이켜보니 정말 이름도 얼굴도 모르는 그놈들이 가증스럽고 다시 만날 수 있다면 거시기를 걷어차 주고 싶은 심정이다. 다행히(?) 성폭행은 겪지 않았다고 그나마 그 정도는 양호한 수준이라고 한다면, 그리고 평범하기 그지없는 나 같은 아이조차 세 번이나 성추행을 겪었다고 한다면 도대체 이 세상에 얼마나 많은 소녀들이 성범죄에 노출되어 있는 것일까? 

성희롱, 성추행, 성폭행... 이름이나 강도는 다를지라도 모두 '성범죄'에 해당되는 추악한 짓이다. 

그리고 그 추악한 짓을 저지른 가해자들은 '기억이 나지 않는다'라고 말한다. 

그러나 그 추악한 짓을 당한 피자들은 수십 년이 지나도, 아니 죽을 때까지도 선명하게 '기억한다'.




미국 체조대표팀의 전 주치의 래리 나사르가 수십 년간 어린 선수들을 성추행 또는 성폭행한 죄로 175년 형을 선고받았다는 기사를 봤다. 175년이라는, 사실상 사형 선고나 다름없는 그 형량도 인상적이었지만 무엇보다 인상적이었던 건 그 재판정에서 그 주치의에게 피해를 당한 여성들이 나와 증언을 하는 모습이었다. 

래리 나사르에게 6살 때부터 성폭행을 당한 카일 스티븐스. 그녀는 이렇게 말했다.
어린 여자아이들은 영원히 어리지 않다.
강력한 여성으로 변해 당신의 세계를 박살 내려 돌아온다.

그녀의 말을 들으니 수많은 '공장 오빠들'에게 성추행을 당했던 9살의 내가 

더 이상 수치스럽게 느껴지지 않는다. 

그로부터 30년이 지나 나는 두 아이의 엄마라는 강력한 여성이 되었고

박살 내버릴 그놈들의 얼굴도 이름도 모르지만 언젠가 그들은 어떤 식으로든 대가를 치르게 될 것이다. 


할리우드에서 성범죄 피해사실을 당당하게 고백한 여배우들로 촉발되어 전 세계로 퍼져나가고 있는 

'미투(Me too)'운동. 

그 운동을 지지한다는 의미로 모두가 블랙 의상을 입었던 올해 골든글로브 시상식에서 단연 화제가 된 건 

바로 특별상을 수상한 오프라 윈프리의 연설이었다. 

아주 오래전부터 자신 역시 성폭력 피해자임을 고백하고 자신의 쇼에 성폭력 피해자들을 초대해 

유의미한 메시지를 던져왔던 오프라 윈프리. 

그녀의 말 한마디가 상처받은 채 내 안에 꽁꽁 숨어있던 어린 소녀를 끄집어냈다. 

"소녀들이여! 새로운 세상이 오고 있노라니!"


가해자보다 피해자가 더 당당한 세상을 위해, 

더 이상 그 누구도 '미 투'라고 말하지 않는 세상을 위해서, 

미 투. 


http://tv.naver.com/v/25215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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