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부 모로코의 사하브(Friends) - 05. 잠자는 경비견, 자크
내가 일하는 시민의 집에는 경비견 한마리가 있었다. 이름은 ‘자크’,종은 ‘셰퍼드’다. 하지만 이 녀석이 온종일 하는 일이라고는 ‘잠자기’뿐이다. 아이들이 있든 말든 사람들이 지나가든 말든 천하 태평하게 잠만 잔다. 또 순하기는 어찌나 순한지 아이들이 볼을 꼬집든 말든, 머리를 때리든 말든, 고양이가 옆에서 자든 말든 오로지 잠만 잔다. 잠자는 걸 보면 개라는 존재 이상의 무언가를 초월한 느낌마저 들 정도였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쉬는 시간에 혓바닥을 ‘메롱’하고 자고 있는 자크를 발견했다. 따뜻한 햇볕을 받아가며 자는 녀석이 귀여워 얼른 삼각대를 세워놓고 자크 옆에서 사진을 찍었다. 녀석은 내 발자국 소리에 잠시 잠을 깨서 나를 한 번 쳐다보더니 또다시 잠을 잔다. ‘옆에서 사진을 찍든 말든 나는 잘 거다’라는 심보인 듯 했다.
헌데 이상한 점은 이 녀석은 비가와도 눈이 와도 바람이 불어도 있을 곳이라곤 없다는 것이었다. 심지어 밥그릇도 없었다. 비가 오면 비를 맞고 덜덜 떨면서 슬픈 눈으로 구석에 앉아 있는 게 전부였다. 궁금해서 경비아저씨에게 여쭤봤더니 이 녀석은 어느 날부터인가 이곳에 와서 살기 시작했고, 매일 밤 밥을 찾아 동네를 다니며 쓰레기를 뒤진단다. 그래서 낮에는 피곤해서 하루 종일 잠만 자는 거라고. 그러니 당연히 집도 없고 주인도 없었다.
그러고 보면 사람 발길이 끊긴 늦은 밤이면 개들이 동네 순찰을 다니곤 했다. 잠자다가 ‘컹 컹’ 개 짖는 소리에 창밖을 내다보면 동네에 무슨 개들이 이렇게 많은지 서로 모여서 이야기를 나누고 인사를 나누고는 사라지곤 했었다. 아마 자크도 동네 개들 사이에서 영역다툼도 하고 먹이도 찾아 다녔겠지? 가끔 몸에 난 상처와 눈의 염증이 밤사이 일어난 사건을 알려주는 것만 같아 가슴이 아팠다.
이후 나는 자크의 집과 밥그릇을 사주려고 티플렛을 돌아다녔다. 하지만 모로코에서 개집은 원래 없는 건지 안파는 건지 모두 개집을 찾는 나를 신기해했다. 심지어 어떤 아주머니는
“사람들도 집이 없는데, 개집은 무슨!”
이라며 역정을 내시기도 했다. 어릴 때부터 동물과 함께 자란 나는 가끔 동물과 사람을 동일시하곤 한다. 그러다 보니 사람들과 갈등에 놓이기도 한다. 그래도 난 한국에 가기 전 이 녀석에게 편히 쉴 수 있는 따뜻한 집과 밥그릇을 꼭 선물해 주고 싶었다.
그러나 여기저기 발품을 팔아가며 힘겹게 구한 건 개 사료뿐이었다.
그래도 자크가 맛있게 먹어줄 것이라 생각하면서 자크에게 달려가 사료를 한 주먹 부어주었다. 하지만 이미 사람들이 먹다 버린 고기 맛에 길들여진 터라 녀석은 내가 주는 사료에는 입도 대지 않았다.
그런데 이런 내 노력과 마음을 아는지, 내가 사준 사료를 먹지 않아 미안한 건지 어느 순간 자크는 내 마음에 답을 해주었다. 나를 보고도 시큰둥하게 잠만 자던 녀석이 어느 순간부터 나를 보고 꼬리를 치고 바닥에 누워 애교를 부리기까지 했다. 덩치가 산 만한 녀석이 달려들며 앞발로 나를 툭 칠 때는 살짝 버겁긴 했지만 녀석이 나에게 마음을 연 것의 표현이니 기쁨이 더 컸다.
사실 내가 자크를 위해 해줄 수 있는 것이 많지는 않았다. 그저 기관에 갈 때마다 자크를 쓰다듬어주고, 음식을 가져다주고, 경비원 아저씨에게 부탁해서 목욕을 시키는 게 전부였다. 하지만 녀석은 내가 힘들 때마다 다가와 애교도 부려주었고, 나의 주저 없는 하소연도 쿨쿨 자며 들어주기도 했다. 무엇보다 자크를 보면 한국에 있을 우리 집 강아지들이 생각나 마음이 따뜻해졌다. 외로운 나에게 묵묵히 다가와 친구가 되어준 고마운 자크.
여전히 순한 눈으로 기관 한 구석에서 잠만 자고 있을 내 친구 경비견 자크야. 오늘 밤도 사람들이 모두 잠든 새벽에 다른 개들과 싸우며 먹을 것을 찾아 나서고 있니? 자크! 누나가 응원할게! 오늘도 건투를 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