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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뤼메 Dec 18. 2019

선물 고르기가 제일 어려웠어요

지금 필요한 건 너와 나의 텔레파시

 일할 때 알게 된 팀장님이 한 분 계신다. 일을 다 마치고 우스갯소리로 "다음에 서울 올라오면 연락해! 밥 사줄게!"라고 말하셨는데, 내가 또 농담을 진담으로 만드는 사람 아니겠는가. 무려 몇 달이나 흐른 후, 아무 날도 아니었던 어느 날 팀장님께 전화를 했다. "팀장님 저 올라왔습니다. 밥 사주세요!". 급작스럽게 연락드린 터라 거절을 하실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던 차에 답이 돌아왔다. "너 올라왔는데 없는 시간도 만들어야지. 밥 먹자!".


 밥을 사주신다는데 빈 손으로 갈 수가 있나. 전화를 걸 때까지 아무 생각이 없던 나의 고민은 전화를 끊고부터 시작되었다. 도대체 뭘 사가야 되지? '40대. 가정이 있는 아버지'. 아무리 고민을 해도 알 수 없었다. 가정이 있으시니 아이들이 좋아하는 것으로 사야 하는 건지, 나를 만난 후 다시 회사로 돌아가실 테니 회사 사람들과 함께 나눌 수 있는 것을 사야 하는 건지, 아니면 팀장님만을 위한 것을 사도 되는 것인지 갈피가 잡히지 않았다. 빵집에 들어가 빵을 들었다 놓기도 하고(빵은 쉽게 사 먹을 수 있는 건데 또 선물로 빵?), 양말을 들었다 놓기도 하며(고민 끝에 집어 든 게 양말? 양말이 뭐니 양말이...) 고민의 시간이 길어졌다. 시간이 흐를수록 내가 이렇게도 센스가 없는 사람이었나 싶은 회의감이 들기 시작했다.


 적어도 안 주는 것만 못한 선물만큼은 피하고 싶었다. 그렇게 서울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는 내내 내 머릿속 한켠은 '선물'로 점 칠 되어 있었다. 뭐사지뭐사지뭐사지뭐사지.



선물이란 모름지기

내 돈 주고 사긴 아까운 것을 줘야 하는 법


이 고민을 해결해준 건 팀장님을 잘 알지도 못하는 친구였다. 누가 봐도 고민이 많다는 얼굴을 하고 있는 나에게 친구는 물었다. "그래서 타켓은 가정이 있는 40대 아버지이고, 네가 선물 구매에 쓸 수 있는 예산은 00000이라고?". 타겟과 예산을 들은 친구는 빠르고 신속하게 선물을 추천하기 시작했다. 원래 가정이 있는 분들에게 선물을 주면 어머니의 손에 들어가게 되어 있다며, 아버지가 아닌 어머니가 만족하실 수 있는 선물을 사는 게 좋다고 했다. 친구가 추천한 3가지의 후보군들 중 신중하게 선택한 선물은 바로 고급 카라멜 세트.

고민 끝에 선택한 성수연방 인덱스 카라멜

 원래 선물이란 내가 한 번쯤은 해보고 싶지만 내 돈 주고는 하기 아까운 것들을 사서 주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내가 생각하기에 고급카라멜세트가 바로 그러한 것 중 하나였다. 일반적으로 먹는 카라멜 하고는 결이 다르고, 고급포장지로 '나 선물 받았어!' 티를 낼 수 있으며, 아이들에게 줘도 되고, 회사 동료들에게 쉽게 나눌 수 있는 것. 그것이 바로 이 카라멜세트였던 것이다.


 선물은 성공적이었다. 나는 그렇게 생각하고 있다. 선의의 거짓말일 수도 있지만, 아이들이 맛있게 먹는 후기 사진까지 왔으니 성공적인 선물이었다 말할 수 있지 않을까.



올해 내가 세운 큰 목표가 하나 있다. 원래 친구들 생일에는 제일 무난한 스타벅스 세트 모바일 쿠폰이나 케이크 모바일 쿠폰을 보내고는 했는데, 올해는 내 돈 주고 사기는 애매한 '물건'들을 사서 보내주기로 마음먹은 것이다. 부모님이 제일 받고 싶은 선물이 '현금'인 것처럼, 결국 실용적인 선물이 최고라는 것을 알지만 실용적인 선물은 쉽게 잊혀진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부터가 스타벅스 쿠폰을 주면 잘 사용했지만, 사용하고 나서는 선물을 받았다는 것조차 잊고는 했으니까.


내 목표에 따라 친구들의 생일이 되면 없어도 잘 살았지만 있으면 좋은 것들을 사서 보냈다. 고향에 강아지를 두고 타향살이를 하고 있는 친구에게는 강아지 모양 무드등을, 소맥을 1대 1로 타 먹는 친구에게는 소맥 비율이 그려진 맥주잔 세트를 보내는 식이었다. 물론 그 과정에서 실패도 있었다. 허리가 아픈 친구에게 침대에서도 쓸 수 있는 미니 테이블을 선물해서 보냈는데, 그 친구에게 제일 좋지 않은 자세가 낮은 탁자를 펴고 앉아있는 자세였다. 결국 그 선물은 반환되고 대신 러쉬 비누를 하나 선물해 주었다.


무난한 선물을 주는 것은 사실 상대방뿐만 아니라 나도 편한 방법이다. 오히려 무난하지 않은 것을 선물해 주는 것은 여러 가지의 고민을 필요로 한다. 상대방의 취향에 안 맞으면 어쩌지, 내가 준 선물이 이미 있는 거면 어쩌지 하는 걱정도 동반한다. 그럼에도 올 한 해 꿋꿋이 친구들에게 특이한 선물을 주며 '고맙다' 이외의 말을 꾸준히 들었다. 친구의 생일이 훌쩍 넘은 후에도 네가 준 선물로 뭔가를 했다는 말을 들을 때면 '이게 선물의 묘미지'하고 혼자 뿌듯해했달까.


역시 선물 고르기는 너무 어렵다. 그냥 무난하게 대다수가 좋아하는 BESTSELLER 선물을 주고 말지 싶기도 한다. 그럼에도 나는 내년에 또 이런 고민의 시간을 거친 선물을 친구들에게 줄 것 같다. 선물이란 소중한 사람에게 보내는 것이기 때문에 하루 정도는 소중한 상대를 생각하는 시간도 의미가 있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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