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조은강 Apr 01. 2023

벚꽃비에 처음 젖었던 날

어느 마을 골목이나 연분홍으로 물든 시절이 와서

처음인 듯 황홀하게 취해 있습니다.

꿀벌 한 마리가 매달린 벚꽃 한 송이는 서툰 저라도 그릴 듯 단순한데, 무리지은 송이송이... 어떤 색으로 칠해야 할지 감조차 오지 않습니다.

차라리 벚나무가 피어내는 안개인 듯 스며드는 분위기에 사람들도 무리지어 밥을 먹고 사진을 찍습니다.

생각해 보니 예전엔 벚꽃 길이 관광지가 될 만큼 흔치 않아서 저도 꽤 늦게서야 벚꽃을 본 것 같습니다.

고등학교는 역사가 길어서 교사는 사계절 내내 꽃으로 장식되어 있었죠.

그중에서도 벚꽃은 처음으로 뜨겁게 신입생들을 환영해주는 선배였습니다. 벚꽃 왕벚꽃 겹벚꽃...적어도 수령 50년, 떡벌어진 세계에서 어찌 저렇게 수줍은 마음이 피었을까 신기했다가, 새파란 하늘을 희고 곱게 칠한 꽃그늘을 정신없이 보다가, 바람 어 꽃틈을 비집고 반짝이는 햇살에 눈부실 때는 웨딩드레스 같기도 했습니다.

벚꽃은 질 때도 아름다워서 전혀 아쉽지 않았습니다. 사실 열일곱 이쪽저쪽의 나이 아이들의 꽃 시력은 별로 좋지 않은 법이라 다른 꽃은 기억에도 없지만 말이죠.

그 시절 꽃잎들이 바람을 타고 친구들의 빛나는 머리카락 속으로 숨을 때는 웃기에 바빴지 새 계절이 열리는 걸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생각해보니 벚꽃잎이 투명에 가깝도록 얇고 연하고 작은 건 는개처럼 사람 가슴에 봄 훈기를 나르기 위한 것이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렇게나 캄캄하고 시렸던 그 시절의 저를 전혀 다른 무대로 가게 해주었던 걸 보면 말이에요. 어둡고 보잘 것 없던 아이에게도 50이 넘은 생명체는 다 안다고 말해주는 대신 아름다워서 얻는 행복을 가슴속에 넣어준 것이죠.

바람에 하늘로 길을 내거나 빗물에 분홍 카페트를 만들 때, 벚나무는 짧은 화려함이 끝나는 데도 서운해하기 보다 마지막까지 알뜰하게 봄엽서를 나누고 다른 꽃들의 초록 배경이 되어 주었습니다.


어른이 되어 벚꽃보다는 소나무를 더 좋아한다는 말이나 하는 무뚝뚝한 사람이 되었지만, 일주일 정도 봄의 화려한 인사를 받을 때는 가만히 온기를 받아 봅니다. 혼자 있을 때는 작지만 함께 모여 공기를 분홍빛으로 만드는 사람들이 어디엔가 있을 거라고 속삭여 봅니다.

벚꽃비가 마지막 한 잎까지 사라지고 나면, 계절을 모르도록 바쁘거나 힘들게 지낼테죠. 그래도 봄이 있었다는 건 잊지 않고 지낼 거라 생각합니다.


어떤 이유도 논리도 설명도 없이, 그리고 수고한 적도 대가도 치른 적 없이  일 년마다 일주일은 행복을 약속받았으니, 힘든 날에도 삶 좋은 이유 하나가 되지 않을까 생각해 봅니다.

작가의 이전글 허니와 클로버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