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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은강 Apr 21. 2023

Jagged little pills

-언젠가 죽음이 우리를 갈라놓을 때까지

지금 세상 어디선가 누군가  울고 있다
이유없이 울고 있는 사람은
나 때문에 울고 있다


릴케의 시 <엄숙한 시간>은 훌륭한 예술답게 때마다 다른 감상을 줍니다.

어릴 때는 이해하지 못했다가

젊을 때는 세상의 불의에 외면하는 나를 아프게 했다가

울고 있는 사람이 되는 경험을 거쳐서는 붓다의 화두로 읽히기도 합니다.

하지만 액면 그대로 읽어 봅니다.

지금 이 순간, 누군가 울고 누군가 웃고 누군가 태어나고 누군가 죽고 있습니다.

이 모든 것이 '나' 인 우리 모두와 연결됩니다.

풍랑 속에 다행히 항구에 있거나 위험하게 망망대해에 떠있거나 해도 인생으로서  과거가 될 순간입니다.

<한오백년>이라는 노래 가사는 민요에서 따왔는데 그 내용이 슬프기 보다 처절합니다.


한 많은 이 세상 냉정한 세상
동정심 없어서 나는 못살겠네
아무렴 그렇지 그렇고 말구
한오백 년 사자는데 웬 성화요


못 살겠다며 아픔을 토로하지만, 곧바로 오백년 정도만 같이 살자고, 그러지 못해 한스럽다 말합니다.

죽는 것보다 힘들지만 결코 삶을 외면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그 고통을 잡아주는 말은 아무렴..입니다.

듣고 함께 통곡하는 손길...

그 손에 붙들려 어느 시절은 억지로 삶으로 끌려다니고,

또 어느 때는 내가 악다구니 써가며 누군가를 이승으로 끌고 오기도 합니다.

저는  몇 번의 고비들을 그렇게 넋 놓으며 아슬한 청춘을 넘어갔습니다.


Jagged little pill은 제가 한때 열심히 들었던 알라니스 모리셋의 앨범 명입니다.

그때는 Ironic을 듣느라 앨범명에 관심을 두지 않았지만,

들쭉날쭉한 작은 알약들... 그러니까 앨범의 노래들은 호되게 앓던 젊은 로커의 처방전 모음이었다는 생각이 듭니다.

..어떤 예술이 다르겠어요.

예술일 수 있는 모든 것이 생채기에서 나온 진물 아니면 약일 겁니다.

예술이 아니라 그저 같이 살아가는 곁의 사람들의 지친 눈빛도 같은 과정을 지나갔을 거예요.

그러니까 우선은 손을 뻗어 보았으면 좋겠습니다.


하지만 손가락 하나 움직이기 힘들고

타인과 는 마치기 힘들 때는 모든 것이 무의미합니다.

그래서 저는 우리는 다 아프다고 말하고 싶은 게 아니라,

다 지나간다고 말하고 싶은 게 아니라,

각자의 못생긴 알약봉지를 챙기자고 권하고 싶습니다.

저에게 해주는 말일 수도 있겠고요..

수없이 같은 말을 했습니다.

유명한 사람이 아니라 전달력이 약하니 어쩔 수 없지만,

수동적인 즉음이라는 인간의 숙명을 누리지 못한 어린 사람들에게 약을 챙기라고 하고 싶어요.


자살률 1위인데는 이유가 있겠죠.

기운을 좀 차리면 사회와 싸워도 좋겠죠.

하지만 우선은 상처부터 치료하고요...

사람, 예술, 종교... 그 어떤 것도 소용없는 시간을 겪어봐서, 그게 병이라고 말해줄 수 있습니다.

아플 때는 병원에 가야죠.

상담도 좋지만 급할 때는 차라리 약처방을 해주는 병원을 찾으세요.

분명한 건, 약을 먹으면 달라진다는 거예요...

그렇게라도 한 고개 넘겨 다시 삶으로 오세요.

뭐가 달라질까요?

저는 모르겠습니다.

약을 먹는다고 깎아지른 절벽을 한 걸음에 가뿐히 넘을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존재를 삼카는 파도가 거푸 달겨드는 것도 똑같아요.

한 많은 이 세상이 좀더 연장될 뿐일 수도 있어서

미치도록 지겹기도 합니다.


그래도 약을 먹으면 하나에는 인정하게 됩니다.

인간은 죽음을 하는 것이 아니라 당해야 하는 게 순리라는 것,

우연히 태어난 우리에게 사는 목적은 원래 없다는 것.

죽을 정도로 힘든 건 견디지 말아야 한다는 것.

모든 인간은 결국 죽는다는 것.

내가 아무리 고독하다 믿는다 해도 난 어딘가와 연결되어 있어서 결코 혼자 죽지 않고 연결된 이들의 많은 걸 죽여놓고 간다는 것.

그래서 우리는

죽음이 우리를 갈라놓을 때까지


살아야 한다는 것.


죽지 말아요, 우리.

그냥, 살아있으니까 살아가요.

그래도 큰일은 일어나지 않아요.

단지 우리가 능동적으로 죽는 일이 세상을 무너뜨릴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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