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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준수 Apr 03. 2024

선생님 자녀는 어떻게 키우시는데요?

운동하고 읽고 쓰고 좋은 것 먹고. 성장 불안에 대비하는 좋은 습관

삼국지 같은 옛이야기에는 곧잘 꾀주머니가 등장한다. 꾀주머니는 비상 상황 대비책으로 위기 상황에 열어보게 되어있다. 보통은 머리가 비상한 군주나 책사가 먼 곳으로 떠나는 장수에게 쥐어준다. 꾀주머니를 받은 장수는 주머니의 존재를 잠시 잊고 지낸다. 그러다 한참 시간이 지난 후 심각한 문제가 터지자 꾀주머니를 열어보게 된다. 주머니 속 묘책을 따르면 문제는 무사히 해결된다. 마법과도 같은 이야기다. 


갑자기 내가 꾀주머니를 떠올리게 된 것은 학부모 상담 때문이었다. 초등학교 교사인 나는 5, 6학년 위주로 담임을 많이 맡았다. 초등 고학년 담임을 하다 보면 학부모님의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아이들이 사춘기에 접어들면서 변하기 때문이다. 사춘기에는 신체적, 정서적으로 많은 변화가 찾아오지만 단연 돋보이는 것은 '독립성'이다. 둥지를 벗어나고자 하는 아기새처럼.


독립성은 나쁜 것이 아니다. 오히려 자녀 양육의 최종 목적이야 말로 개인의 독립이지 않은가. 그럼에도 품 안의 자식으로 소중히 키워온 아이가 개성이 뚜렷해지면 불안해하는 분들이 있다. 머리로는 사춘기라는 특수성을 이해해도 가슴이 다르게 반응하는 것이다. 사춘기가 되면 학생은 자기 생각이 뚜렷해지고, 혼자만의 공간을 요구하기도 한다. 부모의 말을 순종적으로 잘 따르던 과거와는 사뭇 다른 모습이다. 그럼 부모는 당혹스러워한다. 


나는 담임으로서 아이가 교실에서 지내는 모습을 차분히 알려주고 격려해 드린다. 성장의 과정이 다소 두렵고 혼란스러울 수는 있지만 축하해 주어야 할 일이라고. 어쩌면 뻔한 대답일 수 있지만 성장의 기쁨을 응원하는 것이 정론이다. 그럼 대개의 부모님들은 마음을 다잡고 돌아가신다. 


그런데 어떤 한 분께서 내게 이렇게 말씀하신 적이 있다. 편안하게 지켜보는 것이 참 쉽지 않다고, 선생님께서도 직접 아이 사춘기 겪어 보시면 어려울 거라고. 나는 반사적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집에 있는 두 아이 모두 아직 유치원에 다닐 무렵이었다. 선생님은 어떤 식으로 아이를 키우실 거냐는 말이 무겁게 다가왔다.


물론 교사가 아이를 성년이 될 때까지 다 키운 이후라야 교육 상담을 해 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의사가 병을 모두 앓아보지 않고도 진단과 처방을 할 수 있는 것처럼 말이다. 그럼에도 그 학부모님의 말씀이 유독 뇌리에 남았다. 직업 교사는 학급의 아이들을 잘 가르치는 것이 최우선이나, 어떤 분들은 교사 본인의 자녀 교육을 신경 쓰기도 하는구나 하고. 그럴 수도 있겠다 싶었다. 자녀 교육을 잘하는 교사가 반 아이들도 더 잘 가르칠 수 있다는 믿음이 있는 것이다. 


아이가 성장한다는 것은 때때로 불안을 동반하는 일이다.


옛이야기 속 꾀주머니는 인생이 흔들리는 느낌이 들 때 바로 잡아주는 역할을 한다. 자녀 교육이라는 것도 큰 틀에서 보면 꾀주머니 같은 것이 아닐까. 아이가 커 가면서 마주하게 되는 이런저런 상황에서 잘 대처할 수 있는 힘을 길러주는 것. 


나는 학교에서나 가정에서나 아이들에게 강조하는 세 가지가 있다. 운동, 읽고 쓰기, 건강한 식생활이다. 전설 속 꾀주머니는 주머니 속에 쪽지가 들어있는 식이지만, 내가 바라보는 꾀주머니는 그런 것이 아니다. 좋은 습관을 몸에 배도록 하는 것이 진정한 꾀주머니에 가깝다. 하나씩 살펴보자. 


첫째, 운동이다. 체력은 모든 종류의 삶에서 기본이다. 나는 담임을 맡으면 항상 학교 주변으로 산책 수업에 나선다. 동네 쓰레기 주으며 봉사활동을 하기도 하고, 바다와 숲을 배경으로 그림을 그리거나 사진을 찍는다. 점심시간에는 운동장에서 아이들과 철봉 매달리기, 턱걸이를 하기도 한다. 따뜻한 햇볕 아래서 땀을 흘리고 웃다 보면 어느새 마음도 단단해져 있다. 


집에서도 예외는 아니다. 주말이면 반드시 하루 한 코스 이상 자연에서 놀거나 머무는 기회를 마련한다. 꼭 무도 학원이나 피트니스 센터에 가야만 운동을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우리 가족은 일상에서 여가를 보내는 방식 중 하나로 자연 속에서 논다. 


요즘 세상은 너무 편리해서 의식적으로 운동하지 않으면 금방 몸이 쳐진다. 어지간한 거리는 걷거나 자전거를 타는 것이 더 빠른데 차를 탄다.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는 시간에 계단을 오르면 이점이 많다. 하체를 강화할 수 있고, 쓸데없이 스마트폰 보는 낭비를 줄일 수 있다. 매일의 운동은 나의 교육 방침 중 일 번이다.


둘째, 읽고 쓰기다. 초등 교육에서는 3R을 강조한다. 읽기(Reading), 쓰기(wRiting), 셈하기(aRithmatic). 독서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모자람이 없다. 한국의 어린이들은 학습량이 많아 매우 바쁘다. 그런데 의외로 독서 시간이 적다. 영어 문제집 풀고, 수학 선행 교습에 쏟는 시간과 에너지에 비하여 다양한 독서와 글쓰기에 대한 투자는 별로 하지 않는다.


나는 기본이 거꾸로 되지 않았는가 하는 생각을 자주 한다. 폭넓은 독서와 글쓰기는 모든 배움의 근간이다. 교육을 입시로 바라보는 틀에서 벗어나 삶을 완성한다는 관점에서 접근하면 읽고 쓰기를 게을리할 수 없다. 학교에서 나는 아이들과 책을 함께 빌리고 읽는다. 토론도 자주 하고 자기 생각을 글로 쓰게 한다. 


가정에서도 자녀와 도서관에 자주 들르고, 동네 책방에서 휴식을 취한다. 언제 어디서든 책과 가까이 지낼 수 있도록 환경을 만들어주는 것이다. 도서관은 누구에게나 개방되어 있고, 이용 요금이 없으므로 가정의 격차를 극복할 수 있는 중핵 공간이다. 


셋째, 건강한 식습관이다. 아이가 먹는 음식은 그 의미심장함에 비하여 그 중요도를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 학원 스케줄이 빡빡한 아이들이 편의점에서 소시지와 라면으로 끼니를 때우는 장면을 종종 목격한다. 학교 현장체험학습에 삼각 김밥을 싸 오는 경우도 있었다. 과자와 젤리를 비롯해서 아이들이 즐겨 먹는 음식 중 상당수는 가공식품이다. 


합성첨가물 범벅인 가공식품을 먹으면 면역 체계가 망가질 뿐 아니라 뇌에도 악영향을 끼친다. 충동적으로 행동하게 되고 감정 변화도 심해진다. 과도한 열량 섭취로 비만에 이르게 되기도 한다. 학교 급식은 수익을 남기지 않고 아이들의 성장을 고려해 설계된 양질의 식사다. 나는 제자들에게 급식에 나온 유기농 야채와 과일, 잡곡밥을 골고루 먹도록 권한다. 제철 로컬 푸드로 나온 곤드레밥이 아이들 입맛에 맞지 않을 수 있다. 그렇지만 한 입이라도 맛을 봐야 미각이 열린다고 생각한다. 


집에서도 청국장과 현미밥을 즐겨 먹는다. 아침과 저녁에는 계절에 맞는 과일을 곁들인다. 아이들이 야채샐러드에도 조금씩 익숙해지도록 가르쳤다. 지금은 밥공기 사이즈의 샐러드볼에 드레싱을 살짝 뿌려 잘 먹는다. 안 좋은 식습관으로 인해 MZ세대가 베이비부머보다 건강하지 않을 수 있다는 의견이 나오고 있는 만큼 어린이에게 건강한 식습관 교육은 필수이지 않을까.


자연을 즐기고 운동하는 습관은 교육에서 매우 중요하다.


인생은 마법처럼 어느 한순간에 갑자기 활짝 피거나 몰락하기 힘들다고 생각한다. 꾀주머니 이야기 또한 일확천금을 바라는 마음과 같이 대전환이 이루어지기를 바라는 욕심일 것이다. 교육에서도 예외는 없다. 학교에서 학생을 가르치는 것이든, 가정에서 자녀를 키우는 것이든 아이가 바르게 성장하려면 습관이 잘 들어야 한다. 상당한 노력이 들고 세월이 소요되겠지만, 원래 교육이 그렇지 않던가.


사춘기 자녀를 둔 부모님의 마음을 나도 약간은 알게 되었다. 자녀가 초등학교 중학년에 진입하면서 슬슬 독립성의 징후를 보여주고 있다. 그러나 불안하지는 않다. 민들레도 홀씨가 되면 멀리 날아가야 한다. 노란색 꽃일 무렵의 민들레가 예뻤다고 해서 하얀 홀씨를 노란색으로 바꿀 수는 없다. 우리는 그저 함께 비를 맞고, 태양 빛을 받아들이며 소중한 인생을 행복하게 살아갈 뿐이다. 


나는 교실에서 학생이 빛나는 순간을 기록해 두었다가 부모님께 들려드릴 것이다. 학교라는 작은 사회에서 아이는 이렇게 잘하고 있다고. 집에서는 철부지 막내 같아도 밖에 나오면 이렇게 속 깊게 살아가고 있다고 격려의 말씀을 드리려 한다. 더불어 나의 자녀도 제자에게 하는 것처럼 같은 내용을 강조하며 살아가고 있다고 안심시켜 드릴 것이다. 부모의 마음과 교사의 마음은 크게 다르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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