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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화이트 Sep 21. 2023

시골집이 점점 부담스럽다!

두더지가 다 먹어치운 땅콩

남편이 좋아해서 해마다 가장 많이 심는 작물이 땅콩이다. 갓 수확한 땅콩을 깨끗이 씻어 껍질채 삶아 먹는 맛은 아는 사람만 아는 담백한 고소함의 끝판인데 4월에 심어 9월 말이나 되어야 수확하는 땅콩은 사 먹으려면 꽤 비싸다. 농사를 시작할 때 땅콩을 키워서 먹으려는 욕심이 가장 컸는데 십 년 가까운 농사 경험에서 올 해처럼 빈 손을 털기는 처음이다.


고라니, 멧돼지, 새, 벌레들에겐 농작물을 함께 나눠 먹은 적이 있지만 두더지에게 이처럼 모조리 털릴 줄은 몰랐다. 토양살충제를 뿌리지 않는 텃밭이라 굼벵이나 지렁이가 많아서 그걸 먹기 위해 두더지가 굴을 만들어 잔디밭이나 화단, 텃밭을 가리지 않고 흙이 불쑥 파이거나 뜬금없이 올라와 있는 걸 볼 수 있다. 바람개비를 만들어 꽂아도, 두더지 약을 뿌려도, 굴 속으로 연기를 피워 넣거나 호스를 꽂아 물을 하루 종일 틀어 놓아도, 밤송이를 끼워놔도 소용없다. 두더지를 잡는 방법은 포획 틀 뿐이니 그걸 잡아서 또 어떡할 건지 자신이 없다.


가을이 되면 땅콩을 먹을 생각에 설레던 남편이 가장 실망을 했겠지만 땅콩이 여물면 먹으러 오라고 지인들에게 미리 말해 둔 나는 입방정을 탓하며 다시 말할 수밖에 없었다. 땅콩 종자 한 알만 심어도 뿌리마다 주렁주렁 달리던 땅콩을 생각하면 사 먹기가 몹시 억울하지만 내년에 심을 종자조차도 건질 수 없으니 어쩔 수 없다.


해마다 명절이 다가오면 근처에 사는 손위 시누이에게 선물을 드리는데 이번엔 수삼이 한 상자 생겨서 남편이 아침 출근길에 갖다 주려고 어젯밤에 전화를 했다. 용건은 수삼이었는데 시누이와 엮이면 항상 그렇듯이 일이 커지곤 한다. 이번 주말에 농사일할 게 있냐면서 시누이는 함께 시골집으로 가기를 원한다. 땅콩을 캘 시기지만 두더지에게 다 파 먹혀서 두 고랑을 훑어도 세 알 밖엔 못 건졌다고 내 딴에는 돌려서 말했다. 얼마 전에 시누이와 친구분을 모시고 일박으로 시골집에서 함께 지냈기에 그 피로감이 남아 있어서 같이 가자는 말이 쉽게 안 나왔다.


손자들도 다 자라고 노년 생활이 길어지자 우울감이 온 시누이에게 내년부터 농사를 지으라고 권한 뒤부터 시누이는 적극적으로 시골집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다. 내가 농사를 권한 것은 우리가 없는 평일에 시골에 다녀가시라는 의도였는데 시누이는 함께 가는 주말을 생각하는 것 같아 좀 고민이 된다. 일을 잘하는 시누이와 함께 가면 좋기는 하지만 멍 때리며 쉬는 걸 즐겨하는 나는 하루 종일 종종거리며 시누이 뒤를 따라다녀야 해서 시골집의 휴식이 사라지고 만다. 시누이 딴에는 어쩌다 오는 동생 집이니 최선을 다해서 도와주고픈 생각에 잡초를 뽑고 나무를 자르고 호박잎도 쪄주는 걸 텐데 말이다.


시누이는 일을 잘하는 만큼 본인의 방식대로 하기를 강요하는 편이라서 나는 시누이와 남편이 함께 마당일을 하면 저만치 떨어져서 다른 일을 하는 식으로 간섭하지 않는다. 노후의 취미로 농작물을 가꾸고 꽃을 돌보며 흙을 만지는 생활이 싱싱한 먹거리를 장만해서 좋고, 뭔가를 키운다는 것이 정서적으로도 좋은 일이라서 시누이가 잘하는 일을 하며 즐겁게 지냈으면 한다. 이번 주말에 시누이와 시골집에 가면 내년의 농사 계획을 의논하면서 나의 뜻을 에둘러 전달해 볼 건데 잘 될지는 자신이 없다.   


시골집이 점점 부담이 된다!


텃밭의 가장자리에 울타리로 심은 화살나무가 갈수록 울창해지고 텃밭이라 거름기까지 더해지니 더욱 잘 자라서 이젠 바람도 안 통하고 햇빛까지 차단해서 텃밭의 작물이 안 되는 원인이 되었다. 옮겨 심어야 하는데 촘촘하게 얽힌 뿌리를 파내기가 힘들어 가지를 자르기로 했다. 집이 온통 나무에 둘러 싸여 밖에서 보면 숲 속의 집처럼 아늑해 보이나 안에서 보면 답답하기도 하다.


마당에 자두, 살구, 체리, 대추, 사과나무가 심어져 있지만 열매를 먹어본 기억은 거의 없다. 봄에 어설프게나마 약을 뿌려도 봤는데 벌레를 물리치기엔 역부족이었고 남편은 농가에서 쓰는 커다란 약통을 사서 제대로 살충제를 뿌려보고 싶단다. 꽃 피는 걸 보는 것으로 족하다는 게 나의 주장이다 보니 내년 봄엔 남편과 이 문제로 또 한동안 입씨름을 해야 할 듯싶다. 유실수 중에 수형도 못 생기고 열매가 달리지 않는 체리 나무가 제거 대상 일 순위로 곧 잘릴 운명이다.


지금 우리 시골집은 문을 잠그지 않고 다닌다. 황토방의 버튼 키는 예전에 고장이 나서 배터리를 빼둔 상태로 언제든 문을 열 수 있고, 부엌문은 경첩에 금이 가서 문이 잠기질 않는다. 무거운 유리문을 몇 년이나 열고 닫았더니 무게를 견디지 못하고 경첩의 아래위로 두 군데나 금이 가서 균형이 맞지 않아 독일식 이중 잠금의 손잡이가 잠금으로 되질 않는다.


시골은 동네에 다니는 사람이 없고 네 군데 카메라도 작동되고 있기에 별로 걱정은 하지 않는다. 남편의 일이 좀 한가해지면 부엌문은 업체를 불러 고치면 되는 일이다. 시골집과 함께 한 세월이 십 년 가까이 되고 보니 주말마다 가기는 하지만 신경 쓸 것이 많아진다. 남편이 나를 따라다니는 것이 아니라 집주인으로 좀 더 의욕을 가지고 일을 해주면 좋겠지만 애초에 시골집을 짓자고 한 건 나이기에 시골집에 관한 모든 일은 옆구리를 먼저 찌른 내 몫이 된다.  


시골집이 점점 부담이 된다!


아파트에서 함께 사는 딸들이 유럽 여행을 간 지 한 달이 되어 간다. 딸들은 자기들 없는 동안 심심하지 않겠냐며 편히 지내라고 했지만 내 입에서 나온 대답은 한결같았다.


"한 달 금방 간다."


정말 다음 주엔 딸들이 돌아온다. 아무도 없는 빈 집에 혼자 지내보니 내가 그동안 얼마나 고단했던지를 알 수 있었다. 청소, 빨래, 장보기, 식사 준비에서부터 쓰레기 처리까지 일이 대폭 줄어들어 시간이 남아돌았고 그동안 나는 거실에서 티브이로 넷플릭스를 틀어 놓고 시리즈물을 내처 보는 여유를 즐겼다.


남편에게는 고기 요리를 자주 해주어 딸 때문에 자연식물식 하던 집안에는 모처럼 비린내와 누린내가 진동했다. 돼지고기 두루치기를 묵은지와 볶아주니 남편이 얼마나 잘 먹던지 침조기를 쪄주기도 하고 LA갈비를 재워 아침부터 상에 올려도 싹 먹어치우는 식성을 보였다. 나는 딸과 함께 채식을 일 년 넘게 했더니 이젠 고기가 당기지 않아 남편만 해주고 먹진 않았다.  


평소에 집안에서는 말수가 적은 남편이 화장실 문을 잠그지 않고 편하게 일을 보고 샤워 후에는 어쩌다 팬티 바람으로 나오기도 하면서 딸이 없으니 마음이 편하다는 말을 했다. 시골집에 다녀오는 일요일 밤엔 아파트 현관문을 열면 가장 먼저 보이는 수북한 택배 박스며 집안 구석구석 일거리부터 찾게 되는 주부의 본성 때문에 절로 화가 나는데 딸들이 없으니 주말 양평 증후군이 없어져서 좋다고 남편에게 말했다.


시골집에 가면 잡초부터 보이고 아파트에 오면 집안일부터 보이니 딸들이 없는 아파트는 참 편하고 좋았다. 그러니 딸들의 독립은 이젠 선택이 아닌 필수가 되었는데 집 짓느라 돈을 다 써버려 딸들의 독립 자금이 없다.


갈수록 시골집이 점점 부담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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