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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화이트 Oct 13. 2023

설거지 알바한다는 퇴직 동료

심심해서, 그리고 머리 말고 손을 쓰는 일이 좋아서

예전 직장의 동료들과 모임을 정기적으로 하고 있다. 어수룩하고 만만한 사람이 요즘에는 총무를 한다는데 내 경우도 다르지 않아서 두 군데의 동료 모임에 총무를 십 년 넘게 맡고 있는 중이다. 동료들은 아직 현직에 있는 사람도 있지만 대부분 은퇴를 했으며 자녀들이 결혼하거나 독립하여 부부만 사는 경우가 많다. 활동적이고 부지런한 직장인으로 삼십 년 가까이 살던 사람들이라 그런지 은퇴 후의 생활이 여전히 바쁘다.


직장 다니며 집안 살림 하고 자녀를 키우느라 항상 시간이 없어 동동거리던 동료들은 퇴직하자마자 물 만난 고기처럼 저마다의 취미를 찾아 부지런히 움직였다. 종교에 심취하거나 운동에 열심이거나 끊임없이 뭔가를 배웠다. 하지만 어제 만난 모임에서 가장 충격적인 근황을 밝힌 사람은 설거지 알바를 한다는 동료였다.


그 동료는 백두대간을 모두 올랐던 체력을 가졌고 직장에서 최고의 업무 능력과 순발력, 그리고 친화력을 지닌 뛰어난 인재였는데 퇴직한 지 3년이 지나자 도무지 심심해서 견딜 수 없어 머리 대신 몸을 쓰는 일자리를 구하게 되었다고 했다. 동료 스스로 인정하듯 업무를 잘했고 일을 좋아하기도 했지만 그때는 알 수 없는 두통이 있어서 약을 먹곤 했다고 한다. 지금은 절대로 머리 쓰는 일은 하고 싶지 않아서 식당의 설거지 알바를 구했다는데 생계형 알바가 아니라서 즐겁게 할 수 있다고도 했다.  


지난봄에 첫째 아들을 결혼시킨 동료는 이번 추석이 첫 명절이었는데 아들이 미리 전화로 추석 전날 아내는 처가에서 자고 자신은 부모 집에서 자면 안 되냐고 물었다고 한다. 안된다고 할 수 없어서 허락을 했지만 아들이 며느리 없이 혼자 와서 자니 편하고 좋더라며 추석날 처가에 들렀다가 오후에 온 아들 내외와 저녁을 먹고 식구 모두 산책한 후 아들과 며느리는 그들의 집으로 돌아갔단다.   


인생 선배들의 생생한 현장 이야기는 언제 들어도 흥미롭다. 치열한 직장 생활을 삼십 년 가까이해 온 사람들이라서 이웃인 전업 주부들보다 대화가 시종일관 시원시원하다. 자녀들에게 집착하지도 않고 남편은 동지애로 바라보며 그다지 살림에 관심이 있지도 않은, 그래서 어쩌다 만나도 편하고 자유롭다. 이제는 뭘 하면서 지내야 다가올 노년의 일상이 재밌고 즐거울지 서로의 취미 생활을 공유하고 정보를 구하는 것이 주로 관심사가 되었다.  


골프, 수영, 요가, 드럼, 댄스, 제빵, 요리 등의 취미를 배운다는데 나처럼 시골 생활을 좋아하는 사람은 별로 없다. 시골살이가 심심해서 그런지 다들 바쁜 서울이 좋다는데 나는 조용한 시골이 그리워서 집에 있어도 집에 가고 싶다.        



올해도 과꽃이 피었다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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