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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메타포 Oct 03. 2022

첫 번째 책, “꽃들에게 희망을”

- 다시 찾은 그 책-

 삶에 ‘원래’라는 법칙은 없다고 하지만, 나는 한 번 읽은 책을 다시 읽는 일이 드물기는 했다.

한 번 읽은 책을 다시 읽는 것은 왠지 시간 낭비이자, 다른 책을 읽을 수 있는 기회의 낭비이자, 또 한 번의 몰입을 요구하는 에너지의 낭비라는 생각이 강했기 때문이다.


 이런 생각들도 나이가 들면서 바뀐다.

왜냐하면 우리는 나이가 들면서 육체적으로는 많이 지치며, 정신적으로는 빈곤한 상태가 되기 때문이다.

풍요로웠던 육체적 에너지와 정신적 풍요로움이 더 이상 같은 자극으로 전달되더라도 그만큼의 감흥이 생기지 않고, 예전만큼 즐겁지 않다.

돈이 궁하던 시절 선물 받았던 소중한 책 한 권도 경제적 활동을 하며 책에 대한 구매 여유가 있는 상황이 되어서는 더 이상 책을 사지도, 읽지도 않게 되는 것이다.




"삶과 진정한 혁명에 대한,

그러나 무엇보다도 희망에 대한 이야기,

어른과 그 밖의 모든 이들을 위한 이야기.

(글을 읽을 줄 아는 애벌레를 포함하여)"


나는 책 표지의 글이 너무 좋았다.

작가의 전하고 싶은 말이 좋았고, 정말 너무나도 사랑스럽게 글을 읽을 줄 아는 애벌레를 독자층으로 염두에 둔 작가의 따스함도 좋았다.




호랑 애벌레는 자라기 위해 끊임없이 먹는 것만 하다가, 먹는 일을 멈추고 생각이라는 것을 하게 된다.


'그저 먹고 자라는 것만이 삶의 전부는 아닐 거야. '


먹고살기 위해 직장 생활을 하고, 아이를 출산했기에 양육해야 하는 것만이 삶의 전부는 아닐 거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지금의 현실을 유지하기 위해 관성적으로 일을 하고 삶을 유지하는 나 자신에 대해 돌아보게 되었다.

'나는 잘하고 있는 것일까? 이게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일까? 내 삶에서 더 이상 성장의 기회는 없는 것일까? 누구를 위한 삶을 살고 있는 것일까?'

머리에서, 가슴에서 수많은 질문들이 쏟아져 나왔다.




"저 애들은 삶에 대해 나보다도 아는 게 없어."


나는 삶에 대해 잘 알고 있다고 자부하면서 살았지만, 사실 제대로 생각하지 않으며 사는 게 틀림없었다.

다른 사람들이 사는 삶의 방식에 회의적이며, 호랑 애벌레의 말처럼 타인의 삶의 태도를 속으로 비웃기도 하고, 정말 삶에 대해 1도 모르는 사람들 속에 섞여 스스로를 방관했다.




2장에서 애벌레 더미, 애벌레 기둥으로 올라가는 호랑 애벌레의 모습을 보면서 우리네 삶도 별반 다를 바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꼭대기에는 뭐가 있지? 우리는 어디로 가고 있는 거지?"

라는 질문이 내면에서 불현듯 들지만,

잠깐 진지하게 고민이라도 할라치면,


"나도 몰라. 그런 건 생각할 시간도 없단 말이야!"

라는 호랑 애벌레의 외침이 스스로에게 돌아온다.



시련의 과정 속에서 같은 방향으로 세상을 볼 줄 아는 동반자를 만나 기둥을 벗어나고, 빠져나와 충분한 휴식을 취한 뒤에 일상이 단조로워 질 때쯤 호랑 애벌레는 미련이 남은 기둥의 끝에 대해 생각한다.

이 부분을 읽으면서 10년 넘게 다닌 회사를 다니다 퇴사를 결심했던 내 모습이 생각이 났다.

호랑 애벌레가 애벌레 기둥으로 다시 돌아가는 모습을 보며, 불현듯 그 회사로 재입사한 내 모습이 떠올랐다.

그렇게 싫어서 떠났던 회사에 다시 돌아온 나, 다시 그 치열함으로 들어서고 나서야 나는 다시 자문하게 된다.

다시 돌아오는 것이 정답은 아니구나, 더 이상 내가 바라는 것은 이 치열함이 아니구나.

일을 치열하게 한다는 것이 살아있음의 증거도 아니고, 내 존재의 가치를 증명해줄 유일한 방법도 아니구나... 이런 생각들이 나를 생각하고, 또 생각하게 했다.




남겨진 노랑 애벌레는 나비가 되기로 결심한다. 

애벌레 안의 나비를 의심하지만, 다행히 늙은 애벌레의 조언으로 자신을 믿게 된다. 

자신에 대한 의심은 성장을 위한 하나의 단계이다. 누구나 자신에 대한 의심 없이 믿음을 가지기는 어려운 법이며, 의심하는 시간 없이 스스로를 알 수 있는 방법은 없기 때문이다. 


일단 스스로가 고치가 되기로 결심했다면, 시간이 걸릴 뿐 나비가 될 수 있다는 늙은 애벌레의 조언.

너무 늦지 않았기를 바라며, 나에게 전해주는 위로와 격려 같았다. 


노랑나비의 사랑은 호랑 애벌레에게 용기와 희망을 주었고, 호랑 애벌레가 호랑나비가 될 수 있도록 길을 일 끌어 주었다.


 



오늘의 책이, 오늘의 위로가, 오늘의 격려가 지친 나를 감싸 안아주고, 포기하지 않고, 새로운 길을 볼 수 있도록 해주기를 바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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