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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페르소나 May 21. 2024

#15. 불평등한 현실

찢어진 바지

가난해 본 적이 없는 사람은 수치스러움이 낯설 수 있다. 스스로 떳떳하지 못한 감정을 가지고 살아가는 것이 불편한지도 모를 수도 있다. 누구는 "세상의 불공평함을 인정하는 것이 그것에서 벗어날 수 있는 빠른 방법이다."라고 조언할지라도, 나에게 가난은 맨발로 차가운 세상에 첫발을 내딛는 기분이었다.


가난에 대한 첫 기억은 초등학교 5학년 때로 거슬러 올라간다. 졸업식(누구의 졸업식인지는 모르겠다.)을 가기 위해서 부모님에게 옷을 받았는데 찢어진 바지였다. 나는 당황했다. 졸업식에 찢어진 바지라니. 청바지라면 유행을 핑계 삼아 멋이라도 부릴 수 있었겠지만, 찢어진 면바지로는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나는 누나 방으로 들어가 문을 걸어 잠근 후 구멍 난 바지에 손가락을 넣고 큰 소리로 울었다.  


"찢어진 바지를 입고 어떻게 가! 사람들이 다 쳐다볼 텐데."


졸업식은 졸업생뿐만 아니라, 나에게도 특별한 날이었다. 짜장면을 먹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때 짜장면은 이삿날, 생일, 졸업식과 같은 중요한 행사가 있는 날에만 먹는 귀한 음식이었다. 그런데 고작 바지 하나 때문에 나는 호사스러운 음식을 스스로 포기한 꼴이 된 셈이다. 그렇지만 나는 식욕과 자존심 사이에서 품위를 지키고 싶었다. 찢어진 바지 때문에 짜장면을 못 먹을지언정, 나를 존중하는 마음만은 절대로 찢고 싶지 않았다. 시간이 지나서 생각해 보면, 내가 그렇게 서럽게 울었던 것은 찢어진 바지 때문이 아니라, 짜장면과 자존심 사이에서 어떤 선택을 해도 후회할 것 같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불쌍한 처지 때문인 것 같다.   


내가 중학교 때는 수업료가 있었다. 제때 돈을 내지 않으면, 수업 시간에 선생님은 아무런 거리낌 없이 미납자의 이름을 큰 소리로 부르셨다.


"ㅇㅇ! 돈 안 냈다. 언제 낼래?

"ㅇㅇ! 쉬는 시간에 교무실로 와."


어느 날 나도 교무실로 불려 갔다. 수업료와 관련해서 나는 아버지의 직업, 가족 사항, 집의 크기 등, 사적인 내용을 소상히 선생님에게 이야기해야만 했다. 아직 어려서 그랬는지, 범인을 심문하는 듯한 선생님의 당당함은 당연하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그러나 과거나 지금이나 변하지 않는 것이 있다. 사춘기 소년이 교실에서 친구들 사이에서 비아냥의 먹잇감이 되는 것은 결코 사소한 일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선생님도 반드시 수납을 완료해야 한다는 주장은 어느 정도 이해했지만, 그 사건 이후로 나는 돈이 인생에서 불편함을 넘어서 걸림돌이 되어 나를 넘어뜨릴 수도 있다는 것을 처음으로 알게 되었다.




비 오는 날이었던 것 같다. 엄마는 나에게 새 신발을 사주셨다. 내가 원하는 로봇 그림이 있는 신발은 아니었지만, 새 신발이라는 것만으로 나는 행복했다. 흥분한 마음을 감추지 못하고 우산을 들고 밖으로 뛰어나갔다. 동요 가사처럼 새 신을 신고 뛰어서 머리가 하늘까지 닿고 싶었다. 마음만큼은 그랬다. 그러나 그럴 수 없었다. 첫날부터 새 신발을 더럽히고 싶지 않아서다. 그래서 가만히 걸었다. 그러다가 빗방울이 신발 위로 떨어졌다. 나는 얼른 우산을 왼손으로 바꿔 들고 손으로 빗물을 닦았다. 마침, 그 모습을 본 동네 아주머니께서 말씀하셨다.


"ㅇㅇ야, 신발 새로 샀구나? 좋아?"


좋냐고? 아니, 나한테 기분이 좋은지 물어보신 건가? 아주머니에게는 내가 신은 것이 단순한 단화로 보였을지라도, 그 신발은 나의 자존감을 하늘까지 닿게 해주는 근두운(筋斗雲, 서유기에서 손오공이 타고 다니는 구름)이었다. 내가 얼마나 위대하고 값진 사람인지를 보여주는 품위의 상징이었다. 엄마는 시장에서 가장 저렴한 것을 사 오셨겠지만, 나에게 그 신발은 세상 어떤 것보다 비싼 명품 신발이었다. 명품은 값비싸고 품질 좋은 유명한 브랜드 제품이 아니다. 나의 품위를 스스로 높일 수 있게 만들어 주는 것이 명품이다. 명품의 가치는 다른 사람의 시선과 관심에 의해서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내가 가치 있는 사람인 것을 깨닫게 해주는 원동력에 있다. 나의 신발이 한 달이 되기도 전에 찢어져서 신을 수 없어도 말이다.  


형제가 많으면 좋은 점도 있었다. 형들이 많으면 더욱 그랬다. 내가 어떤 것을 사야 하고, 무엇을 입어야 할지 고민할 필요가 없어서다. 옷의 크기가 맞지 않아도 괜찮았다. 형들이 물려주면 그냥 입으면 됐다. 조금 크면 더 좋았다. 더 오래 입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어느 순간부터 당연하다고 생각했던 것들이 불편해지기 시작했다. 상처받은 마음보다 찢어진 바지가 더 싫었고, 물려받은 옷을 입은 거울 속 나는 거지처럼 보였다. 반찬은 김치 하나면 충분했던 것도, "내가 염소냐."라는 생각이 들면서 영양실조에 걸린 것 같은 착각까지 들었다.


내가 원하는 것은 큰 것이 아니었다. 그냥 과자 한 봉지 사 먹을 수 있는 돈, 수영장은 아니어도 허리까지 차 있는 냉탕에서 신나게 놀 수 있는 돈, 아버지의 지갑을 몰래 훔치지 않아도 오락 한 판 할 수 있는 돈, 미용실에서 머리를 자를 수 없다면, 엄마의 손에 부엌 가위가 아니라, 미용 가위를 살 수 있는 돈, 마당의 땅을 깊이 파서 그 흙으로 찰흙을 만들지 않아도 되는 돈, 왼쪽 팔목이 부러져서 나무막대기와 붕대로 감지 않고, 부담 없이 병원을 갈 수 있는 돈.


이런 푼 돈이 나의 인생을 방해했다. 바로 이 돈이 나의 삶을 불편하고, 복잡하고, 힘들게 만들었다. 인생은 의미의 문제가 아니라, 부의 축적에 따라서 달라질 수 있다고 돈이 나에게 큰소리쳤다.. 그러나 나의 상황은 조금도 나아지지 않았다. 달라진 것은 약과 공장, 신문 배달의 인생 1막이 요리사, 인테리어 잡부, 모델하우스 인부, 철근 공사, 유리 시공, 석유배달, 마루 시공, 라면 배달, 학원 강사 등의 2막으로 전개될 것이라는 불안한 예감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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