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표를 이루기 위한 서막
대학생 때 나의 생활비는 일주일에 삼만 원이었다. 학교 식당을 하루 세 번 이용하면 육천 원이 들었다. 당시 식후 커피를 마시는 것이 문화로 자리매김하기 전이었기 때문에 커피값으로 돈을 쓸 필요는 없었다. 다만, 가끔 음료수를 마시거나, 책을 한 권 사는 날에는 수요일 혹은 목요일에 용돈이 바닥났다. 문화생활은 돈이 들지 않아야 했으므로, 나는 그것을 대부분 운동으로 대신했다. 지금은 운동에 관한 생각이 많이 바뀌었지만, 그때 나에게 운동은 두 가지 의미가 있었다. 하나는 반드시 이겨야 하는 내기였고, 다음은 사람들에게 인정받는 것이었다.
많은 운동 중에 나는 탁구를 가장 좋아했다. 처음 탁구를 배울 때, 탁구대가 없어서 밥상을 붙여서 사용했고, 탁구채는 슬리퍼로 대신했다. 그때만 해도 나는 탁구가 상대편으로 공만 넘기는 게임인 줄로만 알았고, 특별한 기술이 필요하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그러다가 교회에서 탁구대를 구매하면서 탁구에 관한 생각이 바뀌게 되었다.
탁구채는 쉐이크 핸드(양면채)와 펜홀더(단면채) 두 가지가 있다. 전자는 포핸드와 백핸드 전환이 유리하고 후자는 강력한 포핸드 공격과 공의 서브 회전을 줄 때 유용하다. 내가 처음 잡은 라켓은 펜홀더로 엄지와 검지 사이에 라켓의 손잡이를 잡고 사용하는 것이었다. 공격적인 스타일을 좋아하는 나는 펜홀더를 지금까지 사용하고 있다. 탁구공도 세 가지 종류가 있다는 것을 그때 처음 알았다. 비교적 가격이 저렴한 별이 하나인 일성구와 이성구는 연습용으로 쓰고 삼성구는 품질이 좋아서 시합용으로 사용한다.
탁구하면서 나는 그것의 용어, 규칙, 방법을 하나씩 배웠으며(그렇다고 전문가에게 배운 것도 아니다. 동네에서 조금 잘한다는 형 혹은 교회 집사님의 어깨너머로 배웠다.) 조금씩 스핀(spin), 드라이브(drive), 커트(cut) 등과 같은 기술을 터득했다. 그렇게 하루 이틀 탁구 치는 시간이 늘어가면서 나의 실력도 눈에 띄게 향상되었고, 동네에서 탁구를 가장 잘 치게 되었다.
대학교를 8년(군 생활과 배낭여행 포함) 다니면서 많은 시간을 쏟아부은 것은 탁구 하는 것과 공부였다. 앞으로 공부에 관해서 많은 이야기를 할 것 같으니, 지금은 탁구에 대해서만 써보려고 한다. 탁구 하다 보면 누가 정해주지 않아도 실력이 자동 정렬된다. 하급자의 실력은 핑퐁(ping-pong) 수준으로 공을 상대에게 넘기는 정도이고, 중급자는 조금 빨리 공을 넘길 수 있거나 약간의 기술을 사용할 줄 안다. 상급자는 속도, 긴장감, 기술 등이 뛰어나서 경기를 지켜보는 사람도 흥미진진하게 게임에 집중하게 만드는 선수이다. 당연히 나는 상급자였다.
기숙사 지하 1층에서 탁구를 하는 동안 상급자는 그곳에서 왕으로 군림할 수 있었다. 나의 강력한 드라이브와 철벽과 같은 수비 동작은 주변 사람들의 탄성을 자아냈고, 이길 수 없을 것 같은 시합을 듀스(deuce)로 1점 차 역전승을 거둘 때면, 마치 내가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선수가 되어 세계 랭킹 1위의 중국 선수를 이기는 장면을 연출하면서 경기장은 흥분의 도가니가 되었다. 그러면 사람들은 존경과 부러움이 가득 찬 눈빛으로 나를 응시했고, 나의 우월감은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았다.
그러던 어느 날 편입한 후배(나보다 나이가 두 살 많았다.) 한 명이 기숙사에 들어왔다. 처음에는 다른 사람들이 탁구 하는 것을 가만히 지켜보는 눈빛이 예사롭지 않다고 느꼈다. 프로는 프로를 알아보는 법이다. 나는 단번에 그 사람이 실력자라는 것을 알아차렸다. 그리고 먼저 말을 걸었다.
"탁구 한판 하실래요?"
그렇게 우리의 경쟁은 시작되었다. 그는 엄청난 실력의 소유자였다. 서브, 드라이브, 수비 모두 완벽했다. 지금까지 내가 상대해 본 선수 중에서는 단연 최고였다. 첫 경기는 3:0 완패였다. 학교 선후배들은 드디어 ㅇㅇ의 시대가 저물었다면서 아우성을 쳤고, 나의 근육과 신경 중추는 계속해서 수축과 이완을 반복하면서 나를 극도로 흥분시켰다.
"반드시 이긴다."
나는 그 후배를 이기기 위해서 하루에 탁구를 평균 6시간씩 쳤다. 운동 상대가 없으면 혼자 서브 연습을 수없이 반복했고, 조금 실력이 부족한 선후배가 있으면 식권을 주면서까지 나의 연습 상대가 되어달라고 부탁했다. 특히 금요일 저녁은 거의 밤을 새우면서까지 연습했다. 얼마나 탁구를 열심히 쳤는지, 교수님들은 학교에도 없는 체육학과를 만들어서 나를 그 과의 학생이 아니냐면서 핀잔을 주기도 하셨다. 그렇게 몇 개월을 연습한 후 나는 그 후배에게 정식으로 시합을 요청했다. 그리고 나는 또 졌다.
앞에서 내 유소년기의 경험 이야기를 읽어보신 분들은 아실 것이다. 내가 가장 잘하는 것은 반복과 끈기이다. 이 두 가지는 내가 육 남매와의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서 터득한 생존 기술이고, 약과 공장, 신문 배달, 검정고시를 통해서 배운 경험의 굳은살이다. 또한, 가난의 모진 비바람을 견디면서 배운 버티기의 또 다른 표현이기도 하다. 탁구는 내가 몸으로 배운 과거의 교훈을 이제는 나 스스로 적용하고 응용해야 하는 시험 무대였다. 그래서 탁구는 나에게 단순히 취미, 게임, 놀이가 아니었다. 인생에서 중요한 가치인 도전, 실패, 끈기를 배울 기회였다.
가로 274cm, 세로 1,525cm, 높이 76cm의 탁구대는 세상이 정한 질서와 제도로써 내가 지켜야 할 규범이고, 네트(net)는 나와 상대의 경쟁에도 넘지 말아야 할 선이 있다는 간단하지만, 어려운 예절을 가르쳐준다. 양면채와 단면채는 무자비한 경쟁 사회를 마주하고 있는 우리들의 얼굴로, 일성 구부터 삼성구까지 다양한 위기와 실패의 순간을 어떻게 해서든지 견디고, 버티고, 받아치고 있는 우리의 모습이기도 하다. 이런 세상을 향해서 내가 보내는 강력한 드라이브는 세상을 향한 나의 도전이며, 날카로운 세상의 공격을 받아치는 것은 나에게 그런 시련 따위는 아무것도 아니라는 불굴의 신념이다.
탁구는 언제든지 나보다 강한 상대를 만날 수 있다는 사실도 알려준다. 정말 최선을 다했는데도 게임에서 졌다면 지금은 내가 그 상대를 이길 준비가 안 되었다는 의미이지, 앞으로도 계속 질 것이라는 뜻이 아니다. 현재 뜻하는 대로 되지 않는 것은 실패가 아니라, 반복이 부족한 것이고, 결과가 만족스럽지 않은 것은 끈기 있게 더 하지 못한 것이다. 이 두 가지의 공통점은 내가 지금 하는 것을 스스로 인식했다는 뜻이다. 다시 말하면, 이루고자 하는 것을 의식하지 못할 정도로 집중해서 하지 못했다는 의미이고, 목숨을 다할 정도로 하지 않았다는 말이다. 결국 실패는 자가당착의 오류로서, 나의 행동이 말(생각 혹은 목표)을 따라가지 못해서 생긴 과거의 위선적 판단의 맺음이 지금 내가 실패했다고 착각하게 만들고 있다는 말이다.
실패했다고 생각한다면, 힘들어서 눈물조차 말랐다면, 스스로가 처량하다고 느껴진다면, 다시 탁구채를 잡아보자. 삼성구까지는 필요 없다. 싸구려 일성구라도 충분히 도전할 수 있다. 다시 시작할 수 있다. 어차피 인생은 도전과 실패의 무한반복 앞에 무릎 꿇게 되어있다. 지금 필요한 것은 채를 들고 탁구대로 가서 세상을 향해 나의 서브를 다시 넣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