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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페르소나 May 14. 2024

#14. 중독

정상적으로 사물을 판단할 수 없는 상태

고스톱을 하기 전에 우리는 모든 상황을 철저하게 점검했다. 문의 자물쇠는 몇 번이고 확인했고, 가급적 한 마디도 발설하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커튼으로 은밀한 모임은 철저하게 차단했다. 또한, 게임은 한 시간을 넘지 않도록 했다. 학교 기숙사에는 사람들의 왕래가 잦았기 때문이다. 게임 도중 누군가 흥분해서 소리를 지르면 그 동기(형) 자동으로 지는 것으로 정했다. 만약 노크 소리가 들리면, 한 명은 이층 침대 위에서, 또 다른 한 명은 책상에 앉아서 자연스럽게 담소를 나누는 장면을 연출하도록 서로 이야기도 잘 맞췄다.


그날도 우리들은 모든 준비를 끝내고 해야 할 것에 집중하고 있었다. 평상시와 다른 점은 선배의 침대 위에서 모포를 깔아놓고 더 흥분한 상태로 고스톱을 즐기고 있다는 것이었다. 한 20분 정도가 지났을까, 우리는 흥분한 상태로 게임에 몰입하고 있었다. 누구도 크게 소리를 지르고, 고스톱 패를 크게 내리치면서 선배의 침대 위에서 놀고 있는 광란적인 모습에 주의를 주지 않았다. 그런데 갑자기 문이 열리면서(분명 문이 잠겨있는지 확인했었다) 방중이 들어왔다. 얼마나 게임이 집중하고 있었는지, 우리는 누가 들어왔는지도 알지 못했다. 아깝게 한 판을 지고 한숨을 쉬면서 앞을 바라보고 있는데, 방중의 어이없어하는 한심함의 눈빛이 나의 눈과 마주쳤다.


"아..."


꼬리가 길면 잡히는 법이다. 방중은 다른 동기들을 다 밖으로 보내고, 급하게 방장에서 전화했다.


"ㅇㅇ가, 일냈다. 빨리 와."


20분 후 방장이 들어와서 나에게 물었다.  


"너 언제부터 고스톱 쳤어?"


"몇 개월 됐는데요."


당시 학교 기숙사에는 방장, 방중(방장과 같은 학번의 동기), 방졸 이렇게 세 명이 함께 살았다. 방장은 복학생, 방중은 2학년이 대부분이었고, 방졸은 신입생으로 배정되는 경우가 많았다. 당시 기숙사의 선후배 관계는 엄격했다. 후배는 선배의 말씀에 한마디도 대꾸도 할 수 없었고, 선배의 침대에도 앉을 수 없었다. 선배들이 볼 때 후배들이 기합이 빠졌다고 판단이 들면, 후배들은 수시로 기숙사 옥상과 운동장으로 불려 나갔다. 이런 군대 같은 분위기에서 내가 동기들과 몇 개월 동안 고스톱을 했다고 하니 방장과 방중이 어떻게 생각했겠는가?


방장은 방중에게 문이 잠겼는지 다시 확인하라고 했다. 나는 드디어 올 것이 왔구나! 하는 생각에 긴장하면서 고개를 숙였다. 그런데 갑자기 방장이 짧고 강한 어조로 말했다.  


"(방장) 너 고스톱 할 줄 알아?"


"(방중에게) 조금 치기는 하지."


"(방졸에게), 너 이리 와서 앉아."


새로운 리그는 나에게 다른 차원의 긴장감을 느끼게 해 주었다. 그전에는 재미로 고스톱을 했다면, 이제는 상대의 것을 빼앗아서 나의 수중에 넣었을 때의 희열을 갈구하게 했다. 고스톱은 놀이에서 도박이 되고, 도박이 중독까지 이어지는 상황까지 이르렀다. 나의 도박 중독은 고스톱에서 포커(poker)로 바뀌면서 절정에 다다랐다. 영화 타짜 1에서 고니(조승우)가 화장실에서 칼로 손가락을 자르려고 할 때, 아귀(김윤석)가 "너 그 손가락 못 자른다."라고 말했던 장편이 나에게도 수없이 반복되었다.  


"내일 또 그곳에 앉아 있으면 손가락을 자른다."


하지만 다짐의 유효기간은 하루였다. 다음 날이면 나는 어김없이 똑같은 곳에서 중독의 감정을 희열, 환희, 행복으로 착각하고 더 깊이 도박의 중독에 빠져들었다. 중독자의 삶은 비참했다. 하루에 밥 한 끼만 먹는 날이 많았고, 평균 수면 시간은 두세 시간 정도였다. 매일 만나는 사람은 똑같았다. 단돈 만 원이라도 생기는 날이면 나의 몸은 어느새 머릿골 신경 세포에서 도파민을 만들고 있었다. 도박에 중독된 나는 예전의 내가 아니었다. 과거에는 생각하고, 고민하고, 행동하는 주체적 인간이었다면, 중독된 나는 도박에 조작되고 간섭받고, 통제된 인간으로 바뀌어 있었다.




방장과 방중의 타짜 수준의 실력은 너무 잘 어울리는 두 단어, 도박중독의 의미를 생각하게 했다. 놀이가 게임이 되고, 게임이 도박으로 이어지면 대부분 중독으로 빠지게 된다. 다 같이 모여서 즐기는 활동이 편 가름이 되는 순간 분열이 일어나고, 우리가 나 아니면 너로 좁혀지면, 모임은 파열하게 된다. 이때부터는 생각과 행동의 이분법적 맞섬 상태가 되면서 합리적 판단은 마비의 상태에 이른다.


사유를 상실한 인간을 인간이라고 할 수 있을까? 쾌락의 본능이 이성을 집어삼켜 의미 없는 행동으로 시간을 채워나가는 것이 살아 있음의 가치가 될 수 있을까? 도박이 던지는 중독의 의미는 지금까지와는 다른 유형의 담론을 나에게 던졌다. 정상적으로 판단할 수 있다고 자신했던 합리적 판단의 우월감은 도박 앞에서 초라한 정신 분열자의 열등감으로 바뀌어 있었다. 걷고 있을 때는 걷고 있는 것을 생각하지 못한다. 걸음이 멈출 때 비로소 생각할 수 있다.  


"여기가 어디지?"

"어디로 가고 있지?"

"무엇을 위해서 걸었던 거지?"


일 년이 넘는 동안 도박 중독은 나에게 진짜와 가짜가 무엇이 다른지 알려주었다. 지금의 나는 과거 내 선택의 결과이고, 지금의 선택은 미래의 나를 결정할 수 있다는 중요한 교훈까지도 덤으로 챙겨주었다. 도박의 길의 끝에서 나는 사물을 제대로 판단할 수 없는 것이 중독이고, 중독은 사물이 나의 판단을 마비시켜서 생각을 중지시키는, 인간 됨을 포기하게 만드는 거짓된 상태라는 것을 깨닫게 해 주었다.


"가짜는 몸의 쾌락을 찾고, 진짜는 몸의 의미를 찾는다."

"가짜는 숨지만, 진짜는 드러난다."

"가짜는 만족이 짧고, 진짜는 길다."

"가짜는 나와 너를 망친다. 하지만 진짜는 우리를 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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