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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페르소나 Jul 16. 2024

#23. 오징어 짬뽕 라면

"경험이 쌓이면 확신이 된다."

"네, 면스토랑입니다. 오징어 짬뽕 하나 추가요? 방금 주문하신 광장 주얼리 맞죠? 주문이 밀려서 15분 정도 걸러요."

"오징어 짬뽕 하나 더요. 꼬들꼬들하게 해 달래요."

"그곳은 거리가 멀어서 쉽지 않은데. 오늘따라 주문이 왜 이렇게 많아."

"오빠, 피자라면 두 개 더요. 라면 국물이 졸지 않게요."

"저번에는 물을 적게 달라고 하더니, 어느 장단에 맞춰야 하는 거야."


6개의 화로 위의 편수 양푼이(손잡이가 하나 달린 냄비) 안에는 각기 다른 라면이 끊고 있다. 이 매장에서 가장 인기 있는 라면은 오징어 짬뽕 라면이다. 매장에서 식사하는 손님을 위한 조리법은 간단하지만, 5분 이상 배달 시간이 걸리는 곳은 요리하기가 까다롭다. 끓는 물에 라면과 스프를 넣고 3분 정도 기다린 후, 적당한 크기로 자른 오징어와 양파를 넣고 1분 정도 더 끓이면 매장 손님을 위한 라면이 완성된다. 하지만 배달용 조리법은 다르다. 거리에 따라서 물의 양을 달리해서 국물의 농도를 맞춰야 한다. 가까운 곳은 냄비의 1/3만큼 물을 넣고, 조금 더 먼 곳은 1/2에 맞춰야 한다. 라면과 오징어도 주문받은 거리에서 따라서 다르게 익혀야 한다. 조금이라도 라면이 덜 익거나, 오징어가 너무 익어버리면 이 둘이 조화를 이루지 못하고 맛은 심심해진다.


라면이 맛있게 요리되었는지는 손님의 동작에서 확인할 수 있다. 국물 한 숟가락을 떠서 입에 넣고 "카"하는 모습을 보면 1차 합격이다. 젓가락을 들어서 한 입에도 넣기 힘들 정도의 면을 집어서 다 식기도 전에 후루룩 소리를 내면서 먹으면 2차 합격이다. 여러 번 라면 국물을 휘저어서 짧은 라면 가닥을 찾고 좋아서 입꼬리라도 올라가는 모습을 보면 3차 합격이다. 하지만, 이 모습만으로는 잘 끊인 라면이라고 할 수 없다. 오징어 짬뽕 라면의 진수는 국물에 있다. 양손으로 라면 대접을 잡고 단번에 국물을 다 마신 후 강력한 인스턴트의 맛과 깊은 바다의 맛을 모두 경험했다는 듯한 표정이 나올 때야만, 완벽한 라면으로 검증받을 수 있다.


나는 선임자의 욕심으로 조리사 시험을 볼 수 없었지만, 군대에서 배운 요리 경험 덕분에 라면 가맹점의 요리사가 될 수 있었다. 처음에는 라면 배달로 일을 시작했지만, 어떤 이유로 요리사로 일하게 되었다. 자격증 하나 없이 제대한 것이 후회됐지만, 28개월의 요리 경험은 30가지가 넘는 라면을 만드는 데 많은 도움이 됐다. 처음 요리할 때는 어떤 재료를 준비하고, 몇 분에 어떤 것을 넣고, 얼마큼 요리한 후 무슨 조미료를 어느 정도 넣어야 할지를 반복적으로 생각해야 했다. 이 주일 후 내가 직접 요리를 해야 한다는 선임자의 말에 메뉴에 필요한 재료를 1번부터 순서대로 적고 요리 방법을 암기하기도 했다. 몇 개월이 지난 후 나는 냉장고의 재료만 봐도 어떤 음식을 어떻게 만들지 금세 떠오를 정도가 되었으며, 나의 실력은 다양한 음식을 개발하고 응용할 정도까지 발전했다.  




배낭여행 경비를 마련하기 위해서 의도치 않게 시작한 요리사 기간, 나는 군대에서 한 번도 생각하지 못했던 군대 음식에 대해서 다시 기억해 볼 수 있었다. 군대 요리는 사회에서 맛볼 수 없는 독특한 맛을 가진 것이 많았다. 첫 번째 이유는 식재료의 품질에서 나온 것 같았다. 캔 김치는 아삭한 김치의 식감과 고춧가루의 알싸한 맛을 간직하지 못했고, 언제 냉동했는지 모르는 돌같이 딱딱한 닭은 이미 육질을 상실한 지 오래였다. 중국산인지 국산인지 모를 정체불명의 조미료는 넣어도 맛이 나지 않았고, 파인 지 나무인지 헷갈리는 채소는 내가 만들고 있는 것이 음식인지 사료인지 가끔 나 자신도 당황스럽게 했다. 하지만 서로 어울릴 것 같지 않은 것들이 스팀 밥솥에서 삽과 함께 요리하는 순간 그것들은 이상한 냄새를 풍기면서 맛있는 요리로 변했다.   


군대를 갔다 온 사람마다 의견이 다를 수 있겠지만, 나는 군대 음식이 맛있다고 생각한다. "왜? 군대 음식은 맛이 있을까?" 나는 그 이유를 군대가 기존에 알고 있는 음식 맛을 새롭게 정의했기 때문이라고 본다. 예를 들어서, "김치찌개는 얼큰해야 한다."라는 말을 군대는 "김치찌개는 달다."라고 경험시켜 주었고, "밥은 윤기가 나면서 차져야 한다.""밥은 배부르게 먹는 것이다."라고 알려주었다. "햄버거는 육즙이 풍부한 패티와 갖은 야채가 들어가야 맛있다.""햄버거는 빵과 고기처럼 보이는 것만 있어도 맛있다."라고도 보여 주었다. 하지만 군대 음식이 맛있는 진짜 이유는 어울리지 않을 것 같은 재료와 조미료가 만들어내는 신기한 맛을 나라가 강제적으로 이어준 운명 같은 사람과 낯선 환경에서 함께 먹었기 때문일 것이다. 다시 말해서 음식은 맛의 경험이 아니라, 추억의 경험을 통해서 새로운 감각의 지평으로 확장할 수 있다. 군대 요리에 대한 이와 같은 생각은 나에게 라면에 대한 낯선 철학적 사유를 이끌어 냈다.


즉석에서 간편하게 조리할 수 있는 라면은 처음부터 조작된 음식이다. 물 550cc(3컵 정도)를 끊인 후 라면과 건더기 그리고 스프를 넣고 4~5분 정도 더 조리하면, 누구나 제조 회사가 의도한 '그 라면'의 맛을 경험할 수 있다. 그 라면 맛은 다양한 입맛을 가지고 있는 사람의 식미(食味, eating quality)를 하나의 맛으로 의도하고 왜곡시키면서 "이 라면은 원래 그 맛이어야 한다."라고 소비자의 미각을 이질화시킨다. 그 라면에 적응하지 못한 사람은 인스턴트 사회에 편승하지 못하고 자신의 입맛에 맞는 음식을 찾아서 배회한다. 얼마 지나지 않아서 그 라면 공동체에 속하지 못한 이들은 그 라면의 사회 밖 어딘 가에 어떤 라면을 찾을 것 같은 희망을 꿈꾸지만, 그 바람 역시 "그 라면이 아니어야 한다."라는 반대 심리 작용이 만들어 낸 또 다른 그 라면의 식감이라는 것을 깨닫게 된다. 그러나 라면이 요리가 되면 그 의미는 달라진다. 거대한 회사가 상업적으로 의도한 모든 주술 체계가 한순간에 무너지면서 새로운 맛의 세계가 펼쳐진다.


인스턴트 라면이 식사 한 끼를 대충 때우기 위한 음식이라면, 오징어 짬뽕 라면은 미각을 자극해서 즐거움을 선사하는 유쾌한 먹거리이다. 이 라면 한 그릇에는 대자연의 맛이 들어가 있다. 뜨거운 태양과 혹독한 바람을 견디면서 자란 양파의 단단한 속살은 획일적인 스프의 맛을 더 감칠맛 나게 바꿔 놓고, 깊은 바다에서 헤엄쳤던 오징어의 여유는 그대로 국물에 녹아 들어서 먹는 사람의 미각을 자유롭게 한다. 인위적인 맛이었던 면발은 풍부해진 국물 맛을 소스 삼아서 씹는 즐거움과 목 넘김의 기쁨으로 바뀌고 새로운 맛을 소비자에게 선사하게 된다. 그냥 먹었던 그 라면은 어느새 어떤 라면이 되면서 숨어있던 맛의 본능을 깨운다.


나는 요리와 배달을 하면서 지난날에 실패했던 경험이 하나둘씩 쌓이면서 단단하게 응집되고 있는 느낌을 받았다. 그때는 힘들어서 포기하고 싶었던 것들이 되돌아보면 나에게 기회를 위한 운명의 복선이라는 사실 또한 발견했다. 경험이 깨달음이 되고, 실패가 기회가 되기 위해서는 포기하지 않고, 직면한 모든 것에 최선을 다해야 한다. 그러면 예기치 못한 순간 실패의 어두움을 뚫고 한 줄기 희망의 빛을 발견할 때가 온다. 바로 그때가 관점이 바뀌면서 새로운 것이 보이기 시작할 때다. 내가 오징어 짬뽕 라면을 만들면서 깨달았던 짧은 깨달음처럼 말이다.  


"경험이 쌓이면 확신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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