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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페르소나 Jul 09. 2024

#22. 늦었다고 생각하는 순간이 늦지 않도록!

의도치 않은 상황과 필연적 판단

나는 28개월의 해군 복무를 마치고 대학교 2학년으로 복학했다. 1학년 때 운동과 책 읽는 것에 대부분의 시간을 보냈다면, 다시 대학생이 된 후로는 영어 공부에 모든 시간을 할애했다. 그 이유는 두 가지였다. 첫째는 군대에서 읽었던 책마다 영어 공부의 중요성을 강조했고, 둘째는 영어 단어 22,000개를 외운 자신감으로 영어 공부를 할 수 있을 것 같은 확신 때문이었다. 나는 검정고시 때 조폭 형의 권유로 구매했던 성문 기초 영문법을 다시 꺼내서 공부했다. 그 시작은 He plays the violin이 왜 Does he play the vilolin? 이 되는지를 이해하는 것부터였다.


지금은 대부분의 학생이 학원을 한두 개 정도는 기본적으로 다니고 있지만, 내가 중학교 때는 한 반에 학원을 다니는 친구가 한두 명에 불과했다. 중학교에서 처음으로 영어를 배웠기 때문에 1학년에게 파닉스(phonics)는 생소했다. 나도 처음에는 알파벳의 대문자와 소문자를 보고 만만치 않은 공부라는 빠른 결정을 내리고 영어에 관심을 두지 않았다. 하지만 주변에서 심심치 않게 보이는 영어 단어가 어떻게 발음하는지 평소 궁금했기에 나는 파닉스는 배워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파닉스를 몇 주 배우고 나서 나는 스스로 '파닉스의 왕'이라고 떠들고 다니면서 친구들에게 영어 단어를 잘 읽는 척을 했다. 파닉스가 완벽하지 않았던 친구들도 나의 음가(音價) 능력을 나름 인정하는 눈치였다. 그때를 생각만 하면 어이가 없어서 웃음이 나오지만, 나는 "무식하면 용감하다."라는 말과 "시작이 반이다."라는 의미를 어설픈 파닉스 연습을 통해서 깨달았고, 이것이 목표 성취의 중요한 첫걸음이라는 것도 알게 되었다.


"너 이거 읽을 수 있어? 잘 봐. 내가 알려 줄 테니."


"난 헷갈리던데"


"LIFE의 엘(L)은 'ㄹ'이고, 아이(I)는 '이,' 에프(F)는 'ㅍ,' 마지막 이(E)는 '에,' 이것을 다 조합해서 말하면 뭐다? "리페."


"와, 신기하다. 역시 OO는 파닉스를 잘 하기는 해."


그랬다. 나는 라이프를 리페로 읽었다. 처음에는 파닉스가 재미있어서 영어에 관심을 가졌지만, 단어 암기, 문법, 독해, 듣기 등 해야 할 것들이 많은 영어를 나의 머리와 몸은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다. 검정고시를 공부할 때는 수학과 물리 등의 과목에 많은 시간을 할애했고, 나름대로 공부가 재미있다는 것만 처음 경험했을 뿐, 나의 영어 실력은 형편이 없었다. 군대에서 단어 좀 외웠다고 영어를 잘할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은 어떤 자신감에서 나왔는지 지금도 궁금하다.


나는 대학생이 되어서야 비로소 영어 공부의 중요성보다 영어 공부의 어려움을 느끼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성문 기초 영문법을 얇고 공부하기 편해서 선택했지만, 설명이 부족한 것 같아서 맨투맨(Man to Man)을 구매해서 공부했다. 이 책은 설명이 자세하게 되어있어서 혼자 공부하기에는 좋았다. 다만, 공부를 하면서 (내 기준에서) 지나치게 자세한 설명으로 한 번 정도 보고 다시는 그 책을 보지 않았다. 나는 영어가 중요한 것을 알면서도 '머리 탓,' '환경 탓'을 하면서 영어의 꽁무니만 따라다니는 나 자신이 싫었다. 영어책을 들었다 놨다가 한 달을 보내다가 어느 날 예상치 못한 일이 발생했다.  




대학 영어 시간이었다. 교수님께서는 다른 교수님들과 어떤 과 그리고 학생이 높은 성적이 나올지 내기하셨다고 하셨다. 그때는 전국적으로 토익 시험이 유행해서였는지, 대학교 졸업과 취업에 토익 성적표가 필요했었다. 내가 공부해야 할 교재는 보기에도 부담스러운 정도의 두께를 자랑하는 Y사의 책이었다. 나는 책을 보는 순간 "문법도 제대로 알지 못하면서 무슨 토익이냐!"라고, 포기하려고 마음을 먹으려고 했다. 교수님께서 내 생각을 읽으셨는지, "아직 포기하기에는 이르다."라고 말씀하시는 것 같았다.  


"이번 중간고사는 주간/야간 모든 학생이 Y사의 주관으로 강당에서 토익시험을 봅니다. 시험 범위는 책 두 권에서 나와요."


학생들은 서로 웅성거렸다. 한 권도 제대로 공부하기도 쉽지 않은데 도대체 두 권을 어떻게 봐야 할지 막막하다면서 불평했다. 그러자 교수님께서 말씀하셨다.   


"두 권이 많죠? 하지만 걱정 마세요. 100% 책에서 그대로 나옵니다. 열심히 반복해서 공부하면 실망스러운 점수는 나오지 않을 겁니다."


나는 나도 모르게 큰 소리로 중얼거렸다.


'책에서 100% 나온다고? 정말?"


교수님의 말씀이 사실이라면 이번 시험은 평소의 영어 실력과 상관없이 책의 문제와 답만 외우면 좋은 성적을 받을 수 있다. 그러자 영어 공부 의지가 불타올랐다. 솔직히 책이 너무 두꺼워서 공부를 포기하는 학생들도 많았지만, 내가 가장 잘하는 것은 반복과 버티기라는 생각에 나는 도서실에서 책의 문제와 답을 외우기 시작했다.  


주변 사람들은 가끔 나에게 이런 질문을 하곤 한다.


"어떻게 해야 잘하죠?"


여기서 "어떻게"는 질문하는 사람들이 잘하지 못하거나, 잘하고 싶어 하는 것으로, 어떤 일을 익숙하면서 능란하게 해서 사람들에게 인정받고 싶어 하는 욕구 본능이다. 그러면 나는 말한다. "목숨을 걸 정도로 하는 거죠." 그러면 그들은 똑같은 반응을 보인다.


"맨날 죽도록 하면 도대체 목숨이 몇 개나 있어야 하나요?"


"잘한다는 것은 내가 기준이 아니라, 나보다 잘하는 사람을 기준으로 하죠. 그 사람이 나보다 앞서고 있다면,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그 사람이 하는 모든 것의 X2 이상을 하는 방법밖에 없습니다. 심지어 숨 쉬는 것조차도 말이죠."


나는 영어를 잘하는 것도 목숨을 걸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한 달 이후 시험을 잘 보기 위해서는 지금 당장 영문법을 100% 이해하고 응용할 수도 없었고, 공부해야 할 책의 모든 단어를 암기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이해가 안 되는 문장을 전부 해석할 시간도 부족했다. 내가 유일하게 할 수 있는 것은 문제를 보고 또 보고, 음원을 듣고 또 들으면서 책을 모두 암기하는 것뿐이었다. 이 목표를 위해서 내가 어떻게 했을까? 그렇다. 죽도록 했다. 한 달 동안 밥 먹고 수업 듣는 시간을 빼고 주말에도 책을 읽고 또 읽으면서 문제와 답을 암기하는데 대부분의 시간을 보냈다. 문제가 길어서 이해가 안 되는 것은 몇 문장만 읽어도 답이 나올 수 있도록 나름 기호를 만들어서 외웠다. 이렇게 하는 것이 영어를 잘하는 것과 아무런 상관이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지만, 영어 성적을 잘 받기 위해서, 교수님 말씀대로 책에서 그대로 나온다고 했으니,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하기로 마음먹었다. 그렇게 나는 한 달 정도 토익 공부가 아니라, 토익 책 암기에 나의 모든 시간을 쏟아부었다.


시험 당일, 시험 문제를 읽기 전부터 답이 보였다. 몇 문제는 보기의 순서가 달랐지만, 교수님 말씀대로 문제와 답은 책에서 그대로 나왔다. 솔직히 듣기 문제를 빼고는 시험 시간이 한참 남기도 전에 답을 다 체크할 정도로 나에게는 너무나도 뻔한 시험이었다. 100점을 맞으면 교수님과 주변 사람들이 의심할 것 같아서 양심적으로 세 문제 정도는 오답을 체크했다. 그렇게 대학수학능력시험 이후 나의 첫 영어 공인 시험은 끝났다.


"자, 여러분! 이번 시험이 쉬우면서 아주 힘들었죠? 할 것들이 너무 많았고요. 그래도 축하합니다. 제가 맡고 있는 클래스가 가장 좋은 성적을 받았습니다. 다 여러분이 노력해 준 결과예요."


학생들은 서로 손뼉을 치면서 교수님의 말씀에 의기양양했다. 얼마 안 있어서 교수님의 말씀이 이어졌다.


"그런데 이 반에 OO 학생 있죠? 이번 학기 때 처음 본 학생인데, 누구죠? 손 들어 보세요."


갑자기 후배들이 나를 쳐다봤다  


"모두 손뼉 쳐주세요. 이 학생이 전체 2등 했습니다. 영어를 아주 잘하는 학생 같아서 기분이 좋아요."


"와! 전체 2등이요! 대단하네요, 선배."


"내가 그럴 줄 알았어. 선배, 매일 도서관에서 살다시피 하더니 역시 실력자였네.'


"선배, 밥 사세요."


2등? 영어를 잘하는 학생? 실력자? 정말 웃기는 노릇이다. 공부할 것이 많았지만, 책에서 100% 나온다고 교수님께서 여러 번 말씀하셨고, 나는 그저 책을 암기했을 뿐이었다. 그런데 내가 갑자기 영어를 잘하는 학생이 된 것이다. 그것도 교수님과 모든 학생이 인정하는 신학과 복학생 OO로 말이다.


그 사건 이후로 교수님은 수업 시간에 나를 곤란하게 하는 질문을 여러 번 하셨고, 영어를 잘하고 싶어 하는 후배들이 나를 찾아오기 시작했다. 그러면 나는 마치 정말 영어를 통달한 것처럼, 어떻게 단어를 외우고, 문법 공부는 어디서부터 시작하고, 독해는 어떤 책으로 해야 할지를 군대 경험을 기준 삼아 알려주었다. 그런데 이런 상황이 계속되면서 나에게 특별한 변화가 일어났다. 나도 영어를 정말 잘하고 싶다는 욕심이 생긴 것이다. 주변에서 영어를 잘한다고 했을 때의 기분이 착각이 아닌, 진심으로 스스로를 자랑하고 싶어졌다. 나는 다시 문법책을 꺼내서 공부했고, 이해가 안 되는 것은 다른 책을 찾아가면서 읽고 또 읽었다. 독해는 부끄러움을 뒤로하고 중학생용 독해책을 사서 공부했고, 조금씩 영어 문장이 눈에 들오면서 고등학교 문제집을 사서 풀기도 했다. 그렇게 무식하게 영어 공부를 두 학기 하면서 나는 한 가지 목표를 세웠다. 영어를 책이 아닌 생활로 직접 경험하는 것이었다.


여름 방학이던 어느 날 동기 형이 도서관에서 혼자 공부하고 있는 나에게 말을 건넸다.


"OO야, 우리 교회의 어떤 청년이 이스라엘의 Kibbutz를 갔다가 얼마 전에 왔는데 아주 좋았다고 하더라. 너도 공부만 하지 말고 졸업하기 전에 한 번 갔다 와 봐."


처음에는 형의 말에 "네"하고 형식적인 반응만을 보였다. 형이 떠나고 혼자 도서관에 남아서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가 영어를 생활로 경험하고 싶다는 생각과 배낭여행을 하고 싶다는 결론에 도달하자, 나는 다음 날 바로 휴학을 하고 배낭여행 비용을 마련하기 위해서 대학로에서 라면 배달을 하기로 마음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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