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해군, LSM(상륙정), 조리병
내가 해군을 지원한 이유는 크게 세 가지였다. 빨리 군대를 갔다 와야 더 큰 목표를 이룰 수 있을 것 같았고, 큰 형이 지원해서 떨어진 해군에 합격해서 멋있는 해군복을 대신 입어보고 싶어서였다. 나의 특별한 군 생활을 이야기하기 전에 기본적으로 알아야 할 것이 하나 있다. 적지 않은 사람이 해군(NAVY)과 해병대(MARINE CORPS)를 헷갈린다. 해군은 배를 타면서 바다를 지키고, 해병대는 해안 경계와 상륙작전 등을 수행하는 전투를 수행한다. 누구는 그것이 그것 아니냐고 따지겠지만, 나는 귀신이 무서워서 해병대를 지원하지 않았다는 사실은 분명하게 하고 싶다.
나는 남자들이 군대 이야기를 하는 것과 여자 세 명이 이야기를 나누는 것 중에서 어떤 그룹이 더 오랫동안 재미있게 대화를 나눌 것인가에 대해서 궁금해하곤 했다. 말하는 대상과 주제 그리고 환경에 따라서 의견은 다양하겠지만, 나는 대한민국 군대에서 독특한 사람과 특이한 사건 그리고 특별한 시간을 경험한 남자라면 누구나 선반의 접시는 가볍게 깨뜨릴 수 있는 이야기꾼이라고 생각한다. 이런 점에서 나도 도전과 성취의 관점에서 뻔하지 않은 군대 이야기를 해보려고 한다.
기초 군사 훈련 과정이 끝날 무렵 나에게도 병과를 지원하라는 명령이 떨어졌다. 나는 많은 보직(갑판, 조타, 통신, 병기, 전산, 의무, 음탐, 보수 등) 중에서 조리병을 선택했다. 이유는 간단했다. 28개월의 군 복무 동안 조리사 자격증(한식, 양식, 일식)을 취득할 기회를 얻을 수 있었고, 제대 이후 아르바이트라도 하게 되면 많은 시급을 받을 수 있을 것으로 판단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는 군 선임자의 욕심(그는 시험도 보지 않았다.)으로 자격시험을 응시할 기회조차 얻지 못했고, 병장이 될 때까지 후임병 없이 막내 생활을 해야만 했다.
나는 주특기 교육 이후 기린함 상륙정(LMS)으로 배치를 받았다. 이 배는 미국이 2차 세계대전에서 사용했던 것을 한국이 수입해서 사용했던 함정으로, 전장 62m, 전폭 10m, 속력은 24km, 승조원 60여 명이 탑승할 수 있었다. 나는 근무하는 동안 일 년에 한두 번 정도 전차 세 대를 싣고 해병대와 함께 상륙 훈련을 했고, 여러 번 동해와 울릉도로 물자 수송 작전에 참여했다. 한여름에는 두 번 정도 다도해 앞바다에서 밀입국 선박을 감시하는 업무를 하기도 했다. 이런 훈련에도 불구하고 많은 사람은 군대에서 조리병을 했다고 하면 얕잡아 보는 경향이 있다. 과연 그럴까? 어디 한번 나의 일상을 읽어보고 판단해 보길 바란다.
대한민국 해군 기린함 조리병의 일상
[업무 조건]
1. 선임자가 한 명 있었지만, 모든 배식 준비는 나 혼자 다 했고, 2~3명의 파견병은 보조 역할만 했음.
2. 주 7일 근무에 공휴일 없음.
3. 365일 야식 배급: 수제비(모두 수작업으로 진행) 국수, 라면
4. 설거지는 모두 조리병 담당(조리 시간 1시간 30분~2시간, 설거지 시간 1시간~1시간 30분)
5. 배를 이 년 동안 승선하는 동안 막내
[업무 일정]
* 4:30: 기상 및 조식 준비
* 6:30: 조식 배급
* 8:00~9:30: 아침 설거지
* 10:00: 점심 준비
* 12:00: 점심 배급
* 1:00~2:30: 점심 설거지
* 4:00: 저녁 준비
* 5:30~6:00: 저녁 배급
* 6:30~7:30: 저녁 설거지
* 8:30: 야식 준비
* 9:00: 야식 설거지
위의 일정에서 내무실 청소, 기타 파견 업무는 제외했다. 나에게 하루 평균 쉬는 시간은 한 시간에서 한 시간 삼십 분 정도였다. 앞에서도 언급했듯이, 막노동 이후, 나의 환경(가정환경, 신체적 조건, 금전적 상황 등)을 빨리 수용하는 것이 미래를 설계하는 데 최선이라고 판단했기 때문에 두 가지를 다짐했다. 첫째, 지금의 나를 있는 그대로 인정한다. 둘째, 미래의 나는 지금 내가 하는 것으로 결정된다. 이 다짐을 실천하기 위해서 나는 공부를 시작했다.
지금도 내가 군대에서 하루에 한 시간 삼십 분(하루의 쉬는 시간을 다 합친 시간)을 활용해서 달성한 목표를 주변 사람들에게 이야기하면 대부분 "말도 안 된다." "거짓말하지 마라." "미친 거 아니냐." 등의 반응을 보인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나는 미래를 준비하기 위해서 미치고 싶었고, 정말 미쳤었다.
이병 때는 원하는 것을 자유롭게 할 수 없었기에 나는 일병, 상병, 병장 때 해야 할 일을 수백 번 브레인스토밍(brainstorming, 다양한 생각을 통해서 아이디어를 끌어내는 것)했다. 그리고 다음의 목표를 최종적으로 세웠다.
1. 책 100권 읽기, 2. 천자문 외우기, 3. 펜글씨 교본 4권 쓰기, 4. 22,000 영어 단어 외우기, 5. 몸짱 되기
5번은 이미 앞에서 설명했으니 여기서는 언급하지 않고, 왜 네 가지를 군 생활 동안 완성할 목표로 세웠는지를 이야기해야 할 것 같다. 내가 해군에 입대할 때 모든 수병(해군에서 병사를 부르는 호칭)은 의무적으로 함정 생활을 6개월 정도 하고 육상으로 발령받았다. 군인 수에 비해서 배가 부족하기도 했고, 육상에서 해군이 해야 할 업무도 많았기 때문이다. 해군에는 장기 수병(6개월 이상 배에서 근무하거나, 배에서 제대하는 병사)을 앵커(anchor)라고 불렀다. 그렇다 보니 함정에서 일병만 돼도 육군과 공군과 달리 중상급 정도의 호봉 대우를 받을 수 있었다. 이 말은 곧 내가 일병만 되어도 하고 싶은 것을 어느 정도 자유롭게 할 수 있다는 의미이기도 했다. 그런데 문제는 나에게 주어진 시간이 십 분 단위의 쉬는 시간이 전부였다. 그래서 "어떻게 하면 자투리 시간을 잘 활용할 수 있을까?" 고민하다가 떠오른 것이 천자문 암기였다. 한자 하나를 외우는 데는 많은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오랫동안 집중해서 할 수 있는 시간이 부족했기 때문에, 나는 최소한의 시간 안에서 최대의 효과를 얻고 싶었다. 그래서 두 번째로 선택한 것이 영어 단어 22,000개 암기였다. 이 많은 단어를 어떻게 외웠는지는 다음에 이야기해 보도록 하겠다. 그다음 목표는 펜글씨 교본 연습을 하는 것이었다. 글쓰기 연습을 목표로 잡은 이유는 단순했다. "글씨는 내 영혼의 얼굴이다."라는 생각에서 글씨를 이쁘게 쓰고 싶었고, 이것 역시 시간을 최대한 자유롭게 활용할 수 있어서였다. 마지막 목표는 책을 100권 읽는 것이었다. 이 목표를 달성하는 데는 많은 시간과 인내가 필요했다. 특히 배가 출항을 하거나, 특별 훈련 기간이라도 되면 책 한 페이지 읽을 시간도 없었지만, 상병이 되고 휴게 시간이 삼십 분 정도 여유가 생기면서 더 많은 시간을 목표 달성에 집중할 수 있었다.
누군가가 나에게 "다시 군대를 가겠는가?"라고 묻는다면 나는 "무조건 가겠다"라고 말한다. 나에게 군대는 목표 설정과 달성 방법을 체득할 수 있었던 중요한 시간이었으며, 무엇이든 도전하고, 그것을 달성하지 못했을 때도 후회하지 않는 법을 배울 수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무엇보다 군대에서 경험한 시간이 나에게 소중한 이유는 앞으로 소개할 배낭여행(5개월)과 첫사랑을 찾아서 파리로 날아간 것 그리고 무일푼으로 미국 유학을 떠난 것, 모두 '뻔하지 않은 군대'에서 배운 도전 정신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