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중심이 아닌 세상에서 존재를 외치다.
나는 아르바이트하면서 여행에 대한 구체적인 계획을 세웠다. 중동 지역을 혼자 여행한다는 두려움 때문에 몇몇 사람을 설득도 해봤지만, 모두 여러 가지 이유로 동행을 거절했다. 결국 나는 6개월 동안의 여행 일정을 혼자서 준비하기로 했다. 처음 여행을 계획할 때는 비행기표, 경비, 배낭, 여행안내서 한 권이면 충분하다고 생각했지만, 다음의 내용들을 노트에 적고 난 후, 나는 여행 계획을 다시 수정하기로 마음먹었다.
1. 여행 기간: 6개월
2. 여행 장소: 이스라엘, 요르단, 터키, 이집트
2-1. 이스라엘(북부: 헬몬산, 가이사라 빌립보, 욥바, 요단강, 갈릴리 호수, 가나, 므깃도; 중부: 예루살렘, 텔아비브, 베들레헴; 남부: 네게브 사막, 맛사다, 사해)
2-2. 요르단(암만, 느보산, 페트라)
2-3. 튀르키예(이스탄불, 에페소, 파묵칼레, 보드룸, 카파도키아)
2-4. 이집트(피라미드, 알렉산드리아, 클레오파트라 우물, 왕가의 골짜기, 룩소르, 나일강, 아부심벨, 핫셉수트 장제전)
배낭여행을 다녀온 사람들은 모두 "정보가 돈이다."라고 강조한다. 여행을 준비할 때는 "그런가 보다." 정도로 여겼지만, 여행 기간이 늘어나고 방문하는 장소가 많아지면서, 나 역시 정보는 돈 보다 훨씬 가치가 있다는 사실을 이스라엘 키부츠, 터키의 이스탄불, 요르단의 페트라, 그리고 이집트의 알렉산드리아에서 수도 없이 경험했다.
2001년 4월 나는 이스라엘의 수도 텔아비브(Tel Aviv)로 향하는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내가 탄 비행기는 튀르키예를 경유하는 비행기로, 이스라엘까지 17시간 정도 걸렸다. 그때는 김포 공항에서 국제선을 이용하던 때였다. 부모님과 함께 공항에 도착한 후, 엄마는 나를 아직도 육 남매의 막둥이로 생각하셨는지 연신 초조함과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나의 오른팔을 꽉 잡고 놓지 않으셨다.
"조심히 잘 갔다 와. 아프지 말고."
솔직히 그때는 어린애 취급을 받는 것 같아서 기분이 좋지 않았지만, 엄마의 말씀을 듣고 나니 갑자기 마음이 뭉클해졌다. 몇 발짝 걸음을 떼고 뒤를 되돌아보니 울고 계신 엄마와 과묵한 표정을 짓고 계신 아버지가 보였다. 나는 부모님의 모습을 보면서 입대가 부모의 품을 떠나서 세상과 맞설 수 있는 용기를 간접적으로 허용했다면, 배낭여행은 세상과 겨루고 버틸 힘을 부모님에게서 배웠으니, 이제는 그들 곁을 떠나서 나의 삶을 당당하게 살아가기 위한 첫 번째 관문이라고 생각했다.
비행기는 11시간을 날아서 튀르키예의 수도인 이스탄불에 도착했다. 비행시간이 길었던 만큼 몸도 녹초가 되었다. 공항에 도착하자마자, 나는 튀르키예의 유명한 음식인 케밥을 먹고 잠시 휴식을 취한 후 시장으로 향했다. 그곳에는 처음 보는 다양한 물건들로 가득 찼다. 아랍어와 이국적인 그림으로 그려진 직사각형 모형의 돌자석, 푸른 유리에 눈이 그려져 있는 나자르 본주우(재앙을 물리친다고 믿는 물건) 모양의 접시와 팔찌, 코끝을 강하게 자극하면서 형형색색으로 물든 향신료, 독특한 패턴과 다양한 색의 수로 제작한 카펫은 나의 눈과 코를 정신없게 만들었다. 그러다가 무심코 고개를 돌려서 카펫 모양의 세계지도를 보고 나는 뒤통수를 세 개 얻어맞은 것 같은 충격을 받았다.
한국에서 본 세계 지도의 중앙에는 항상 한반도가 자리 잡고 있었다. 누구도 한국이 왜 지도의 중심에 있는지를 설명해 주지도 않았고, 물어보지도 않았다. 나는 지구본을 펼치면 한국은 지리적으로 중앙에 있는 나라라고 당연하게 생각했었다. 그런데, 튀르키예의 세계 지도에는 한국이 아니라 튀르키예가 중앙에 있었다. 한국은 관심을 두고 찾지 않으면 존재하지 않는 나라처럼, 지도 오른쪽 끝에서 으르렁거리고 있었다. 나는 나도 모르게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한국이 중심이 아니었어."
"내가 중심이 아니야."
우리는 세상이 나를 중심으로 돌아간다고 생각한다. 정말 그렇게 돌아가지 않는다고 부정할 수도 없는 착각 속에서 살아간다. 내가 처음 만나는 사람의 첫인상은 나의 진화론적 경험으로 그 사람의 성격, 성향, 돈, 심지어 종교의 유무까지 판단하면서 그 사람을 그대로를 알아보려고 하지 않은 채, 그런 사람으로 성급하게 결론 내린다. 그리고 나의 주변에 그런 사람이 늘어나면서, 나는 점점 그런 사람 위에 군림하게 되고, 내가 정말 그런 사람을 더 이상 알 필요가 없다는 듯 쉽게 소비해 버린다. 하지만 그런 사람은 나에게 이미 자신의 존재를 드러낸 벌거벗은 실체처럼 보이지만, 나는 그런 사람에게 폭력이고 억압이고 존재 말살의 살인자로 비칠 뿐이다.
내 눈으로 바라보는 세상은 구체적이고 경험적이어서 실제로 그렇게 보인다. 나의 눈에 정말 그렇게 보이기 때문에 나는 그것을 사실로 받아들인다. 하지만 '나의~'와 '나의 것'은 세상을 그대로 보지 못하고 소유적 관점에서 대상을 자기 것으로 삼으려 한다. 문제는 여기서 시작한다. 눈으로 대상의 존재와 특징을 알아보는 것은 문제가 되지 않지만, 보는 것으로 그치지 않고, 그 대상을 판단하고, 소유하려고 하는 시도에서 바라봄의 균열이 발생한다. 그 틈 사이에서 내 욕망의 시선이 자리를 잡고 싹을 틔우면서 대상을 타자의 눈이 아닌, 나의 눈으로 휘감아 버린다.
타자의 눈을 가진다는 것은 내 생각과 판단을 배재하고, 그 대상을 있는 그대로, 가만히 쳐다보는 것과 같다. 나의 편견과 판단을 보류하고 그 대상이 무슨 말을 하려고 하는지 가만히 기다리는 인내의 눈빛이기도 하다. 이런 눈빛에는 욕심과 소유가 자리 잡을 곳이 없다. 나만을 생각할 여유가 없다. 다양한 눈으로 바라보면서 포용의 눈으로 세상을 응시할 뿐이다. 타자의 눈은 대상을 성급하게 바라보지 않고 함부로 정의하지도 않는다. 내가 중심이라는 생각을 거부한다. 그렇게 나의 눈이 아닌, 타자의 눈으로 대상을 바라보려고 노력할 때, 내가 바라보는 것은 모두가 아니고 부분이고, 완성보다는 과정이며, 확신이 아닌 가능성으로 인식하게 된다.
지금도 나의 귀에는 튀르키예의 공항 어느 한 곳에 걸려있을지도 모르는 세계 지도가 수많은 여행객에게 이렇게 외치는 것이 들리는 듯하다.
"우리는 모두 이방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