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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페르소나 Sep 24. 2024

#32. 먼저 사랑한 죄

일일여삼추(一日如三秋): 몹시 애태우며 기다림

소복이 쌓인 눈길 위를 아무런 말 없이 걷는다. 숨죽이면서 내리는 눈과 깜박이는 가로등 사이로 나는 OO와 함께 남산을 오르고 있다. 내가 어떤 말을 하려는지 짐작이라도 했는지, OO는 한마디 말없이 내 옆을 걷는다. 20분 정도 산을 오르니 작은 놀이터가 나왔다. 나는 가던 길을 멈추고 하늘을 쳐다봤다. 수줍게 내리는 눈과 어디선가 들리는 크리스마스 캐럴은 아름다운 분위기를 연출했다. OO를 만난 지 5년 만에 처음으로 내 속 마음을 떨어놓았다. 나는 지금도 OO의 표정을 잊을 수 없다. 너무도 당황해서 웃을 수 없는, 하지만, 웃고 있는, 아니, 웃고 있지 않는, 그 표현할 수 없는 모습은 내가 하지 말아야 할 큰 실수를 한 것이 아닐까 하는 착각을 하게 만들었다. OO가 말했다.


"(         )야, 그럴 수 없어. 너는 내가 가장 좋아하는 가족이야."


그렇다. 가족끼리는 서로 사랑할 수 없다. 하지만 나는 그때부터 OO와 가족의 연을 끊기로 다짐했다. 나는 어떻게든지 5년 동안 꽁꽁 묶어서 누구도 눈치챌 수 없게 숨겨 놓은 마음을 OO에게 모두 보여주고 싶었다. 한 번은 어렵다. 그러나 그다음은 쉬운 법이다. 나는 한 번의 고백 이후 쉽게, 자주, 반복적으로 내 사랑을 받아 달라고 구걸했다. 그때부터 논리적인 사고와 행동은 사랑의 감정에 마취되면서 비이성적인 감정이 나를 통제하기 시작했다. OO는 우리는 서로 사랑할 수 없는 사이라고 몇 번이고 말했고, 나를 좋아하게 되면 서로 남이 될 수 있다고 경고까지 했다. 먹지 말라고 하면 선악과가 더 맛있어 보인다. 오랫동안 인류가 금기한 것을 애착해 온 것처럼, 나에게 사랑은 허용될 수 없는 금단의 열매였다. 처음부터 쉽게 사랑할 것이라고 예상하지 않았지만, 될 수도 없고, 안 된다고 하는 것을 나는 어떻게 해서든지 할 수 있고, 되는 상황으로 만들려고 노력했다. OO는 많이 당황해하면서 나와의 거리를 두고 나를 밀어내기 시작했다. 그러나 OO는 내 인생이 버티기의 굳은살로 점철되어 있다는 사실을 알 리 없었다(#10. 버티기 & #18. 할 때까지, 될 때까지, 이룰 때까지, 참고).


미국 유학 자금을 마련하기 위해서 시작한 학원 강사의 일이 끝나는 저녁 10시가 되면, 나는 두 시간이나 되는 거리를 하루도 빠지지 않고 운전해서 OO가 있는 곳으로 향했다. OO는 "네가 올 곳이 아니다!" "더 이상 연락하지 마라."의 말로 나를 몰아붙였지만, 내 이성은 이미 통제 불능 상태였다. OO가 "안돼."라고 말하면 나는 "돼."라 말했고 계속해서 될 가능성으로 불가능의 조건을 가능한 상황으로 바꿔 보려고 했다. 나는 2개월 동안 굳게 닫힌 OO의 마음 문을 열기 위해서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다 했다. 추운 겨울, 만나주지 않는 OO 집 앞에서 세 시간을 서 있기도 했고, 읽지도 않을 편지를 써서 집 앞 담장 사이에 꽂아두었고, 받지도 않은 전화에 수십 번 전화해서 음성 메시지를 남기기도 했다. 누구는 내 행동이 사랑이 아닌 스토커(stalker)의 집착이라고 쏘아붙였을 수도 있다. 그때 '나'는 그럴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지금까지 살아온 내 인생의 경험이 모두 거짓으로 증명되는 것만 같았다. 나름 힘들게 살아오면서 깨달았던 도전과 성공의 신념이 처음 사랑과 짝사랑 앞에 무릎 꿇게 하고 싶지 않았다.  




그렇게 OO에게 사랑을 요구한 지 두 달이 지났다. 어떻게 됐을까? 내 브런치를 처음부터 읽어보신 분들은 아실 것이다. 나에게 불가능은 가능성의 다른 말이다. 불가능은 될 수 없는 선입관과 게으름의 습관이 만들어 낸 패배자의 근성이다. 목표를 이루기 위해서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불가능과 타협하지 않는 것이었다. 내가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다 하고 후회하지 않는 것이 최선이었다. OO는 두 달 동안만 한국에 있으려고 했지만, 나의 버티기 작전이 성공을 거두면서 두 달 더 있기로 했다. 나는 허락된 두 달 동안 내가 얼마나 OO를 사랑하는지를 어떤 연애 소설보다 로맨틱하게 만들어 보려고 했다. 똑같은 말에는 솜사탕 막대기를 달아서 달콤한 마음을 건넸으며, 환한 웃음에는 천사의 깃털을 붙여서 미소가 천천히 사라지게 했고, 작은 선물 하나에도 클레오파트라에게 바치듯 온 정성을 다했다. 바다가 보고 싶다고 하면 아름답고 운치가 있는 곳을 찾아서 갔고, OO가 먹고 싶다는 음식이 있으면, 내가 싫어하는 것이라도 나도 좋아한다고 하면서 가장 맛있게 먹는 모습을 보여주기도 했다. 이런 나의 모습을 보면서 그 사람의 습관이 내 습관도 될 수 있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다.


나는 "열 번 찍어 안 넘어가는 나무는 없다."는 생각으로 사랑을 쟁취하려고 했다. 내 인생이 '그렇다.'라고 가르쳐준 대로 처음 사랑은 영원한 사랑이 될 수 있다고 확신했다. 하지만 흐르는 강물을 거스르면 물방울이 튄다. 나는 노력하는 사랑은 언젠가는 애를 써도 될 수 없다는 사실을 조금씩 깨닫게 되었다. 사랑을 하고 있다는 착각 속에서 언젠가는 사랑할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되는 것만큼 비참한 것은 없다. 분명 사랑을 하고 있지만, 그 사람에게서 사랑받고 있다는 모습을 찾지 못했을 때의 당황스러운 감정은 내 사랑이 어딘가 잘못되었다는 생각이 들게 했다. 그런 감정이 조금씩 쌓이기 시작하자, OO가 다시 프랑스로 떠날 시간이 다가왔다. OO는 더 시간을 늦출 수 없다고 나에게 말했고, 돌아가서 주변 상황을 잘 정리해 보겠다고 말했다. 나는 "내 사랑을 보여주기에는 시간이 너무 부족하다."라는 생각으로 남은 시간 동안 더 사랑할 수 있다고 발버둥 쳤다. 정작 OO에게는 그렇다 할 감정의 변화도 찾을 수 없었는데도 말이다.


한국에서의 4개월의 시간이 지난 후, OO는 프랑스 리옹으로 돌아갔다. 첫 한 달 동안은 전화도 자주 하고 메일도 서로 주고받았다. 그런데 어느 날부터인가 갑자기 연락되지 않았다. 메일을 보내도 답장이 없었고, 전화는 연결되지 않는 날이 많았다. 나는 OO가 그곳의 생활을 정리하고 한국에 돌아올 것이라고 바랐지만, 그것은 혼자만의 희망 사항이었다. OO가 나를 정리하고 있다는 생각도 해봤지만, 도저히 그 상황을 인정하고 싶지 않았다. 연락이 되지 않은 날이 두 달째 접어드는 날부터 내 생활은 피폐해지기 시작했다. 밥을 먹어도 맛이 없었고, 눈을 뜨고 있어서 눈을 감은 것처럼 하루 종일 어두웠다. 혼자 있는 시간이 너무 힘들고 괴로워서 항상 누군가를 만나고 떠들었다. 하지만 그때뿐이었다. 생각하고 싶지 않은데, 계속 OO와 함께한 아름다운 시간이 나를 더 초라하게 만들었다. 나는 사랑에 대한 아픔을 잊기 위해서 시를 쓰기로 했다. 글에 아픔과 그리움을 담아서 마음으로 울고 싶었다.


이제 그때 썼던 시중 한 편을 사랑에 힘들어했던 나에게 다시 적어 보낸다.



                                틈


  나와 너의 틈사이 그리움만 존재합니다.
  휙, 바람 한 점 머릿결 스쳐 지나칠 때면
  빛바랜 추억 한 장 꺼내듭니다.
 
  단 일분도 안될 것 같았던 가슴속 응어리도
 이제는 어느새 단단하게 굳어 새로운 살점으로 다시 태어나는 것만 같습니다.
 
  살아 숨 쉬는 것이 너무 힘들어 저 깊은 곳
  뜨겁게 타오르는 심장으로 모든 것을
  던져버리고 싶습니다.
 
  나도 모르는 나의 모습을 발견할 때면 자신  도 모르게 당신과 나의 틈을 원망합니다.
  그리고 용기 없는 그대가 멀게만 느껴집니다.
 
  먼 훗날 까맣게 타들어간 내 가슴속 텃밭에
  한숨의 씨앗 심고 눈물 빗방울되어
  나 그대 사랑했음을 한 송이 꽃으로 대신하  렵니다.


 [나머지 시들은 세 번째 브런치 '사랑하면 시인이 된다.'에서 연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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