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강인함의 얼굴
아버지를 한 단어로 표현하자면, 짱돌이다. 짱돌은 큰 자갈돌로 들기도 힘들고 잘 부서지지도 않는다. 하지만 한번 금이 가기 시작하면 절반 혹은 그 이상이 깨지는 것이 짱돌이다. 아버지의 삶이 그러했다. 그는 30세 때 죽을병이 걸리셔서 병원에서도 포기했지만, 교회의 종소리를 듣고 "저곳에 한 번 가보고 싶다"는 그의 바람을 어머니께서 들어주시면서, 기적적으로 사셨다. 어떻게 불치병이 나았는지는 정확히 알 수 없다. 신비한 경험은 그에게 비상식적인 선택을 하게 만들었다. 아버지는 쌀 두 말을 빚지고 어머니와 함께 교회를 개척하러 떠나셨다. 그는 지연과 학연 심지어 돈도 없으시면서 교회를 다섯 개나 세우시고, 그것도 부족해서 애를 여섯 명이나 낳으셨다. 무슨 용기와 배짱으로 이런 무모한 선택을 하셨는지 도대체 이해가 가지 않았다. 그의 삶이 기적이라고 하자. 하지만 그의 선택이 다른 가족 구성원들에게도 기적일 필요는 없다. 우리가 죽을병이 걸린 것도 아니고 성직자로 부름을 받은 것도 아니다. 그래서일까? 그의 말과 행동은 신의 얼굴을 마주 사람처럼, 권위와 명령 그리고 당당함으로 가득 차 있었다. 그 떳떳함 앞에서 자신의 의견을 말한다는 것은 신에 대한 도전이었고, 그와 눈을 마주치는 것은 신을 정면으로 반박하는 것이었으며, 그의 말을 따르지 않는 것은 신의 뜻을 거스는 것이었다. 그렇게 아버지는 강한 신이었다.
아버지의 가정교육도 그랬다. 모든 시작은 명령이었고, 결과는 체벌이었다. 초등학교 1학년 때 쌍둥이 형이 받아쓰기를 20점 받았을 때, 아버지는 마당에서 한 대만 맞아도 아플 것 같은 몽둥이를 잘도 찾아오셔서 형을 체벌하셨다. 얼마나 아팠던지, 형은 울면서 밖으로 도망을 갔지만, 아버지의 달리기 속도에는 어림도 없는 뜀박질이었다. 아버지는 자신이 생각하는 만큼 형을 때리셨다. 그 이후 나는 받아쓰기 점수가 나의 생명을 위협할 수 있다는 사실을 처음으로 알았다. 하지만 이것은 시작에 불과했다.
"하나님의 사람은?"
"말씨는 고운 말씨!"
"행동은 착한 행동!'
"모든 물건은 제자리에!"
"모든 일은 즐겁게!"
"모든 일은 철저하게!"
"모은 일은 사랑으로!"
밥을 먹기 전에 아버지가 선창하시면, 첫째부터 막내까지 "꼭 이렇게 살겠습니다."라는 각오라도 하듯이 자신의 구호를 크게 외쳤다. 어느 날 구호가 조금 식상하게 들릴 때면, 아버지는 왜 "모든 물건은 제자리에" 놓아야 하는지 설명하시면서 우리의 지루함을 달래주셨다. 그러면 형제들은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모두 고개를 숙이고 아버지의 말씀을 들었다. 나는 물었다. "왜 하나님의 사람은 말을 이쁘게 하고, 행동도 바라야 하며, 모두를 사랑해야 하죠? 도대체 기독교인과 물건 정리는 무슨 상관이 있죠?" 정말 이렇게 묻고 싶었다. 하지만 감히 누가 신탁을 받은 자에서 이런 질문을 할 수 있겠는가. 잊지 말아야 한다. 아버지는 신이다. 죽음을 경험한 불사조이다. 나 같은 피라미가 무엇을 안다고 질문을 할 수 있겠는가. 검증된 사실에 의문을 품는 것은 그가 신에게 받은 권위를 인정하지 않는 것이고, 불복종은 그의 죽음이 거짓 경험이라고 따지는 것과 같다. 내가 유일하게 할 수 있는 것은 "아멘"(그렇게 되기를 바랍니다)으로 화답하는 것뿐이었다.
새벽 5시가 되면 아버지와 어머니는 교회당으로 향하셨다. 새벽예배를 드리기 위해서였다. 삶이 얼마나 힘들고 간절하셨는지 하루도 거르지 않고 기도하셨다. 여기까지는 괜찮았다. 어차피 내가 일찍 일어나서 기도하는 것이 아니었기 때문에. 그런데 어느 날부터인가 아버지께서 모든 형제들을 6시에 깨우셨다. 그리고 교회당 옆에 있는 건물(교육관)에서 성경을 보고, 공부를 하라고 하셨다. 내 기억이 맞다면, 당시 초등학교 6학년이었던 것 같다. 하루 8시간도 부족한 수면 시간을 6시간으로 단축된 형제들에게, 공부와 담을 쌓고 살아가는 우리에게 아버지의 명령은 청천벽력 같았다. 일단 시키는 대로 우리는 책상에 앉았다. 그리고 책을 펴고 열심히 잤다. 그러다가 누군가 오는 소리가 나면 일어나서 성경을 보고 국가고시를 준비하는 고시생처럼 목숨 걸고 공부하는 척을 했다. 사람은 적응의 동물이다.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났을 때 우리는 나름대로 생존 법칙을 찾았다. 비록 나이가 어린 동생들이 대부분 그 역할을 해야 했지만, 한두 번 정도 형들도 했던 것 같다. 그것은 보초를 서는 것이었다. 네 명이 잠을 자면 한 명은 수상한 인기척을 감지하는 데 모든 에너지를 쏟아부었다. 조금이라도 움직이는 소리가 들리면 그날 당번은 "일어나!"라고 말하고 나머지 형제들은 가장 학생다운 모습으로 자신의 자리를 지켰다. 그러나 교회를 다섯 개나 개척하시고 육 남매의 가장인 아버지에게 이 정도는 부족해 보였던 것 같다. 아버지는 늦게 일어난 사람은 마당을 다섯 바퀴 혹은 30분 걸리는 중랑천을 뛰게 시키셨다. 일 분을 더 자면 십 분 더 땀을 흘려야 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된 형제들은 서로 먼저 일어나겠다고 경쟁 아닌 경쟁을 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정말 신기할 정도로 우리는 아버지의 말씀을 잘 따랐다. 왜 그랬을까? 어떻게 여섯 명 중에 한 명도 아버지에게 대들지 않았을까? 혹시 내가 모르는 사이 누나 혹은 형이 다른 형제들을 위해서 목에 힘줄을 세우면서 "못 하겠습니다."라고 세상에서 가장 멋있는 말을 하지 않았을까? 그러나 그런 바람은 헛된 망상인 것을 깨닫는 데에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우리에게는 또 다른 아버지의 사랑이 기다리고 있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