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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페르소나 Apr 09. 2024

#1. 인생의 퍼즐 맞추기

복기

초인간적인 힘이 있었으면 좋겠다. 세상이 나에게 성공할 수 있는 기회를 허락하지 않아도 좋다. 지금 나의 처지를 버티어낼 수 있는 조금의 힘이라도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충분하다.     


  예전에 '태어나보니 아빠가 베컴(Beckham)'이라는 말이 유행한 적이 있었다. 이 말에는 인생에 대한 두 가지 의미가 담겨있다. 나는 원해서 태어난 것이 아니고 인생은 처음부터 불공평하다는 점이다. 인생은 나의 선택과 상관이 없이 주어지기 때문에 태어난 이상 어떻게든 살아내야만 한다. 내가 부모님을 선택할 수 없는 것처럼, 나의 신체, 습관, 성향, 가정환경, 사회적 위치는 나의 노력과 상관없이 정해진다. 비참한 환경에서 태어난 사람은 냉혹한 조건에서 자신의 인생을 시작해야만 한다. 가난한 부모님은 평생 열심히 살아도 가난에서 벗어날 수 없는 운명을 자식에게 선물할 것이고, 부모님의 열성 유전자는 신체적 열등감을 자식에게 대물림되면서 다른 사람과 비교당하는 삶을 살게 할 것이다. 인생은 처음부터 불공평과 모순으로 가득 차 있다. 더 억울한 것은 원하지 않는 나의 인생이 아직도 많이 남아있다는 사실이다.


  나는 4남 2녀의 막내로 태어났다. 누군가는 막내가 가족의 사랑을 독차지할 수 있어서 좋다고 말지만, 그 말은 나에게 거북하게 들렸다. 나는 태어날 때부터 다른 형제들과 다르게 신체적으로 열등하게 태어났다. 태어나자마자 건강이 좋지 않아서 오랜 시간 동안 인큐베이터에 있어야 했다. 부모님의 경제적 상황도 넉넉하지 않아서 병원비도 빚으로 해결해야만 했다. 남자 형제들과 비교해서 나는 키도 작고 가장 못생겼다. 무엇보다 가장 억울한 것은 같은 날 태어난 쌍둥이 형은 키도 크고 얼굴이 잘생겼다는 사실이다. 만약 내가 이란성쌍둥이가 아니라, 일란성으로 태어났다면, 형의 신체적인 특징을 한 가지만이라도 가지고 태어났다면, 감사한 마음을 가지고 나의 사춘기를 보냈을 것이다. 쌍둥이라는 운명에서 그것도 이란성 중에서 열성 유전자를 모두 가지고 태어난 나는 신체적으로 항상 쌍둥이 형과 비교를 하면서 살았다. 나중에 반전이 있기는 하지만 가족 중에서 나만 쌍꺼풀이 없다는 사실은 "정말 주워 온 놈이 확실하군"이라는 생각을 확고하게 만드는 이유가 되기도 했다. 이 정도로만 부족해도 어느 정도 불평은 멈출 수 있었을 것이다. 주걱턱(옥니)의 콤플렉스는 육 남매 중 막내가 누구인지 단번에 확인할 수 있는 트레이드마크(trademark)처럼 되면서 나를 무의식적인 패배자로 낙인찍혀버렸다.




  바둑에는 복기( 復棋)가 있다. 자신이 두었던 바둑알을 다시 처음부터 놓는 것이다. 내가 아무리 신중하게 두어야 할 자리를 선택했음에도, 시합에서 진다면 그곳은 최고의 자리라고 할 수 없다. 실수하지 않기 위해서는 복기가 필요하다. "왜 내가 그때 그곳을 선택했지?" "조금 더 생각했다면 다른 곳에 놓았을 텐데..."후회의 생각을 되짚어보면서, "다음에는 같은 실수를 하지 않겠어"라는 다짐이 바로 복기이다. 복기에는 변하지 않는 것과 변할 수 있는 것이 있다. 변하지 않는 것은 바둑판과 알이다. 내가 바둑을 두는 시간이 길다고 마음대로 바둑 칸을 줄일 수 없다. 바둑판은 19개의 줄과 361개의 교차점 안에서 음(검은색)과 양(흰색)이 서로 조화롭게 어울리도록 만들어졌다. 내가 분홍색이 좋다고 바둑알을 분홍색으로 바꿀 수 없다. 정해진 판과 알 그리고 규칙 안에서 진행하는 것이 바둑이다. 반면에 바둑에서 바꿀 수 있는 것이 있다. 바둑을 두는 방식이다. 복기가 나의 판단과 실수를 돼 생각해서 두는 방법을 새롭게 찾고, 자신만의 규칙을 만들어가는 것이라면, 바둑은 변하지 않는 환경에서 변할 수 있는 가능성을 찾는 인생이라고 할 수 있다. 바둑을 반드시 이겨야만 하는 게임으로만 생각한다면, 이것만큼 지루하고 재미없는 것도 없을 것이다. 바둑이 삼라만상을 생각으로 연결해서 우주의 섭리를 놀이로 승화시킨 것처럼, 나의 인생도 바뀔 수 없는 운명으로 시작하지만, 나는 내가 선택하는 자리의 연속성 안에서 희망의 집을 발견할 수 있으면 좋겠다. 그러기 위해서는 나의 인생에서도 복기가 필요하다. 세상이 강제적으로 나에게 부여한 운명에서 벗어나기 위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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