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업 기법 vs 수업 철학

[나는 중학교 영어교사입니다]

by 선경지명

20년 가까운 세월동안 다양한 경험과 생각의 변화를 거쳐 지금의 내가 있다. 20년이라면 절대 짧지 않은 세월이다. 그 세월을 거쳤으면 수업은 이런 거야, 학급경영은 이렇게 하는 거야라고 한마디로 정의를 내릴 만큼 수업 전문가가 되어 있어야 하지 않을까? 나는 수업 전문가이자 현장 전문가이다. 그렇지만‘수업은 이런 거야, 학급경영은 이렇게 하는 거야’라고 감히 한 마디로 정의하지 못한다. 수업에는 정답이 없기 때문이다. 학생들은 한 명 한 명이 개성 있는 인격체이고, 서로 다르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교직이 힘든 것이고, 그렇기 때문에 끊임없는 연구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다양한 연수를 듣고 교수방법을 공부하고 실천하면서 생각의 변화도 많았다. 교과서 지식을 학생들에게 전달하는 것이 내가 해야 할 의무라고 생각한 시절도 있었다. 그 때는 학생들이 교과서 내용을 모두 암기하도록 했다. 어느 순간에는 단순 지식보다는 생각하고 자기 의견을 표현하는 능력을 기르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영어 수업이라는 고정관념을 깨고 생각을 많이 할 수 있는 활동들을 고안하고 시도했다. 앞으로의 생각은 어떻게 바뀔까? 역시 영어는 암기가 최고야!라고 생각해서 수업시간 45분 내내 학생들에게 똑같은 문장을 암기시킬지도 모르겠다. 사람의 생각은 변한다. 자연스러운 이치다. 그렇지만 내가 교사라는 사실은 변함이 없다. 매 순간 학생들을 진심으로 대했다. 강의식으로 수업을 할 때도, 테솔에서 배운 활동을 할 때도, 배움의 공동체를 적용한 수업을 할 때도, 거꾸로교실을 적용할 때도, 체인지메이커 프로젝트 수업을 할 때도, 내가 영어 교사라는 사실과 존재 자체는 변함이 없다. 매 순간 주어진 수업상황에서 학생들에게 가장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수업기법을 응용했다. 지금도 그렇게 하는 중이다.


그간 내가 공부해왔던 수업기법들이 수업을 진행하는데 많은 도움이 된다. 예를 들어, 10차시짜리 프로젝트 수업을 한다고 할 때 거꾸로교실에서 활용하던 디딤영상을 카페에 올린다. 수업시간에 교과서 내용을 하나하나 짚어주지는 않지만, 디딤영상을 통해 학생들이 교과서 내용을 익힐 수 있도록 한다. 프로젝트 진행 과정 중에 학생들이 자신의 생각을 정리할 때, 비주얼씽킹 씽킹맵을 자주 활용한다. 프로젝트 수업을 진행할 때는 학생들이 문제를 혼자 해결하기 보다는 모둠 안에서 많은 의견을 주고받게 한다. 이러한 과정에서는 배움의 공동체에서 배운 규칙이나 협동학습의 원리를 많이 응용한다. 이와 같이 한 차시 수업 또는 길게는 하나의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데는 다양한 교수법을 적용하기도 한다. 교수법에 일일이 이름을 붙여서 나누고 규칙을 정하는 것은 큰 의미가 없을지도 모른다. 어떤 기법도 필요하지 않을 수도 있다. 어쩌면 모든 기법이 필요할 수도 있다. 배움은 교사와 학생, 학생과 학생이 만나 상호작용을 통해 일어난다. 따라서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교사와 학생, 학생과 학생간의 상호관계가 아닐까라는 생각이다.


학생들과의 관계 맺기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수업스킬이 아니라, 바로 진정성이라고 본다. 학생들을 대하는 진심이 학생들에게 닿으면 어떤 수업방법을 쓰더라도 학생들의 마음은 열리게 된다. 수업방법과는 관계없이 학생 자신들이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결과가 달라진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학생들에게 정말 주고 싶은 게 있다면 정성껏 꾸준하게 해보자. 그러다보면 아이들도 포기(?)하고 교사 뜻대로 따라오게 된다. 결국 학생들도 교사의 진정성을 공감하게 된다.


처음 교사 주도의 강의식 수업을 버리고 학생활동 중심 수업을 적용하기 시작할 때 학생들의 반발이 만만치 않았다. 이미 다 알고 있는 것인데 내가 왜 친구들에게 설명을 해야 하느냐, 반대로 왜 가르쳐 주지도 않고 우리한테 설명을 하라고 하느냐, 선생님이 설명을 해 달라는 반응들이 있었다. 마음속으로 나 스스로도 갈등이 있었지만, 중심을 잃지 않고 학생활동 중심 수업의 필요성에 대해 끊임없이 강조했다. 학생들이 스스로 문제를 해결하고 서로 설명하고 가르치는 형태의 수업을 고수했다. 한 학기가 지나고 설문조사에서, ‘교사의 일방적인 강의식 수업 때보다 자신의 수업 참여도가 높아졌다. 어떤 형태의 수업이든 자신만 잘 참여하면 효과가 있다. 자신의 수업 태도가 중요하다’는 반응들이 압도적이었다. 역시 교사의 진정성 있고 일관성 있는 태도가 학생들에게 미치는 영향이 크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한동안 연수를 통해 교수기법에 빠져 있던 나는 어느 순간 나에게 가장 필요한 훈련은 마음 다스림이 아닐까라는 생각을 했다. 교사는 외로운 직업이다. 교실에 들어가면 일대다一對多의 상황이다. 때로는 두려울 때도 있다. 내 앞에 주어진 상황에 당황하지 않고 대수롭지 않게 대응하고 처리하는 것 같지만, 내면에서 수많은 갈등을 겪는다. 나의 판단으로 어떤 결과를 초래할지, 아이들 인생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정신적으로 많이 힘든 직업이다. 그 어떤 교수기법보다 필요한 것이 마음 다스림이라고 생각한다. 내가 마음의 여유가 있어야 내 앞에 주어진 상황을 여유 있게 지켜보고 객관적으로 판단하고 행동할 수 있다. 내 마음에 두려움이 없어야 학생들의 행동을 있는 그대로 들여다보고 기다려줄 수 있다. 학생들의 행동을 왜곡하지 않는다. 몇 년 전부터 회복적 생활교육, PDC 학급긍정훈육, 버츄 프로젝트 등 친절하고 단호한 교사, 교사와 학생을 상호 존중하는 문화를 만들려는 시도들이 많이 도입되고 있다. 이 역시 어떤 이름에 갇혀 규정된 절차를 따르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내가 어떤 마음으로 학생들을 대하느냐가 가장 중요할 것 같다.


2015년 거꾸로교실 전국 운영진을 하며 교사 대상으로 강의를 많이 다니던 시절이 있었다. 4,5월쯤 대외공개수업을 하게 되었다. 2교시 이른 시간에 하는 공개라서 선생님들이 많이 못 오실 줄 알았다. 예상외로 많은 분들이 수업 참관을 오셨다. 그만큼 당시 거꾸로교실에 대한 관심이 대단했던 것 같다. 어떤 수업을 할지 고민이 많았다. 거꾸로교실에 대해 알고 싶어 참관하러 오는 분들에게 조금이라도 도움을 드리고 싶은 마음이었다. 대외공개수업을 하는 교사들은 항상 그러하다. 평상시 수업을 그대로 공개하는 것이 원래 수업공개의 취지이지만, 멀리서 수업을 보러 오시는 분들을 위해 뭔가 하나라도 더 보여드려야 하지 않을까라는 부담감이 늘 들기 마련이다. 가장 거꾸로교실다운 활동이 무엇일지 고민을 했다. 거꾸로교실을 해본 결과, 학생들의 반응이 좋았던 방법을 활용하기로 했다. 새로운 단원 첫 차시였고 어휘 수업이었다. 수업 절차는 다음과 같았다.

1. 새로운 단어가 적힌 리스트로 단어 뜻을 익힌다.

2. 단어가 무작위로 배열된 활동지를 모둠별로 하나씩 나누어 준다.

3. 교과서 본문을 들으면서 자기가 들리는 단어에 동그라미를 친다.

4. 자기가 동그라미 친 단어의 뜻을 적어본다.

5. 모둠원들끼리 단어 리스트에 있는 단어를 나눠서 외운다.

(보통 한 모둠은 4명으로 구성한다. 21개의 단어 리스트가 있다면 1명이 7개의 단어를 외운다. 모둠 안에서 7개를 외우기 힘든 학생이 있다면 다른 모둠원이 더 많이 외워도 된다.)

6. 단어 릴레이를 한다. 모둠원들이 돌아가면서 자신들이 외운 단어를 쓴다. 이 때 테스트용 종이는 벽에 붙어 있다.

7. 릴레이가 끝나면 다른 조의 테스트 결과를 매긴다.

8. 새로 익힌 단어를 넣어 문장을 만들어 본다.

단어 릴레이의 효과는 다음과 같다. 학생들이 게임처럼 단어를 외울 수 있다. 혼자가 아니라 모둠원이 힘을 합쳐야 좋은 결과가 나올 수 있기 때문에 이 과정에서 영어 실력이 부족한 학생도 모둠에 기여를 하기 위해 열심히 외우게 된다. 단어를 외우는 과정에서 한 번, 나가서 쓰는 과정에서 한 번, 매기는 과정에서 한 번, 최소한 3번 이상 학생들이 단어에 노출된다.


45분의 수업이 끝난 후 수업을 참관한 선생님 중 한 분이 나에게 물었다. ‘그러니까 선생님이 하신 이 수업이 거꾸로교실이란 말이죠?’순간 내가 어떻게 대답을 해야 할지 말문이 막혔다. 절대 나를 공격하려는 발언도 아니었고, 위협적인 톤으로 질문한 것도 아니었다. 순간 움찔했다. 왜 그랬을까? 언제나 그런 질문이 어렵고, 답하기 힘든 것은 수업을 한 마디의 말로 규정하는 자체가 불가능하기 때문일 것이다. 내가 한 것은 거꾸로교실 수업이 아니라 그냥 내 수업이었다. 학생들에게 가장 효과적으로 어휘를 익히게 할 방법이 무엇인가를 고민했고, 그 과정에서 거꾸로교실 연수에서 배운 활동을 넣어서 했을 뿐이다. 수업이 중심에 있다. 그 수업에 필요한 기법들은 해당 차시를 뒷받침하기 위해 필요한 것들로 구성할 뿐이다. 거꾸로교실 수업을 구현하기 위해서나 프로젝트 수업을 구현하기 위해서 수업을 하는 것이 아니다. 단지 내가 수업을 하는데 그러한 기법들이 필요한 것이다.


영어교사로서 고민이 많다. ‘내가 백 퍼센트 영어로 수업을 하면 학생들의 영어 실력이 향상이 될까?’ 에서부터‘꼭 모든 학생들이 영어를 잘 할 필요가 있을까? 수업시간에는 얼마나 많은 양의 영어에 노출시키는 것이 좋을까? 45분간 10문장, 20문장 문장을 암기하도록 하는 게 효율적일까? 생각을 많이 하도록 하는 게 효율적일까? 이걸 굳이 영어로 표현을 해야 할까?’등 질문은 끝이 없다.

학생들이 훌륭한 수업 결과물을 완성하고 뿌듯해 한다. 나 또한 힘든 과정을 거쳐 완성된 결과물을 보면 한 없이 기쁘다. 10차시에 걸쳐 학생들이 자기소개하기 책을 완성했다. 그런데 여전히 be 동사와 일반 동사의 쓰임을 혼동한다. 주어에 맞게 동사 형태를 적지 못한다. 철자를 틀린다. 영어 단어를 읽지 못한다. 그렇지만 학생들은 자기소개하기 책을 완성했다는 성취감을 느낀다. 책 만들기를 통해 한 단원에서 교사가 제시하는 문장 외에 자신이 말하고자 하는 문장들을 더 많이 찾아보고 사용해보았다. 영어의 지식적인 측면, 정확성과 유창성, 영어에 대한 자신감 높이기, 과연 이 중 어느 것에 초점을 두어야 할까? 정확성과 유창성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으면서 학생들이 영어에 대한 흥미를 잃지 않게 할 수 있는 이상적인 방법은 무엇일까? 과연 그런 방법이 있기는 할까?


학생들에게 길러주어야 할 것은 주어진 과제에 대한 집착력, 할 수 있다는 자신감, 하나를 시작했으면 멈추지 않고 지속적으로 하는 끈기와 성실함이 아닐까 한다. 45분간 10문장, 20문장을 앵무새처럼 외워봐야 다음 날 되면 다 까먹는다. 까먹었다고 포기하는 것이 아니라 다시 반복해서 외워보려는 의지, 누가 시켜서가 아니라 영어가 재미있어서 공부하는 태도 등 우리가 진정 수업이나 학교에서 가르쳐야 할 부분은 그런 태도가 아닐까라는 생각이다. 영어 수업을 통해, 국어 수업을 통해, 수학이나 과학 수업을 통해 그런 태도만 길러진다면 어떠한 상황에서도 자신 앞에 주어진 일에 최선을 다하는 인생을 살 수 있을 것이다. 그들이 살아가는 중에 영어가 필요할 때, 수학이 필요할 때, 과학이 필요할 때, 그 지식을 꺼내어 혹은 공부해 가며 활용하면 되는 것이다. 무언가를 하겠다는 의지,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키워주는 것이 수업이나 학교에서 할 수 있는 가장 중요한 임무이자 역할 중 하나라고 믿는다.


-<긍정의 힘으로 교직을 디자인하라>(2019.2.20.)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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