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수업, 그리고 신참내기의 고군분투

[나는 중학교 영어 교사입니다] 1장. 나는 왜 영어 교사가 되었을까

by 선경지명

[나는 중학교 영어 교사입니다]

1장. 나는 왜 영어 교사가 되었을까

1. 어린 시절 나의 꿈

2. 중학교 영어교사가 되다

3. 첫 수업, 그리고 신참내기의 고군분투



첫 수업, 그리고 신참내기의 고군분투

그렇게 2000년 3월 1일자로 ○○중학교에 신규교사로 발령받았다. 임용에 합격하면 모든 것이 순조로울 줄 알았는데, 출근 후 새로운 고민거리들이 생겼다. 2000년 3월 2일 첫 수업에 들어섰을 때 기대감은 실망으로 바뀌었다. 상상하던 교실이 아니라, 나를 무시하고 놀아보겠다는 듯한 학생들과의 만남이었다.


첫 수업을 맡은 학교는 한 학년이 11반까지 있는 남녀공학이었다. 2학년 남학생 반에서 첫 수업 날, 교실 문을 열고 들어가자 아이들의 시선이 한꺼번에 쏟아졌다. 나는 며칠 동안 준비한 영어 자기소개를 외우다시피 해서 말했다.

“Hello, everyone! My name is Sun Kyung Choi. Nice to meet you. I graduated from...”
그 순간 교실이 떠나갈 듯한 환호성이 터졌다.
“와~ 예쁘다!”, “우후~”


그 웃음 속에는 호기심도, 장난기도, 그리고 ‘한 번 놀아보자’는 기운도 섞여 있었다. 수업은 엉망이었다. 45분 수업이 한없이 길게 느껴졌다. 뭐랄까 내가 희롱당하는 느낌? 내가 출근 첫 날 첫 수업에서 그런 취급을 받을 줄은 꿈에도 상상하지 못했다. 학생들은 내 말을 듣지 않았고, 나는 그들의 에너지를 감당하지 못했다.


결국 그날 수업이 끝나고 아니 한동안 교무실에 돌아와 아무 말도 하지 못한 채 가방을 붙들고 앉아 있는 경우가 많았다.

‘이 길이 정말 내 길일까?’

임용준비 때 상상했던 교실과는 너무 달랐다. 중학교 2학년 학생들은 덩치도 크고 인상도 험악해 보였다.


첫 수업한 반에서 ‘아, 이건 뭔가 잘못되었구나. 애들한테 너무 만만하게 보였구나’라는 생각이 제일 먼저 들었다. 그래서 그 다음 시간부터는 아예 노선을 바꾸어서 정색을 하고 학생들에게 무섭게 보이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 장구채로 교탁을 두드리며 아이들을 위협했고, 때로는 아이들 손바닥을 때리기도 했지만, 만만한 첫인상이 강했는지 말을 잘 듣지는 않았다. 한동안 학생들과의 주도권 싸움으로 힘든 시기를 보냈다.


일부러 선생님이 곤란해 할 질문을 골라서 하는 아이들도 있었다. “선생님 불어 전공해서 그런지 영어 발음이 좀 이상하네요”라고 말하는 학생도 있었다. 신참 냄새가 나는 나를 대하는 아이들의 태도에 적응하는 것이 쉽지 않았다. 대학의 정규 수업에서나 임용고시 준비 때 아무도 가르쳐 주지 않았던 학생들과의 관계 맺기가 제일 어려웠다. 신규 첫 6개월이 너무나 힘들었고, 교직 생활을 계속 해나갈 수 있을까라는 두려움이 컸다.


그래도 신규교사라서 세대차이가 크지 않다는 이유로 학생들이 쉽게 다가왔다. 정동진에 가서 일출을 보고, 놀이공원, 영화관, 노래방을 가기도 했다. 한 여학생은 걸 그룹 멤버와 닮았다며 나를 따랐고, CD와 십자수 쿠션을 선물하기도 했다. 여학생 반 수업은 부담이 덜했고, 그 수업을 바라보며 하루하루를 버텼다.


첫 발령지는 경력 많은 교사들이 주로 근무하는 일급지였다. 그 해에는 예외적으로 5명의 신규교사가 발령받았다. 동기들과 처총모임으로 자주 모이며 엠티도 가고 평일 저녁도 함께 보냈다. 선배 교사들도 먹을 것을 챙겨주고 저녁 식사를 자주 마련해주며 위로해주셨다. 동기들과 선배 교사들 덕분에 어려운 시기를 견뎌낼 수 있었다.


2년 전 강의를 나갔을 때, 첫 학교에서 가르쳤던 학생이 고등학교 국어 선생님이 되어 있었다. '선생님 덕분에 성적이 올라 저도 선생님이 될 수 있었다'며 웃었다. 요즘은 체벌이 금지되었지만, 당시는 때려서라도 바르게 지도해야 한다는 생각이 강했다. 이제는 학생들을 더 수용하려는 자세가 길러졌지만, 친절함과 단호함을 함께 유지하는 것이 전공 공부보다 더 중요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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