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중학교 영어 교사입니다]1장. 나는 왜 영어 교사가 되었을까
[나는 중학교 영어 교사입니다]
1장. 나는 왜 영어 교사가 되었을까
1. 어린 시절 나의 꿈
2. 중학교 영어 교사가 되다
불어 전공자, 영어 교사가 되다
나는 94학번이다. 일명 마루타 세대, X세대라고 불린다. 고등학교 입학시험에 주관식과 영어듣기가 처음 도입되고, 94년도 대학입학시험부터 수능이 처음 도입되는 등 새로운 시도들이 우리 때 많이 이루어졌다. 수능의 도입은 내 인생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친 사건 중 하나였다. 고등학교 2학년까지는 학력고사 체제로 공부했다. 문제은행식이라 많이 풀고 연습하면 좋은 성적을 얻을 수 있었다. 이해가 안 되면 외워서라도 집요하게 공부하며 서울의 ○○대학교 영어영문학과를 목표로 입시를 준비했다. 그런데 고등학교 3학년 올라가는 해에 갑자기 입시제도가 바뀐 것이다.
학력고사와 완전히 다른 수능이 도입되면서 적응하기가 쉽지 않았다. 교과서 암기에 집중하느라 책을 많이 읽지 못해 언어영역을 시간 안에 푸는 것도 힘들었고, 수리탐구영역은 더더욱 어려웠다. 유일하게 영어 과목만 점수를 유지했다. 고등학교 3학년 때 처음으로 중학교 1학년 때 피아노를 그만둔 것을 후회했다. 초등학교 동창이 작곡을 전공한다는 얘기를 들으며, 나도 피아노를 계속했더라면 공부하느라 머리 아프지 않았을 텐데 하는 생각이 들었다. 관악부에 들어가 악기를 배웠더라면 좋았을 거라는 생각도 했다. 수능 성적이 나오지 않아 괴로운 날들을 보냈다. 내신은 1등급이었으나 수능 성적이 안 나와 목표로 했던 ○○대학교는커녕 지역 국립대 영어영문학과 지원도 힘들게 되었다.
결국 담임선생님과 엄마의 권유로 사범대에 원서를 썼다. 영어를 전공하지 못하더라도 불어교육과에 가겠다고 고집을 부렸고, 지역 국립대 불어교육과에 합격했다. 대학 생활은 참 즐거웠다. 사범대를 다니면서도 한동안은 교사보다는 번역이나 동시통역을 하겠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불어를 전공하다 보니 불어교사가 되겠다는 꿈을 다지게 되었다. 그런데 불어는 비인기 과목이라 임용에서 티오가 거의 없었다. 졸업하던 해에도 전국에서 불어교사는 단 한명도 뽑지 않았다. 일단 대학원에 진학해 불어 실력을 쌓으며 시간을 벌기로 했다. 일단 대학원에 진학해 시간을 벌었지만, 졸업 후 취업할 길이 막막했다. 속기사 학원을 다니기도 했지만 잠시뿐이었다.
불어 임용 티오가 날 기미가 없자 결국 1년만에 대학원 휴학을 결심하게 되었다. 영어 임용 공부를 시작하게 된 것이다. 지도교수님은 영어로라도 공부해서 임용에 붙으라며 흔쾌히 지지해주셨다. 교수님께서 “불어 전공자가 영어로 임용을 치르더라도 괜찮다, 그 결정을 지지한다.”라고 말씀해주셨을 때의 그 따뜻한 위로가 아직도 기억난다.
처음 6개월간은 초등학교 영어 보조 교사로 아르바이트하며 용돈을 벌었다. 아빠는 대학 졸업 후 모든 경제적 지원을 끊으셨기 때문이다. 2학기에는 아르바이트를 그만두고 임용고시 준비에만 매달렸다. 철두철미하게 규칙적으로 생활하며 매일 아침 8시부터 저녁 8시까지 12시간 이상 공부했다. 공부도 밥도 혼자서 해결하며 나 자신과의 싸움을 시작했다. 엄마의 격려와 경제적 지원이 큰 도움이 되었다. 교사가 되겠다는 마음 하나로 외로움과 불안을 견뎠다. 불어와 영어, 언어는 다르지만 ‘가르침’의 본질은 같다고 믿었다.
2000년은 뉴 밀레니엄 신드롬으로 떠들썩했다. 컴퓨터가 2000년대를 인식하지 못해 전산대란이 일어날 것이라는 괴담이 떠돌았고, 종말론자들의 집회 모습이 뉴스에 보도되기도 했다. 걱정과 달리 2000년 1월 1일은 평온하게 지나갔다. 나에게는 특별한 의미의 해였다. 마침 운도 따라줘서 99년도에는 중등 교사 임용 티오가 확 늘었다. 영어과만 해도 총 50명을 뽑았다. 임용고시 2차 면접 때 영어 인터뷰 질문도 뉴 밀레니엄에 관한 것이었다.
당시 임용시험은 1차에서 교육학과 영어 전공시험을 통과하면, 2차에서 수업지도안 작성, 수업실연, 면접이 이어졌. 1차 시험은 아는 문제가 나오면 무조건 붙는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전공 과목에서 공부할 내용이 방대했다. 학원을 다니며 스터디 모임을 조직했고, 특히 영미문학 파트는 공부할 것이 많았다. 2차 시험 수업실연은 3명의 면접관 앞에서 5-10분 정도 수업을 해야 했다. 내성적인 성격이라 걱정했지만, 용기를 내어 면접관들을 학생처럼 대하며 수업실연을 해냈다. 면접에서는 뉴 밀레니엄을 맞이하는 초임교사로 발령받는다면 평생 잊지 못할 의미 있는 일이 될 것이라고 답변했다. 2차 면접 때 입을 옷을 엄마와 함께 고르던 기억이 난다. 그 옷은 20년이 다 된 지금도 옷장에 걸려 있다.
마침내 임용고시에 합격을 하여 2000년 신규교사로 발령을 받게 되었다. 드디어 중학교 영어교사가 된 것이다. 1999년, IMF 여파로 세상이 흔들리던 시절, 나는 도전을 멈추지 않았다. 그리고 마침내 2000년, 중학교 영어 교사로 첫 발령을 받았다. ‘새천년의 교사’라는 말이 그렇게 벅찰 수가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