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시절, 교사라는 꿈의 씨앗

[나는 중학교 영어 교사입니다] 1장. 나는 왜 영어 교사가 되었을까

by 선경지명

수업에서 배운 내용을 그대로 시험에 출제하는 방식이 신선했다. 외국어를 좋아하던 나는 전문 번역가나 동시통역가를 꿈꿨다. 사춘기를 겪으며 선생님들에 대한 불만도 생겼고, '나는 교사는 안 할 거야'라고 다짐하기도 했다.

[나는 중학교 영어 교사입니다]

제1장 나는 왜 영어 교사가 되었을까

1. 어린 시절, 교사라는 꿈의 씨앗


어린 시절, 교사라는 꿈의 씨앗


어릴 적 내 꿈은 언제나 “선생님”이었다.

어린 시절부터 중학교 3학년까지 교사가 되고 싶다는 꿈을 가지고 있었다. 초등학교 1학년 때 만난 담임선생님은 세련되고 멋진 분이셨다. 초등학교 1학년 담임선생님은 내게 ‘교사’라는 단어의 첫인상을 남긴 분이었다. 세련되고 단정한 옷차림, 다정하지만 단호한 말투, 그리고 아이 한 명 한 명을 기억해주는 따뜻한 시선. 그 모든 것이 어린 나에게는 마법처럼 느껴졌다.

학교와 가까운 곳에 살았고, 할아버지부터 삼촌들까지 모두 함께 사는 대가족이었다. 엄마는 농사일과 집안일로 바빴고, 나는 스스로 알아서 해야 했다. 유치원에 다녀본 적 없는 나에게 학교는 신기했고, 세련된 선생님은 특별해 보였다. '스승의 그림자도 밟지 않는다'는 마음가짐으로 선생님을 존경했고, 그래서 장래희망을 물으면 늘 선생님이 되고 싶다고 답했다.


초등학교 시절 가장 부러웠던 것은 학원 다니는 아이들이었다. 특히 미술학원과 피아노학원이 부러웠다. 공무원인 셋째 고모의 설득으로 2학년 때부터 피아노 학원을 다니기 시작했다. 성실한 성격 덕분에 진도가 잘 나갔고, 늦게 시작했지만 5, 6학년 때는 학교 대표로 합창부와 합주부 반주를 할 정도가 되었다. 초등학교 시절은 동네 골목과 운동장에서 친구들과 놀던 기억과 피아노를 연주하던 장면들이 가장 먼저 떠오른다. 2학년 작곡 수업에서 담임선생님의 칭찬을 받으며 더 열심히 배우겠다고 다짐했다. 3학년부터 합주부원으로 활동하며 매년 시민회관에서 공연했던 경험은 살아가는 데 큰 도움이 되었다.


피아노를 배우면서 자연스럽게 피아노 선생님이 꿈이 되었다. 발표회도 하고 대회에서 금상과 최우수상을 받으며 자신감이 생겼다. 우아해 보이는 피아노 선생님들이 모두 좋아 보였다. 중학교 1학년 때까지 피아노 학원을 다녔지만, 난이도가 높아지고 지겨워질 무렵 엄마의 권유로 학원을 그만두었다. 그래도 고등학교 3학년까지 반주자로 활동하며 피아노를 취미로 잘 활용했다.


초등학교 졸업 즈음 새 동네로 이사했다. 피아노를 그만두고 공부를 시작하면서 성적이 수직상승했다. 반에서 1등, 전교에서 1, 2등을 하며 칭찬받았다. 중학교 1학년 때 영어 알파벳을 처음 접하고 뭔가 막막하긴 했지만, 노력하면 할수록 실력이 향상되는 것이 느껴졌다. 외국 사람들과 소통할 수 있다는 점이 신기했다. 영어로 말할 때는 또 다른 자아가 되는 듯했고, 더 솔직하고 많이 웃게 되었다.

중학교 시절 처음 영어를 접했을 때의 감정은 ‘설렘’이었다. 처음 듣는 언어, 낯선 발음, 그리고 그것을 이해했을 때의 희열. 영어는 내게 ‘또 다른 나’를 만들어주는 언어였다. 외국어를 통해 세상을 보는 눈이 열리고, 말 한마디를 통해 마음이 통할 수 있다는 사실이 그저 신기했다.


고등학교 때 불어를 처음 배웠고 그 매력에 푹 빠졌다. 영어와는 또 다른 매력을 느꼈다. 1학년 때 만난 불어 선생님의 영향이 컸다. 키가 크고 친절하며 패션 감각이 뛰어난 선생님은 독특한 수업 스타일을 가지고 계셨다. 불어 선생님은 교과서 내용을 가르친 후 학생들이 스스로 그 내용을 정리해 보게 했다. 한 단원 학습이 끝날 때마다 A4 용지 반 장에 핵심 단어, 핵심 문장 등을 정리하게 했다. 검사를 맡을 때마다 잘했다는 선생님의 칭찬이 불어에 대한 호감도를 높였던 것 같다.

무엇보다도 선생님은 불어를 참 재미있게 가르치셨다. 일상생활에서 쓰이는 불어를 많이 알려 주셨다. 한 단원 수업이 끝날 때마다 샹송을 배우기도 했고, 샹송 가사 내용 중에 우리가 알아야 할 문법 사항이 있으면 그것을 노래를 통해 익히게 했다. 수업에서 배운 내용을 그대로 시험에 출제하는 방식 또한 신선했다. 외국어를 좋아하던 나는 전문 번역가나 동시통역가를 꿈꿨다. 사춘기를 겪으며 선생님들에 대한 불만도 생겼고, '나는 교사는 안 할 거야'라고 다짐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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