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교차가 많이 나는데 외투 챙기기 번거로워 그냥 등교하던 막둥이가 기어코 감기에 걸려버렸다. 아이 하교 시간에 맞춰 병원 진료를 받기로 했다. 그런데 가게에서 필요한 물건들을 구입하느라 그시간을 넘겨버렸다.
"엄마, 어디예요? 왜 안 와요?"
코맹맹이 소리로 나를 찾는 막둥이의 목소리엔 짜증이 묻어있었다. 아이를 어르고 달래 집으로 가 있으라고 하고 부랴부랴 집으로 향했다.
아파트 지하 주차장에서 아이를 만나 병원으로 갔다. 오후 진료 개시 5분 전에 아슬아슬하게 도착했다. 벌써부터 북적이는 병원에서 다행히 빠른 순번으로 접수를 하고 대기했다. 아이는 밤새 코가 막혀서 제대로 잠을 못 잔 여파로 소파에 머리를 기대고 금세 잠들어 버렸다. 그런 아이의 얼굴을 눈으로 훑었다. 밤늦게까지 가게를 하느라 아이를 세심히 챙겨주지 못해 미안한 마음, 그래도 잘 자라 주는 아이에게 고마운 마음이 뒤섞인 감정이 가슴 안에서 휘몰아쳤다. 저 달콤한 잠을 방해하고 싶지 않았지만 아이의 이름이 호명되었고 곧 진료실로 들어갔다.
"어디가 아파요?"
"코도 막히고 목도 따끔거려요."
의사 선생님의 물음에 아이는 의젓하게 대답했다. 저 아이가 언제 저렇게 자라서 선생님의 질문에 대답을 잘했던가. 봄만 했어도 의사 선생님이 질문을 하면 대신 대답을 하길 바라면서 나를 바라보던 아이였다. 청진 후 목과 코, 귀의 상태를 살핀 후 선생님이 말씀하셨다.
"진찰 결과 보기엔 그리 심한 것 같지는 않은데 아이가 통증을 심하게 느끼는 것 같아요. 약 처방해 드릴 테니 먹여보시고 경과를 봐서 내원해 주세요."
진료는 금방 끝났고 약을 받기 위해 기다리는 사이 아이에게 물었다.
"뭐 먹을래? 너 좋아하는 햄버거 사줄까?"
가게를 나가느라 챙겨주지 못할 아이의 끼니가 걱정됐다. 아이는 햄버거를 무척이나 좋아했다. 하지만 건강을 생각해서 횟수를 제한했다. 아파서 입맛이 없을까 봐 좋아하는 햄버거를 사줄까 물었더니 고개를 설레설레 젓는다.
"목이 아파서 못 먹을 것 같아. 음...... 그냥 죽 먹을래."
"무슨 죽?"
"음...... 엄마가 끓여주는 참치죽."
집으로 가는 길에 있는 죽 가게에 들를 생각으로 물었는데 아이는 내가 끓여준 죽이 먹고 싶단다.
"그래. 끓여줄게. 참치죽."
아이와 함께 집으로 돌아왔다. 남편은 벌써 가게에 나갔고 나는 아이들 저녁 끼니를 챙겨두고 곧 나가야 한다. 아이는 소파에서 동영상을 보다가 곧 잠이 들었다.
당근을 다지고 양파를 다져 참기름에 볶는다. 어느 정도 당근과 양파가 익으면 기름을 뺀 참치와 밥을 넣고 볶는다. 그리고 물을 자작하게 부어 끓인다. 소금으로 간을 하고 한소끔 더 끓인다. 급하게 하느라 불린 쌀 대신 밥을 넣었다. 요즘 남편의 당뇨로 귀리 넣은 밥을 했는데 간을 보며 먹어봤더니 더 고소한 것 같다. 음식은 따뜻할 때 먹어야 제맛이라 아이에게 먹이려고 보니 잠든 모습이 왠지 너무 짠하다. 코끝이 시큰해진다.
우리 아이들은 아플 때마다 참치죽을 찾았다. 참치죽을 끓이면서도 아이들 대신 내가 아팠으면 하는 생각을 하지만 곧 그 생각을 날려버렸다. 엄마가 건강해야 아이 곁에 오래 있을 수 있다. 죽을 정성스레 끓이며 아이가 빨리 낫길 바랐다.
오늘따라 포장과 배달이 많았다. 고양이 손이라도 빌리고 싶게 바쁜 와중에 아이에게서 전화가 왔다. 평소 같으면 바쁜 걸 다 쳐내고 전화를 걸었을 텐데 오늘은 아이의 컨디션을 생각하니 전화를 받지 않을 수 없었다.
"엄마, 배고파요."
밥을 두 그릇씩 먹는 아이인데 죽 한 그릇으로 성이 찰리 없었다.
"죽은 먹었니?"
"네."
"약은 먹었어?"
"네."
"몸 따뜻하게 하고 있어."
몸상태가 조금 나은 모양인지 이제야 먹고 싶은 음식이 생각나나 보다. 걱정스러운 마음에 불안했는데 한결 마음이 놓인다. 다행이다. 아이에게 아플 때 먹는 참치죽이 슬픈 추억이 아니라서 다행이다.
사진 출처 - 픽사 베이
나는 소화기관이 약해서 배앓이를 자주 했었다. 하지만 '엄마 손은 약손'하며 배를 쓸어줄 엄마가 일찍 돌아가셨다. 그래서 초등학교 고학년 때부터 혼자 병원에 가서 진료를 받았다. 그리고 돌아오는 길에 슈퍼에 들러 가루로 된 인스턴트 '옥수수 스프' 한 봉지를 샀다.
물을 붓고 묽게 끓인 후 밥을 넣어 죽처럼 먹었다. 아플 때마다 엄마 생각에 서러웠지만 내색하진 않았다. 나에게 '옥수수 스프'는 아플 때 먹는 음식이었는데 함께 사는 사촌동생들에게는 '맛있는 별미'였다.
가끔씩 엄마가 보고 싶을 때 옥수수 스프를 만들어 먹었다. 더 맛있는 수프가 많지만 빨간색과 노란 스프 그림이 들어간 그 스프가 왠지 엄마를 떠올리게 했다. 지금은 아플 때 그 스프를 먹지 않는다. 아니 언젠가부터 그 스프를 찾지 않았다. 이렇게 조금씩 슬픔에 무뎌져 가고 아픈 기억도 잊어가는 거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