싸움을 해봤는가?
해봤다면 적지 않이 맞았을 것이다. 그리고 터득했을 테다. 이기는 법, 살아남는 법을.
민중당 대표로 활동하면서 겪은 크고 작은 무림쟁투들을 엮어보았다.
어떤 세력이든 핵심이 중요하다. 그래서 싸움이 붙으면 한 놈을, 가장 중심에 있는 놈을 쳐야 끝이 난다.
민중당이 사법농단 투쟁을 할 때 모든 구호를 '양승태 구속'으로 모았다.
인권의 최후 보루가 되어야 할 사법부가 오히려 자신들 권력을 키우기 위해 박근혜 입맛에 맞게 재판을 조작하고, 무참히 인권을 짓밝았다.
쌍용자동차, KTX 승무원, 콜트콜텍 등 1심-2심의 부당해고 판결을 뒤집어 해고노동자들의 가슴에 대못을 박고, 강제징용 판결을 미루어 박근혜의 친일행각에 적극 가담했다. 판사 비리가 터지자 이를 막기 위한 재물로 이석기 의원 내란사건 판결을 활용하고, 강제해산된 통합진보당의 지방의원들을 모조리 솎아내기 위한 재판계획서까지 비밀문서로 작성했다.
대외비 문서에는 전국의 법원과 판사들을 감시하기 위해 공식점검을 외피로 하여 비공식 방법을 최대한 동원하라고 지시했다. 비공식 정보 수집이 드러나면 법관사찰, 재판개입이라고 반발이 예상되니 철저한 보안 유지를 강조하고 빅데이터, SNS, 게시판 리서치, 거점법관(법원행정처 출신 엘리트 법관)을 활용한 조기 경보체계 구축 등 정보수집과 감시의 구체적 방법까지 제시했다. 이건 국가정보원을 찜쪄먹을 비밀정보망을 만들려고 했다는 뜻인데, 도대체 이들이 판사집단인지, 지능범죄 집단인지 헛갈릴 지경이다.
가관인 것은 성범죄 판사마저도 그가 법원행정처 소속 엘리트 판사면 두팔 걷어부치고 비호했다는 점이다. '존경하는 재판장님' 탈을 썼지만 속살은 치한에 불과한 자들이었다. 성매매를 하다 현행범으로 체포된 법원행정처 판사를, 사표는 반려하고 가벼운 징계만 줘서 변호사가 되는 길을 터 주었다. 가당치도 않은 것들이다.
사회적 약자를 짓밟고 민주주의를 완전 부정한 사법농단의 몸통이자 실질 책임자는 양승태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법원장, 대법관은 물론이요 일선 새끼판사들에 대한 수사도 쉽지 않았다. 검찰이 청구하는 영장은 속속 기각되고, 유해용 판사를 필두로 주요 혐의자들이 보란 듯이 증거를 폐기하였다. 양승태 휘하에 있던 판사들은 서로서로 얽혀서 방탄 사법부를 형성하고 있었다.
영장이 계속 기각되자 분위기가 싸해졌다. 새끼판사도 안 되는데 대법관은 꿈도 못 꿀 상황이었다. 마지막 고비가 대법관 박병대 고영한 구속영장이 기각될 때였다.
‘판사들 잡아넣기가 이렇게 어렵구나!’
‘적폐 판사 구속은 임종헌 하나로 끝나나?’
‘양승태가 줄곧 큰 소리 친 이유가 있었네!’
박병대 고영한의 구속영장이 기각되었으니 양승태는 더더욱 안 될 것이란 비관이 짙게 깔렸다.
그런데 내 판단은 좀 달랐다.
우선 민심이 급속도로 나빠졌다. 국정농단 사건 때, 최순실이 ‘죽을 죄를 졌다’ 하니 죽는 거 도와준다며 포클레인으로 검찰청을 들이받았던 사건처럼 양승태 사법부에 대한 민심은 최악으로 치달았다. 그 즈음에 후임인 김명수 대법원장 출근길에 화염병을 던진 사건, 80대 고령의 민원인이 억울하다며 대법원 5층에서 자살한 사건 등 서초동 일대가 뒤숭숭했다.
‘판사 놈들 정말 나쁜 놈들이네’
‘저들끼리 다 해처먹고도 한 놈도 못 잡네’
만약 양승태를 풀어준다면 민심은 폭발할 태세였다.
박병대 고영한 기각 사유에서도 읽히는 감이 있었다. 증거인멸 및 도주의 우려가 없다며 상류층 인사들 봐줄 때 흔히 쓰는 상용수법 이외에 ‘범죄 행위에 관여 정도, 공모 여부에 대한 소명’을 들었다. 즉 박병대 고영한은 사법농단 행위에 적게 관여하거나 공모 흔적이 크지 않아서 구속을 기각했다는 것인데, 이 논리대로 하면 양승태는 제대로 잡히게 된다. 재판 거래, 사법부 블랙리스트, 검찰수사 방해, 판사비리 무마 등 모든 사법농단 혐의의 정점에 서 있는 인물이기 때문이다.
결정적인 것은 언론에 비친 양승태의 거만함이다. 박근혜 이명박이 구속되는 판에 양승태는 너무 득의양양했다. 집앞 놀이터에서 기자회견을 할 때도, 검찰 수사를 받기 직전 검찰 포토라인이 아닌 대법원 앞에서 입장을 밝힐 때도 그 표정과 눈초리는 '누가 감히 나를 건드려!' 하고 엄포를 놓는 듯, 국민들 위에 군림하는 모습이었다.
양승태는 그렇게 자기 무덤을 열심히도 팠다.
자유한국당은 비리판사를 비호하고, 민주당은 야당 탓하며 손놓고 있을 때, 민중당이 전국 당조직을 발동하여 집회, 토론회, 선전전, 기자회견, 출퇴근 1인 시위 등 끈질기게 여론을 끌고갔다.
결국 양승태를 잡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