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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성현 Mar 23. 2020

백경(白鯨)의 시



밤만 되면 마음 속에 처박아 놓았던

언어들이

곰실곰실 올라 오는 것은

비단 새벽이 추억을 기다리기 때문만은 아닙니다


때때로 봄비가

사랑의 말을 빗겨 써도

꽃샘추위조차 달곰해지는 계절 탓에

겨울은 아물어 갑니다


다만 내일의 따스함에

잔고가 넉넉지 않음을 알기에

나는 또 빈주머니 속

몽친 실망울만 매만집니다


혓바닥에 붙지 않는 발음처럼

어떤 것은 마음에 있어도

내뱉을 수 없고


내가 기다리는 시는 써도 써도

나타나지 않는 걸 보니


나는 파괴만 할 뿐 정복하지 않는 고래가 되려나 봅니다


어떤 이의 다리를 부러뜨린 죄는

입증된 바 없지만

그가 나를 악몽으로 만나는 것은

나는 글자 위에서 늘 도망치기 때문입니다


비 내려도 바다는 잠잠하듯

계절이 바뀌어도 종이가 늘 비어있는 이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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