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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 담 Feb 07. 2024

공공기관에 가고 싶은 이유 01.

1.1 이상과 현실 사이

제가 쓴 소설의 제목이 『신의 직장. 신이 떠나다.』이고, 제가 공공기관 출신이라 그런지 취준생/이직자 관점에서 공공기관에 가고 싶은 이유를 정리했습니다. 이 챕터에서는 공공기관의 장점이라고 대부분의 사람들이 인식하고 있는 ‘안정성’과 ‘워라밸’에 대해 현직자의 마음으로 솔직담백하게 파헤쳐 보고자 합니다.



1.1 이상과 현실 사이 

                                  

요즘 뉴스에 심심찮게 ‘기재부에 사무관들이 사라진다.’, ‘삼성도 맘에 안 들면 떠난다.’, ‘공기업에 허리가 얇아진다.’라는 주제의 기사들이 자주, 많이 올라오고 있다. 직장인 익명 커뮤니티 ‘블라인드’ app에서는 누구나 아는 회사에 다니면서도 자기 회사를 욕하는 글들이 하루가 멀다고 게시글이 올라온다. 블라인드 내 회사 리뷰에 들어가 보면 현직자들이 가차 없이 남긴 단점들이 넘쳐난다. 이유가 무엇일까?

우리는 입사하기 전에 그 회사의 장, 단점을 제대로 알고 들어가기 어렵다. 보통 3년 차 이상은 되어야 회사를 다 파악하게 된다. 신입사원이 들어와서 일을 가르칠 때 ‘사이클’이라는 단어를 자주 썼다. 1년을 가리키는 단어다. 신입의 장점은 그 젊은 패기와 열정에 있겠지만, 종종 1년도 채 되지 않았는데 그것을 넘어 요령을 피우려는 게 보일 때 이렇게 말하곤 했다.     


“못해도 두세 사이클은 돌아야 업무에 완전히 적응하니 요령 피우지 말아라.”     


너무 꼰대 같은가.

그저 현실적인 얘기를 하기 전에 빌드 업을 했을 뿐이다. 좀 더 들어보시라.     


웬만한 회사에서 보통 신입사원들은 위에서 말한 두세 사이클을 돌면 어느새 대리‧전임연구원급 직원이 되어있다. 직급제를 없앤 몇몇 대기업처럼 일부 공기업에서도 직급제를 없애고 연구원‧행정원과 팀장 정도만 구성되어 있다지만 대체로 3년 차 정도가 되면 소속 팀 내에서는 어느 정도 존재감을 나타내고 있을 것이다. 군대로 치면 이등병 때 열심히 갈굼도 받고 배우며 잘 커서 아직 조금 부족하긴 해도 두루 써먹기 좋은… 일 잘하는 일병이랄까.

그렇다. 3년 차는 아직 그 정도 레벨이다. 한 사이클, 두 사이클 도는 동안 혼나기도 많이 혼나고 칭찬도 받고 책임감도 생기고, 이제 회사 내에서 스스로 할 줄 아는 일도 생기는 짬밥이자 신입 후배가 들어오면 한창 어깨에 힘 좀 들어갈 레벨이다.

하지만! 분명 그 3년이라는 시간 동안 안 좋은 꼴, 못 볼 꼴 다 보고 겪으면서 성숙해지기 시작하는 시기이기도 하다. 일 때문이든 사람 때문이든 3년이면 충분히 많이 울고 웃고 했을게다. 빨리 취업한 사람은 이제 막 30대, 아무리 늦어도 30대 중반에는 자신의 위치를 깨닫게 된다. 사회생활에서 성숙함은 삼십 대 초반, 그리고 삼 년 차, 딱 그 정도에 시작되는 것 같다.     


내가 하고자 하는 말은 이제 시작이다. 같이 입사한 동기 중에서도 3년 후에는 각자 다른 고민을 하고 있을 것이다. 처음엔 누구나 ‘내 가치를 증명해 보여야지’, ‘열심히 해서 팀장님께 칭찬받아야지’, ‘그냥 적당히 하고 워라밸 지키면서 오래 다니기나 해야지’ 이런 생각들을 할 것이다.

요즘 MZ 세대라면 어떤 생각을 가장 많이 할지 궁금하기도 하다. 80년대생이라 M 세대에 끼워주기는 하지만, 사실 Z 세대 분들은 편하게 접근하기 어려워 그들의 생각을 이해하기가 쉽지 않다. 어쨌든 인간은 누구나 장점보다는 단점에 끌리게 되어있다. 편한 것보다는 불편한 것의 자극이 더 크다. 회사에서의 장점을 느끼는 부분들은 곧 ‘혜택’이자 ‘편함’이다. 그게 복지든 연봉이든 사내 문화든 근태든. 만족하는 부분에 편함을 느끼고, 혜택이라 여기며, 회사의 장점이라 생각한다. 하지만 그런 장점은 곧 자기 삶에 금방 받아들이고 ‘당연한 것’으로 느끼게 된다. 즉, 처음엔 좋다고 생각했던 부분들에 금방 익숙해져 버린다. 사람은 적응의 동물이기도 하다.

회사 내에서 비밀은 없고, 모니터 작업 표시줄의 단톡방이나 메신저 창은 온갖 사내 가십거리로 종일 깜박거린다. 장점을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인 당신은 곧 ‘불편함’이라는 자극을 찾는다. A팀의 김 과장과 B팀의 박 대리가 사내 연애를 한다든지, 어떤 팀장이 동기에게 폭언과 갑질을 했다든지, 성과급을 어떤 부서가 200%를 받고 어떤 부서가 100%를 받았는지, 인사 시즌에 누가 승진하고 누가 이동하는지, 아니면 동기 중 누구 한 명이 퇴사를 고민하고 있다든지…

위에서 누구나 처음에 하는 고민에 대해 3가지 예시를 들었다.     


A : 내 가치를 증명해 보여야지.

B : 열심히 해서 팀장님께 칭찬받아야지.

C : 그냥 적당히 하고 워라밸 지키면서 오래 다니기나 해야지.     


위 3명 중 과연 어떤 사람이 퇴사나 이직을 고민하고 있을까?

대한민국 교육 과정의 객관식에 길들여진 우리는 뭔가 뻔해 보이는 보기가 하나 눈에 들어올 것이다.     


첫 직장을 장교라는 군인 공무원 신분으로 시작했을 때 나는 A 유형이었다. 이순신 장군이나 김영옥 대령처럼 훌륭한 군인이 되고 싶었고, 누구보다 솔선수범하며 병사들의 존경을 받는 그런 장교가 되고 싶었다.

타이슨이 말했다. ‘누구나 그럴듯한 계획을 갖고 있다. 처맞기 전에는.’

‘소위’ 계급이라 봤자 겨우 스물넷이다. 그렇다. 이십 대 후반의 취준생분들이나 삼십 대 이직을 준비하고 계신 분들에게는 스물넷은 ‘애기’다. 혈기 왕성하고 열정과 패기는 넘치지만, 아직 현실 감각과 경험이 부족한 나이다. 군 생활을 이상적으로 바라보기만 했던 스물네 살 나의 계획은, 꽤 많이 처맞았다. (총보다 삽을 더 많이 잡는 군대의 현실 등등…)

하지만 성격은 변해도 성향은 변하지 않는다고 했던가. 전역 이후 보험회사, 중견 제조기업, 은행 등 4번의 이직을 거쳐 서른 살에 공공기관에 입사할 때도 나는 아직 A나 B 유형이었다.      


자, 다시 돌아가서. 아까의 질문에 퇴사를 고민한 사람은 누구였을까?

요즘 Z 세대 분들은 A나 B라고 답하셨을지도 모르겠지만, 내가 학생이던 시절의 학생이었다면 C를 선택했을 가능성이 높다. 내가 겪은 세대는 그랬다. 워라밸이라는 단어도 없었으니까.

어쨌든 군과 공공기관. 두 곳의 공직사회를 거친 내 경험상 3년 차에 퇴사나 이직을 고민하는 사람은 의외로 A나 B였다. 동기 중에 임관하기 전 말뚝을 박겠다, 장군을 달겠다고 장담하던 녀석들은 5년쯤 지나서 보니 나를 포함해 하나같이 다 전역했다. 30% 정도만 아직 군 생활을 하고 있는데, 오히려 빨리 전역한 후 사회에 나오겠다던 친구들이 대부분이다.

공공기관에 같이 입사한 동기들도 그랬고, 후배 중 3년 차쯤에 퇴사한 직원들을 보면 대체로 A, B 유형이 많았다. 굳이 공직사회만 보지 않더라도 현재 우리 사회가 비슷한 분위기로 흘러가는 것 같다.

대체 왜 이럴까?

상식적으로 보면 A나 B가 더 열정적이고 야근도 많이 하면서 자기 일에 책임감을 갖고, 최선을 다하면서 동기들 사이에서 먼저 승진할 것처럼 보인다. 가정에서, 학교에서, 사회에서 그렇게 듣고, 배우며 자라왔다.

그런데 결과는 왜 이렇게 나오는 것일까? 왜 어른들이 말한 사회와 우리가 느끼는 현실이 다른 것일까?

8년이라는, 내 인생에서 어딘가에 가장 오래 소속되어 다녔던 전 직장을 그만둔 나는 그 이유에 대한 답을 찾기 시작했다. 공무원들의 퇴사율에 관련된 국회나 인사처 자료들, 공공기관 정보 조회 서비스, 각종 언론 기사들의 데이터. 그리고 나와 내 주변의 공공기관에 다니는 지인들의 케이스를 종합해 본 결과 신의 직장이라 불리는 공직사회에서 사람들이 자꾸 떠나는 이유는 크게 2가지로 나타났다. 서문에서 제시했듯이 ‘안정성’과 ‘워라밸’이다.     


우선 다시 돌아와 현실을 보자. 전 직장은 2000년대 초반에 산업부에서 만든 기관이었다. 2000년대에 만들어졌다면 공공기관 세계에서는 아직 청소년 정도 되는 어린 기관이다. 당시 신생 회사였던 전 직장은 공무원들과 함께 일했던 창립 멤버 10여 명을 중심으로 사람들을 초빙했다. 신생 회사가 좋은 회사가 되느냐 마느냐는 이 시기에 달렸다.

회사가 말 그대로 ‘회사 구실’을 하려면 사람이 필요하다. 어디에나 있는 회계, 총무, 인사, 경영 등의 경영지원 부서부터 영업, 판매, 생산, 품질 등의 현장 부서들까지. 물론 대체로 비영리기관인 공공기관의 현장 부서는 일반 사기업과는 다르지만, 지원 부서든 현장 부서든 사람이 필요한 건 당연한 일이다.

나는 창립 초기에 필요한 이 사람들을 어떻게 끌어왔는지가 회사의 20~30년 이상을 결정한다고 본다. 그리고 나의 전 직장은 이 과정에서 큰 실수를 했다.

능력과 경험을 보고 초빙했어야 했을 직원들을 창립 멤버들의 인맥에 의존해 채용한 것이다. 창립 멤버들 자체의 학력이나 경험은 많았을지 모르겠으나 그들이 데려온 사람들은 그렇지 않았다. 뒤에 더 자세히 설명하겠지만 지금 그 회사의 차장, 부장급(전 직장 인사제도 기준 책임, 수석급 연구원이다. 이해를 돕기 위해 일반 회사의 직급으로 설명한다.) 직책을 대부분 그들이 차지하고 있다.

그들이 창립 초기에 많은 고생과 노력을 했을지는 모르겠으나, 현재의 젊은 직원들이 보기에는 ‘한때 고생하고, 오래 편하게 노는’ 선배들이었을 뿐이다. 그리고 그들이 팀장이 되고, 차장과 부장으로 승진하며 사내 문화를 주도했다. 그들의 밑에서 자란 직원들이 이제 팀장이 되고 있는데 젊었을 때 받아들인 문화 덕분에 정말 끔찍하게 경직되고 보수적인 회사가 되어버렸다. 법률이나 정치, 예산 등의 한계에 묶여있는 공공기관의 특성을 모르는 것은 아니다. 허나, 그렇다고 그 한계를 핑계로 변화를 막는 것은 조직과 사람의 문제다.     


전 직장에서 15년 이상 근속한 선배들을 비교해 보았다.

대체로 주요 보직을 꿰차거나 오랫동안 팀장 자리를 유지하고 있는 사람들은 C가 압도적으로 많았다. 그 자리에 앉아있는 수십 명의 사람 중에서 적극적으로 변화를 모색하거나 혁신적인 일을 했던 사람은 1~2분 정도밖에 생각나지 않는다. C 유형으로 오래 일하면, 햄스터가 쳇바퀴 돌 듯 일년내내 원래 해왔던 일들만 하게 된다. 그들이 원래 A나 B였는데 C로 변한 것인지, 원래 C였는지는 나는 알지 못한다. 어쨌든 전 직장에서 팀장 이상 직급을 차지한 사람의 90% 이상은 C였다.

B 유형은 어쩌면 가장 순수한 사람들이다. 팀장 등 주요 보직까지 올라가는 데는 조금 더 시간이 걸릴지는 몰라도 회사를 오래 다니는 데 큰 무리는 없다. 그리고 대부분 팀 차석, 부서 내 주요 실무를 총괄하는 ‘유능한 실무자’로서 나름의 존재감을 갖고 있다.

그렇다면 A는 어땠을까? 어느 회사, 어느 팀이든 진상은 존재한다. 진상 불변의 법칙이다. 반면 어디든 에이스도 있다. A 유형들은 대체로 불편한 것은 고치면서 좀 더 나은 조직을 위해 노력하는 사람들이다. 입사 3년 차, 5년 차, 7년 차가 지나면서 내가 잘 따르고, 존경하고, 많이 배웠던 A 선배들은 모두 회사를 떠났다. 외부인 시점에서 지금의 그 회사를 보면 A 유형의 선후배 중 80% 이상은 더 좋은 곳으로 이직했고 지금도 하고 있다. 그리고 결국은 나도 떠났다.     


회사라는 조직에서 위로 갈수록 승진과 보직 발령의 기회가 줄어드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다. A는 대체로 새로운 것을 만들고 다른 것을 시도하고, 잘못된 일에 반대표를 던진다. 어쩌면 회사 생활에서는 윗분의 말을 잘 듣고 안전한 길을 걷는 C가 더 유리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위에서 말한 것처럼 당신이 다니고 있는 회사에서 오래된 선배들이 C가 많다면, 그게 보이는 짬이 되었다면, 당신이 A든 B든 C든, 더 늦기 전에 다른 곳으로 떠나라고 말하고 싶다. 위로 갈수록 C가 많고 C가 더 오래 살아남는 조직은 당장 눈에 보이진 않아도 점점 퇴화하며, 결국엔 그 누구도 다니기 힘든 고통스러운 직장이 되어 버린다.

 참고로 전 직장은 한 달에 2~3명씩 퇴사를 하고 일 년에 수십명씩 채용하고 있다. 즉, 들어온 만큼 나가고, 나간 만큼 들어온다. 채용을 너무 많이 하는 회사라면 최종 합격을 했어도 조금 더 고려해 보라. 

‘크레딧잡’, ‘원티드랩’ 등의 기업정보 조회 사이트에서 그 기업의 입‧퇴사자 비율과 현황을 확인할 수 있다.     


내가 너무 부정적으로만 썼는가? 

나의 전 직장은 누가 봐도, 그리고 직원 본인들도 알고 있는 ‘좋지 않은 회사’였다. 그리고 내가 인터뷰한 동종업계 지인들도 대체로 자기 회사에 대한 평이 좋지 않았다. 그래서 진짜 만족하고 오래 다니는 분을 아직 못 봐서 그런 건지도 모르겠다.

어쨌든 나는 안타까웠다. 남의 돈을 버는데 백 퍼센트 만족하고 다닐 회사가 존재하진 않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연봉, 복지, 업무강도, 사내 문화 등 최대한 자신에게 맞는 회사를 맞춰서 입사한다면 서문 초기에 적었던 기사들이 사회 이슈가 될 상황은 없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으로 이 글을 적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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