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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 담 Apr 05. 2024

공공기관 복지와 근무강도

복지     


 결론부터 말하자면 괜찮은 편이다. 웬만하면 연‧월차, 조퇴 등은 업무에 해가 되지 않는다면 딱히 눈치 볼 일은 없다. 만나본 타 기관 사람들에게서 이런 문제로 고민하는 사람은 본 적이 없다. 제조업과 은행에서 근무했을 때 말 꺼내기도 눈치 보였던 것과는 정말 분위기부터 다르다(은행은 서비스업이니 창구에 한 명만 빠져도 다른 사람들이 그만큼 고생을 떠안아서 눈치 볼 수밖에 없긴 하다). 업무 펑크만 안 내면 ‘저 일이 있어서 내일 연차 좀 쓸게요.’ 해도 ‘어, 그래.’ 하는 경우가 많다(가끔 ‘무슨 일인데?’라고 묻는 분들도 있지만 이건 어디든 케바케다). 어쨌든 눈치 안 보고 연차, 조퇴 쓸 수 있는 것도 복지라면 복지다.

 유연 근무제, 탄력 근무제 같은 비교적 최근에 생긴 근태 관련 복지는 받아들이는 속도는 느릴지언정 많이 도입된 추세다. 전 직장에서는 제한적으로 시행해서 나는 누리지 못했지만, 겪어본 직원들의 만족도도 높고 업무 효율성으로는 좋은 제도라고 생각한다. 물론 시간적 자유에 대한 업무 책임은 본인의 몫이다.

 육아휴직은 명목상으로는 자유롭게 쓰는 편이다. 여직원들은 100%라고 봐도 될 것 같은데 남직원들은 아직 눈치 보는 경향이 있다. 이는 공공기관의 문제가 아닌 우리나라 사회 전체적인 이유인 것이 더 크니 시대의 흐름에 따라 자연스럽게 늘어날 것이라 본다. 사실 사회적 문제를 떠나 휴직 수당이 나라에서 지원되어도 엄연히 ‘무급휴직’이기에 경제적 이유로 안 쓰는 것도 있다. 또한 승진을 앞둔 경우 등 커리어와 관련됐다면 쓰기 어려운 게 사실이다. 보통 육아휴직자는 근무 성적 평정에서 제외되거나 B등급으로 고정된 경우가 많은데 자신의 근무 성적이 좋다면 고민될 수밖에 없다.


 여가부에서 인증하고 있는 ‘가족친화 인증제도’라는 것도 있다. 이 인증을 받은 기관은 조금 더 확대된 복지 제도가 마련되어 있다고 보면 된다. 여성 보건휴직, 육아휴직, 가족돌봄휴직, 직장보육시설, 임산부 근로 보호, 배우자 출산휴가 등 많은 부분을 보장하고 있다. 

 그 외 근로기준법, 고용보험법, 남녀고용평등과 일‧가정 양립지원에 관한 법 등 법으로 보장되고 나라에서 적극적으로 추진하는 복지는 거의 웬만하면 혜택을 받을 수 있다고 보면 된다.

 다만 이런 제도들을 실제 사용할 수 있는가에 대한 질문은 역시 본인의 선택과 사내 문화에 달렸다. 어쨌든 법적으로 보장된 제도를 쓰겠다는데 억지로 막는 사람은 없다. 본인의 선택이다.

 노조가 있는지도 살펴보자. 회사에 노조가 있다면 복지 문화가 많이 발달해 있을 수 있다. 노조는 조합원들을 대신해 사측과 단체협약, 임금협약을 진행한다. 다른 기관 노조를 통해 정보도 많이 얻고 좋은 복지 제도들을 도입하는 역할을 하고 있으니 입사하고자 하는 회사에 노조가 있는지 확인해 보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공무원 노조도 있는 세상인데 노조가 있는 것과 없는 것은 차이가 크다. 민주노총의 공공연구노조, 한국노총의 공공연맹, 공공사회노조 등의 홈페이지에 들어가면 알아볼 수 있다.



근무 강도     


 필자는 여름휴가를 항상 제주도로 갔다. 전 직장을 다녔던 8년 동안 매년 그래왔다. 보통 혼자 가서 올레길이나 오름만 다니면서 힐링하러 간 것이었으니 숙소는 거의 게스트하우스였다. 그런데 무슨 인연인지 갈 때마다 대기업 사람들을 자주 만났다. 비성수기인 9월에 가는데도 삼성, LG 다니는 직원들을 거의 매년 마주쳤다. 게스트하우스라면 여행을 마친 저녁의 숙소에서 처음 만난 사람들과 두런두런 술 한잔 기울이며 대화를 나누는 재미가 있잖은가. 그럴 때마다 대기업이라고 마냥 좋은 것도 아니고 이 사람들도 참 힘들겠다는 생각을 많이 하게 됐다.

 특히 엔지니어들이 많았는데 ‘받는 만큼 일한다’는 느낌이었다. 신제품 출시를 앞둔 몇 달 동안 해 뜬 것을 본 적이 없다던 동갑내기 A는 40살 전에 퇴사하고 제주도로 내려오는 것이 목표였다. 돈은 많이 받아도 돈 쓸 시간이 없었을 그는 6년이 지난 지금 제주도에서 게스트하우스와 식당을 운영하며 지내고 있다. SNS로나마 엿보는 그의 삶은 영혼이 없어 보이던 그때와는 달리 생기가 넘쳐 보인다.

 워라밸에 대한 주제로 앞선 챕터에서 짤막하게 적었듯이 우리 회사로 매년 몇 명씩 삼성, LG 출신들이 이직을 해왔다. 연봉이 반토막 넘게 나는데도 워라밸을 찾아오는 그들의 이야기를 듣고 A의 말이 그제야 공감되었다.

 물론 모든 사람이 그런 건 아니겠지만 가끔은 돈보다 중요한 것도 있는 법이다. 5~10년 정도 일하면서 크든 작든 집 한 채는 해놨을 테니 남은 삶은 편하게 살고 싶다는 말도 이해가 된다.     


 다만 공공기관에서 그들이 원하는 워라밸을 찾았는가에 대한 질문의 답은 쉽게 하지 못하겠다. 

 공공기관도 당연히 바쁠 땐 바쁘다. 대기업처럼 수백, 수천의 직원들이 어쩌면 회사 명운이 걸렸을지도 모를 큰 프로젝트에 투입되어 엄청난 긴장이나 압박감을 느끼는 것과 직접적으로 비교하긴 어렵다. 

 행정직이었던 나는 여느 회사 행정직들이 그렇듯 연말, 연초가 정신없었다. 경영기획, 예산, 재무회계, 인사, 감사 등 모든 행정 파트가 1년간 쌓인 데이터를 정리하고 지출을 마감하고 내년도 운영 계획을 마련하는 시기다.

 사업을 수행하는 연구직이나 기술직들은 보통 2~4월이 가장 바쁘다. 정부 사업은 보통 1~2월에 사업 공고를 내고 3~4월에 신청을 마감한다. 새로운 사업을 따내기 위해 그 두세달 동안은 부서, 팀 전체가 달려들고 야근을 밥 먹듯이 한다. 시간과의 싸움이기도 하고, 같은 공고에 지원하는 다른 기관이나 대학 연구진들이 많아 그 경쟁을 뚫어야 한다. 규모가 큰 예타 사업 같은 경우 내로라하는 국내 연구진들도 한두 번은 탈락하기 일쑤이니 오타 하나, 숫자 하나에도 민감해진다.

 신규 사업을 하지 않더라도 전체 사업 기간이 짧으면 2년, 길면 5년이 넘는 기존에 하던 사업을 연차별로 보고서를 작성한다. 이 보고서에 담긴 1년간의 사업 성과에 따라 다음 해 예산이 깎일 수도 있고 인센티브를 받을 수도 있기 때문에 이 또한 쉽지 않다. 그 어려운 예산을 받아놓고 제대로 사업을 수행하지 않아서 ‘사업 중단’, ‘불성실수행’, ‘사업 실패’ 등의 평가를 받을 경우, 그 기관은 향후 수년간 정부 사업에 참여조차 하지 못할 수도 있다(일 못하고 놀아야 된다는 뜻이다). 희박하긴 하지만 아예 없는 일은 아니다.     

 

 직군에 상관없이 힘들고 귀찮은 시즌도 있다. 매년 가을에 실시되는 국정감사 기간이다. 국회의원의 가장 막강한 권한이라고도 불린다. 거의 10월에 열리는 경우가 많은데 행정직들이 가장 힘들지만, 사업성과 내용을 작성하는 직군들도 꽤 피곤하다. 정부에서도 장관들이 나서서 해당 위원회의 국회의원들 앞에서 보고하는 자리이다. 기관에서도 사장, 원장 등 기관장들이 보고하게 되고 정부에 비하면 몇 시간 만에 끝날 수도 있지만 운 나쁘면 새벽까지도 간다. 어떤 기관이 큰 사고를 내면 그 기관이 현장 감사장이 되기도 한다. 그야말로 먼지 나도록 탈탈 털릴 수도 있는 중요한 일이니 귀찮고 피곤해도 다들 군소리 없이 보고서를 작성한다. 지방 공공기관은 보통 해당 지자체 의회의 감사를 받는데 국정감사법(국정감사 및 조사에 관한 법률)에 따라 감사 대상 기관이 될 경우 국정감사장에도 불려 갈 수 있다.

 ‘문제가 아니라고 하면 문제가 아닌데, 또 문제라고 하면 얼마든지 문제로 만들 수 있다.’라는 말이 있다. 국감이 무섭고 싫은 이유는 아무리 보고서를 훌륭하게 작성하고 최선을 다해 운영했더라도 어떻게든 지적 거리가 나오는 곳이기 때문이다. 국감은 국회의원이 자기 권한과 성과를 가장 돋보일 수 있는 자리다. 공공기관이 물론 공공성과 민주성을 잘 지키고, 제아무리 잘해도 욕먹고 못해도 욕먹는 곳이라지만, 현장을 잘 모르고 큰 잘못을 한 것처럼 문제를 만드는 것만큼 억울한 일도 없다.

 그 외 의무적으로 제출하는 감사 자료 외에도 의원실로부터 수시로 사전/사후 요구자료가 올 수 있다. 또한 감사 일정이 끝난 후에도 ‘시정’, ‘요구’ 등의 후속 조치가 거의 항상 생기기 때문에 실제 체감은 2달 이상으로 느껴지기도 한다.     


 담당 공무원을 잘 만나는 것도 복이라는 이야기는 앞에서 말했다. 내 업무 잘 마쳤는데 퇴근 전에 오는 전화가 당신의 저녁과 주말을 언제든 앗아갈 수 있다. 연구/기술직보다는 행정직, 주니어 직급보다는 과장/선임 이상의 직급이 더 많이 겪을 일이긴 하지만, 방심하진 말자.     

 근무 강도와 워라밸은 어떤 기관, 어떤 업무, 당신의 업무 능력이나 상사의 스타일에 따라 다를 일이다. 즉, 사람 일하는 곳이니 여느 회사와 큰 차이는 없을 거라는 의견이다. 필자도 바쁜 시즌엔 새벽에 퇴근도 많이 했고 밤을 새운 적도 꽤 된다.

 ‘칼퇴근 후의 저녁이 있는 삶’은 공공기관이라고 당연한 일이 아니다.


(출처 : 국회 ‘2023년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 국정감사 계획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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