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년전쯤 고민의 시작점에 대해 이야기를 해보려 한다.
한국적 프로젝트가 어떻게 시작되었는지 여러 상황들이 있는데,
그 중에서 하나의 시작점이라 공유해본다.
지금은 어느 정도 방향이 보이지만, 시작은 아주 사소한 계기였기 때문이다.
지금으로부터 3년 전, 이맘때쯤 2대째 대대로 단청하시는 장인을 찾아가 단청을 배우기 시작했다.
초창기에는 붓을 드는 시간보다 이야기를 듣는 시간이 더 길었던 수업이었다.
단청을 배우다 보니 자연스럽게 건축사 수업까지 이어졌고,
그때 처음으로 ‘건축을 통해 자연을 대하는 태도’라는 말을 자주 듣게 됐다.
자연환경이 다르니, 자연을 바라보는 관점도 다를 수밖에 없다는 설명이었다.
한국은 건물을 짓고 난 뒤, 그 창밖의 풍경까지 자연의 일부로 생각하는 성향이 있고,
중국은 산을 깎아내고 그 위에 건축을 올리는 경우가 많으며,
일본은 자연재해가 잦다 보니 작고 소유 가능한 구조를 선호하게 되었다고 했다.
그 차이는 지붕(처마 선모양)에서 가장 분명하게 드러났다.
한국, 중국, 일본의 처마 곡선이 서로 다르다는 사실이 유난히 신기하게 다가왔다.
같은 동아시아인데도, 곡선의 태도와 방향이 이렇게 다를 수 있다는 게.
광복절에 서대문형무소를 찾았던 날도 기억난다.
독립운동가들을 기리고 관련 행사를 관장하는 바로 옆 건물의 처마가
일본식 곡선을 하고 있었다.(아마도 그 시절에 지었으려나? 아니면 그 이후에 지었는데도 그러한건가? 알수는 없었다.)
어쨋든 설명하기 어려운 어색함과 아이러니함이 오래 남았다.
그때 처음으로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나는 우리 것에 대해 정말 아무것도 모르고 살아왔구나.’
그 이후로 전통과 한국적인 것에 관한 책들을 한동안 읽었다.
그 즈음, Open AI가 등장하면서 인공지능 이미지 생성이 갑자기 대세가 되었다.
특별한 목적은 없었다.
새해 인사에 쓸 이미지를 만들어보고 싶었을 뿐이었다.
“귀엽고 작은 검은 토끼, 한국 배경,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당시 미드저니로 제작했었는데 아무래도 데이터가 그러했나보다.
그렇게 입력했더니 난데없이 초가집이 등장했다.
토끼와 새해라는 데이터가 만나면 그럴 수도 있겠다고,
그땐 그냥 고개를 끄덕이고 넘어갔다.
그런데 여러 번 이미지를 생성하다 보니 묘한 패턴이 보이기 시작했다.
‘Korean’이라는 키워드를 넣어도
배경은 중국풍이나 일본풍인 경우가 훨씬 많았다.
색감도, 처마의 형태도 어딘가 어긋나 있었다.
외국인의 눈에는 큰 차이가 없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실 한국인인 우리네들도 잘 모르긴 마찬가지지만)
우리가 유럽 사람들을 잘 구분하지 못하고,
동남아 국가의 전통 양식을 하나로 묶어버리듯이.
당시에도 도대체 한국적인게 뭘까? 일본과 중국과 다른 한국적이란게? 하는 의문이 많았던거 같다.
어쨋든 그 무렵, 2회차 인생을 생각하던 시기이기도 했다.
과거를 돌아보며 본연과 본질을 고민하다 보니
결국 개인의 경쟁력이라는 건
각자가 오래 붙잡고 있었던 관심사의 깊이에서 시작된다는 생각에 닿았다.
특히 해외에서 한국에 대한 관심이 유난히 높아진 시점이었다.
그래서 더더욱,
‘한국적인 것을 한국적인 언어로 정리해보고 싶다’는 마음이 생겼다.
당시에는 여러 가능성을 막연하게 떠올리기만 했다.
작품, 오브제, 디자인, 그리고 언젠가는 인공지능까지.
어디까지 갈 수 있을지는 알 수 없었고,
다만 오래 이어질 수 있는 방식이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3년이 지난 지금은 그 고민을 실행으로 옮기고 있는 단계에 와 있다.
수익을 앞세운 구조가 아니라, 지속적으로 작업을 하고
적용해보면서 작품 자체의 판매와 작품을 활용한 선물의 확산이 늘고 있다.
혼자만 이런 고민을 하고 개선해 나가기에는 다소 버겁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연히 한글날을 지나는 자정 즈음 한국적 프로젝트를 시작하고
만나서 이야기 나누던 중에 전시를 열게 되었고, 작업을 기록하고,
한국적인 요소를 하나씩 해체하고 다시 엮어보는 과정 자체를
계속 이어갈 수 있는 구조로 말이다.
한국적 프로젝트는 완성된 답을 제시하기보다는
‘이렇게도 해볼 수 있다’는 실험에 가까운 형태다.
한글, 건축, 단청, 음식, 정서 같은 것들이
기술과 만나도 한국적 본연의 전통을 잃지 않도록 하는 시도.
참으로 많은 작가님들이 함께해 주고 계시고 십시일반
Collaboration 이 아닌 품앗이 모드로 함께해 주고 계신다.
다행스러운 것은 3년 전에는 질문만 있었고,
2년 전에는 방향을 더듬고 있었고,
지금은 그 질문들을 조심스럽게 내밀 수 있게 되었다.
이제 막 시작하여 소소하게 도전 진행 중이다.
그 결과가 어떻게 구현될지 너무나 궁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