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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Oh My Today Nov 16. 2019

육아 휴직의 가성비

계란을 바꾸다

쉴 수 있어서 다행이다.


출산휴가 3개월 후에 주어지는 공식적인 육아 휴직 가능 기간은 2년이다. 이 2년 중에 얼마나 휴직을 사용하는지는 90% 회사의 상황과 10% 개인의 상황에 달려 있다. 그래서 임신하고 나면 새삼 왜 다들 취업 재수까지 불사하고 그렇게들 어떤 회사에 가고 싶어 했는지 새삼 이해하게 된다. 임신 단축 근무, 육아 휴직 2년, 사내 보육시설 이 3박자를 갖춘 회사는 장담컨대 입사 경쟁률이 어마어마할 거다. 부럽다 친구야.

2년까지는 아니지만 다행히, 내가 다니는 회사는 1년 쉬는데 큰 무리가 없어서 휴직계를 내는 게 어렵지는 않았다. 문제는 복귀 시점이었는데 똑같은 1년 휴직이어도 복귀 시점에 따라서 월급이 달라지게 되기 때문이다. 때문에 회사 내의 선배 워킹맘들한테 여러 꿀팁을 전수받는 것이 필수다.


9월에 복귀하면 추석 상여금 나오잖아.


9월 추석 연휴 3일 전에 복귀하라고 베스트 시점을 알려준 것도 4살 아기를 키우는 옆 팀 워킹맘이었다.

출산휴가의 경우 최대한 일 할 수 있을 만큼 일하고 휴가를 들어가는 사람과 예정일에 앞서서 휴가를 당겨서 쓰는 사람으로 나뉜다. 전자의 경우 아기와 함께하는 시간을 최대한 벌 수 있는 대신 만삭 몸을 이끌고 출퇴근하는 부담이 있다. 후자는 태교에 집중하면서 마지막으로 혼자만의 시간을 누릴 수 있는 대신 아기가 돌 전에 복귀해야 한다. 많은 조언을 바탕으로 나는 예정일 2주 전까지 일하고 출산 휴가를 들어가기로 결정했다. 1년 동안 월급이 들어오지 않는 걸 고려하면 하루라도 더 일하는 게 좋을 거라고 판단해서였다. 마찬가지로 원래 1년 휴직하면 11월 복귀인데 9월 말로 옮긴 것도 1년 간의 자린고비 예감 때문이다.


한 사람 월급만으로 1년을 버틸 수 있을까?


임신 기간 내내 엑셀을 참 많이도 썼다. 업무로는 인수인계 파일을 만들었고 개인적으로는 출산, 육아용품 리스트도 정리했다. 제일 많이 들여다본 파일은 우리 가정 현금 흐름이었는데, 월급 없이 보낼 1년에 대한 첫 번째 준비였다. 현재의 흐름을 확인하는 데는 얼마 걸리지 않았다. 수입은 두 사람의 월급이 전부였고 지출은 카드 내역서로 대부분 확인 가능했기 때문이다. 정리된 현금 흐름을 유지할 항목과 삭제 그러니까 앞으로 없앨 항목으로 나누어 봤다. 고정비의 가장 큰 항목은 주거비(월세, 관리비)와 보험료(자동차, 실비, 연금 모두 포함)였다. 이 두 가지는 휴직 기간에도 변함없이 나갈 테니 Keep. 이 밖에 고정비에 속하는 통신비는 주로 집에 있을 테니 데이터 사용량이 낮은 요금제로 바꾸고 콘텐츠 이용료 중에서 클라우드 사용료 등 자잘하게 나가고 있던 부분은 정리했다. 물론 휴직 시작 후에 왓 차와 유튜브 프리미엄을 결제하면서 콘텐츠 이용 항목은 오히려 전보다 크게 상승했다. 고정비를 빼면 절대적으로 식비 비중이 높았다. 매주 2~3회 쿠팡과 이마트로 주문하는 식료품과 주말에 하는 외식, 늘 들리는 스타벅스 커피값이 이렇게나 컸다. 내가 진짜 먹고살려고 일해서 월급 타고 있었구나 실감했다. 항목을 늘어놓고 이리저리 고민해 봐도 크게 줄일 수 있는 부분이 없었다. 매년 가는 여행이나 가끔씩 계절 바뀔 때 구입하는 의류비를 아예 없앤다고 해도 매월 나가는 지출액이 크게 바뀌지 않았다. 나가는 돈은 같은 데 들어오는 돈만 절반이 되는 거네. 아니다. 한 사람의 가족이 더 늘어나는 건데, 나가는 돈은 더 커지겠구나. 결국 어떻게든 될 테니 미리 걱정하지 말자는 남편의 말에도 안심이 되지 않았다.


15개 동물복지 유정란 대신 30개 신선 계란 한 판


휴직 기간 동안 집에서 할 수 있는 일이 있을까 찾아봤지만 마땅치 않았다.

일단 그럴 시간이 나지 않을 거야

아기를 돌보려고 월급 대신 휴직을 선택하면서 동시에 생활비가 무서워서 돈 벌 생각을 하고 있다. 두 마리 토끼를 쫓으면 어떻게 되지? 결국 내가 쫓는 게 토끼인지 나인지도 모르게 된다. 회사 생활 동안 몇 번이나 경험해 왔다. 한 가지 프로젝트에 집중해서 좋은 성과를 내는 게, 두 가지 일을 동시에 하다가 하나 성공하고 나머지 실패한 것보다 결과적으로 평가는 물론이고 스스로도 만족스럽다. 돈을 벌고 싶으면 빨리 복직을 하는 편이 낫다는 판단을 내렸다. 그렇다면 남은 해결책은 하나. 절약. 덕분에 주문에서 결재까지 5분도 안 걸리는 장보는 시간이 훨씬 늘어났다. 우선 그때그때 필요한 물건을 장바구니에 담아 놓는다. 계란이 필요하면 계란으로 검색해서 제일 앞에 있는 상품을 그냥 담는다. 그러고 나서 매주 금요일마다 장바구니에 있는 항목을 쭉 살펴보고 지금 당장 필요한 게 맞는지 확인한다. 크림치즈나 발사믹 식초 같은 것들은 이때 많이 삭제당하곤 한다. 살아남은 아이템들은 개당 가격 혹은 그램 당 가격과 후기를 파악해서 가장 가성비가 높은 제품을 최종적으로 고른다.


진짜 이걸로 된 걸까?


장 볼 때면 들쑥날쑥하던 결제액이 점차 안정화됐다. 그에 맞춰서 냉장고 상태와 식단도 안정적으로 자리 잡혔고 생활비도 조금이지만 줄어들었다. 그런데 점점 조바심이 난다. 건강하게 잘 크는 아이를 보면 마음 아리게 행복하지만 쏜살 같이 지나가는 시간을 생각하면 불안해진다. 회사 동료들이 미국이랑 콘퍼런스 콜 할 시간에 아기 우유 먹이고 세탁기 돌리고, 신제품 론치 계획 세우고 대행사 미팅할 때 예방접종 캘린더 확인하고 이유식 책을 훑으면서 이렇게 1년이 지나가는 걸까. 그렇게 1년을 보낸 후에 나는 어떤 마음으로 회사에 복귀하고 어떻게 적응하게 될지 막막하다. 회사 복귀에 대한 걱정과 함께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는 또 다른 고민은 내가 과연 시간을 잘 쓰고 있는 걸까 하는 불안함이다. 육아 휴직 동안 직접 아기 옷을 만들며 SNS에 올리다가 인기가 많아져 아예 사업을 시작했다는 예전 동료, 무슨 자격증을 여러 개 따서 호봉을 높였다는 블로그 글, 조리원 퇴소 후 바로 일을 다시 시작해서 가게를 오픈한 SNS 친구. 휴직 동안 육아는 디폴트고 다들 뭔가를 하나씩은 성취하고 있는 것 같은데, 나는 계란 가격 따져보고 사는 걸로 된 건가.


나름대로 열심히 일하면서 늘 최고 성과를 받았고 특별 보너스도 받아보고 다들 부러워하는 프로젝트도 이끌어 보고 내가 만든 광고가 어디서나 보이고 회자되는 경험도 해봤다. 하지만 결국 그 모든 건 회사 안에서 가능한 것이다. 결국 타이틀이 없으면 나 혼자 개인으로 할 수 있는 일이 정말 없구나 깨달았다. 나를 위해 10년을 쉼 없이 달려왔다고 생각했는데 진짜 나에게 남겨진 건 무엇일까. 육아 휴직의 시작과 함께 1년이라는 시간에 대한 가성비 고민이 진짜로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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