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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Oh My Today Nov 16. 2019

월급과 청약 사이

십 년을 일해서 남은 건 뭔가


이제 집주인이시네요.

네. 감사합니다 ^^


옆 자리에서 들리는 산뜻한 인사말 들린다. 사인을 마친 서류를 잡수처에 내고 인사를 나눈 후 활짝 웃음을 지으며 자리를 떠나는 그녀를 한참 바라보았다. 부러워서.


58번 이시네요. 28번까지만 연락드리는데. 오셨으니 내고 가세요.


왠지 부끄러워지지만 열심히 준비한 서류 뭉치를 건넸다. 지난주 주민센터에서 한참이나 걸려 완성한 서류가 7장이다. 그녀와 나의 차이는 뭘까? 부끄러운 답답함 와 산뜻한 미소의 차이. 그녀는 당첨 자석에 나는 예비 당첨 자석에 있다. 두 글자 다를 뿐인데 현실은 한강보다 넓다. 2명 뽑는데 당첨자도 아니고 그들이 계약을 포기하면 가 뒤에 순번 대로 기회가 돌아오는 예비 당첨 중에 58번.


이직 괜히 했나. 여행 괜히 다녔나. 맛집 괜히 밝혔나


더 나은 삶, 취향이 있는 생활을 위해 열심히 일하고 돌아다니고 투자해 온 것들에 대해 올해는 후회가 파도처럼 쉴 새 없이 밀려온다. 그리고 이게 아닌데, 잘 살아온 내 지난날에 왜 후회를 해야 하나 싶어 후회에 대한 반성 또 한바탕 하게 되는 하루하루.


호갱노노를 하루에 몇 시간 씩 붙잡고 아는 동네 모르는 동네 탈탈 털어봐도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없다. 모든 청약에 무조건 신청해도 결국은 엄청난 경쟁률을 위한 들러리 정도가 내게 주어진 역할이다.


아이가 태어나면 바로 해야 하는 몇 가지 중에 아린이 집 예약이 있다. 출생 신고 후 나 역시 어린이집 예약을 하려고 했다. 그런데 곧 끝나는 임대차 계약이 떠올랐다. 내년에 나는 어디에서 살게 될까? 그리고 그 2년 후에는? 어린이집과 유치원을 2년마다 옮겨야 하는 아이. 이런 추세의 집값이면 초등학교 보낼 때까지도 내 집 장만은 어림도 없을 텐데. 그렇다고 전세로 머무르는 것도 계속 오르는 보증금과 월세를 감당하기가 녹록한 것도 아니고. 배시시 웃는 아이를 보면 무조건 따라 웃게 되고, 나날이 토실토실해지는 허벅지가 너무 귀여워서 어쩔 줄 모르다가도 한순간에 어두움이 나를 휘감는다.


우리 어디에서 살지?


맞벌이 부부라 양쪽 모두 아침 일찍 출근해야 한다. 더 싼 지역이야 찾으면 있겠지만 지금도 5시 반에 일어나는데 얼마나 더 기상 시간을 양보해야 할까. 그렇다고 퇴근시간이 빨라지기는 커녕 덩달아 뒤로 밀리기만 할 텐데. 지금도 둘 다 출근이 빨라 어린이집에 아기를 어떻게 맡기고 갈지가 고민인데.


여보, 나 그만둘까?


얼마 전 읽은 기사의 헤드라인이다. 자산 없이 부부가 버는 소득에만 의지하는 30대 가정은 정부의 신혼부부 특별 공급이나 신혼부부 타운에도 혜택을 누리기 힘들다. 2년 동안 집 값이 50프로 이상 오르고 뭘 어떻게 해도 살 수 없다는 확신이 드는데, 그렇다고 정부에서 내놓는 정책에는 늘 사각지대에 속하는 우리. 이럴 바에야 기사에서처럼 한 명이 회사를 관두고 소득을 확 줄여서 특별 공급 늘 신청하는 것이 옳은 것 아닐까. 일반만큼은 아니어도 특공도 경쟁률이 엄청나다고 하는데 그것마저 떨어지면 한 명 소득으로 언제까지 버틸 수 있을지 모르겠다.


누구에게도 도움받지 않고 20대 초부터 쉴틈 없이 일하고 아껴왔는데 늘어난 건 고민과 미래에 대한 암담함이다. 열심히 일하고 더 나은 기회를 위해 이직하고 공부할 시간에 부동산 공부하면서 팍팍 나오는 대출받아서 20대 때 집 사고 투자했으면 이런 고민 없었을 텐데. 무주택으로 같은 고민을 안고 사는 친구들과 요새 자주 하는 말이다. 회사에서도 중간 관리자로 이리 치이고 저리 치이며 바득 바득 애를 써야 하는데 그렇게 열심히 살아도 집 한 채 가진 사람이 세상에서 제일 부럽고 내가 뭘 하고 사는 건가 생각이 든다고.


나 때문에 새벽 기도 나가셔서 기도하는 엄마를 보면 속상함이 배가 된다. 다른 부모들처럼 엄마가 보태줄 수 있으면 네가 걱정 안 하고 일하고 애 키울 텐데 미안해.

왜 엄마가 미안해. 능력 없는 내가 부족한 거지.

뉴스 보니까 있는 집 애들은 회사 다닐 필요 없어서 안 다니면 소득 적다고 청약으로 좋은 아파트 당첨되고 부모들이 돈 내주고 그런단다.

어차피 다 남 이야기인걸 뭐.


애써 엄마 앞에서 웃으며 돌아섰지만 이 대화가 니와 내 아이에게도 대물림 되는 건 아닐까 잠깐 무서워졌다.

열심히 공부하고 노력해서 네가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원하는 삶을 살렴.


하지만 경제적인 여건 뒷받침되지 않으면 학자금 대출에서 시작해서 공부할 시간을 아르바이트에 양보해야 하고 꿈을 꿀 시간을 노동과 바꿔야 하는 현실을 알고 있는데, 나는 아이에게 어떤 말을 해주고 어떤 행동을 보여주고 어떤 보호막이 되어줄 수 있을까.


앞으로 몇 년이나 회사 생활을 할지 모르겠다. 남편도 나도 내 주변 친구들도 길어야 5년에서 십 년을 생각한다. 그 안에 내가 노후 준비와 유리 아이를 위한 보호막을 만들 수 있을까? 지금처럼 벌어서 월세와 관리비 그리고 생활비로 월급이 증발하는 생활을 몇 년 더 이어간다고 뭐가 달라질 수 있을까.


책상 위에 육아 책보다 부동산, 경매, 청약 책이 더 많고 날마다 뉴스를 찾아보고 카페를 들락 거려도 남는 건 불안함 뿐인 요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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