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해 동안 일어난 어떤 사실이나 사업에 대하여 해마다 한 번씩 하는 보도나 그런 간행물, '연보', 나는 이 단어를 발견하고 적잖이 신선한 감흥을 느꼈다. ‘필경사 바틀비’라는 소설 뒤에 등장하는 허먼 멜빌 작가의 연보가 그것이었다.
"안 하는 편을 택하겠습니다."라는 말을 반복하는 주인공 바틀비, 그 속에 투영된 표현하기 힘든 내 감정들을 살피던 나는 그 글 끝에 빼곡하게 기록된 작가의 긴 연보를 보게 되었다. 은둔하게 겨우 생을 이어갔던 '모비딕'으로 유명한 작가 허먼 멜빌, 그의 연보를 짚어보다가 어쩐지 바틀비의 심정을 조금 이해하게 되었다.
그런데 얼마 후 뮤지컬 ‘The Story of My Life’를 보던 나는 또 바틀비를 떠올리게 되었다. 죽음을 맞이한 친구 엘빈을 기념하는 송덕문을 쓰기 위해 그의 생애를 회상하고 찾아가는 토마스를 보다가, 바틀비를 통해 "안 하는 편을 택하겠습니다."를 연거푸 말하던 작가 허먼 멜빌의 마음이, 그 긴 연보가 자꾸만 겹쳐와 난 혼란스러웠다.
이제 와 생각해 보니 그동안 꾸준히 하던 어떤 것을 그만두겠다고 결심하게 될 때, 나는 이 ‘연보’와 비슷한 것을 떠올렸던 것 같다. 나와 나를 둘러싼 사람들의 생애를 기념하며 적었던 내 수줍던 글들이 ‘연보’라는 것에 그 의미가 닿아있다는 생각이 든 것이다. 어느 날 무심코 내 흔적을 기록하고 싶다는 생각에 나는 내가 기억하지 못하는 나에 대해 탐문한 적이 있다. 이것이 나의 연보가 되겠다 싶어서일까, ‘필경사 바틀비’에서 만난 '연보'라는 단어가 반가웠다.
나는 길다면 긴 내 인생을 축약해 그날의 심정과 사건을 써 놓았던 메모와 글들을 다시 꺼내어 들여다 보았다. 그리고 너무나 많은 실패를 발견했다. 삶을 과연 성공과 실패로 판단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스쳤다. 어쩌면 이 수많은 실패가 내 삶이 되고 내가 되었다고 할 수 있지는 않을까 하는 생각이 나를 흔들었다.
무엇인가를 크게 그만둘 결심을 할 때 나도 모르게 들었던 마음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 삶은 의미가 있다.’는 것이었다. 물론 ‘무엇’에서 ‘의미’를 찾는 것이었을까 하는 의문이 들기도 했다. 어렴풋하게 그것이 내가 나를 사랑하고 내 삶을 사랑하는 방식일지 모른다고 생각한 적이 있다.
이제는 좀 오래된 듯하다. 가수 요조가 ‘실패하는 직업’이라는 산문집을 내고 인터뷰 한 기사를 본 적이 있다. "누가 봐도 이뤄지지 않을 거 같은 일이고, 결과적으로 실패하더라도 '근사한 과정'을 만드는 것이 더 바람직하지 않나 생각해요. 그 과정을 긍정하면, 삶에서도 저를 더 사랑할 수 있죠.", "아마 사람이 죽음의 문턱에 다다랐을 때 후회하는 건, 결과보다 과정일 것"이라며, "내가 살아온 과정을 돌아보게 되면, 인생을 어떻게 살아가야 하나가 분명해질 것"이라는 내용의 기사였다.
결국 나는 요조의 이 마음처럼 내 생에서 ‘근사한 과정을 만드는 실패’를 찾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하고 생각했다. 종잡을 수 없는 다양한 삶의 파도 속에서 근사한 과정을 만드는 건 쉬운 일이 아닐 수도 있다. 내 의지와는 상관없는 일일 수도 있다. 하지만 그럼에도 '사는 일이 근사한 과정을 만들기 위해 의도적으로 만들어내는 실패'라고 생각하니, 지난한 삶이 조금 생동감 있어 보이는 것 같아 어딘가 괜찮은 느낌도 들었다.
나는 언젠가 메모해 두었던 웹드라마 ‘무빙’의 대사가 떠올랐다. 작전 실패를 걱정하는 두식에게 미현이 작전을 망친 게 처음이 아니라 괜찮다고 하자 두식이 했던 말이다.
“마음에 담아두고 있다면 작전 실패는 잊으세요. 사람이니까요. 의도된 실패는 실패가 아닙니다."
'의도된 실패는 실패가 아닙니다.'
의도된 실패가 실패가 아니라는 말을 읊조리자 그 순간 승모근과 어깨가 내려앉는 느낌이 들었다.
어떤 삶을 살고, 삶을 어떻게 바라보는지는 순전히 마음이 하는 일, 마음이 다 하는 일이란 생각이 든다. 의도된 실패를 찾는 것이 재미있는 그런 삶이라면, 그 자체로도 근사해 보일지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