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糖)

- ㅈㄷ / 중독

by 그레용

혼자서도 충분하죠. 그런데 결코 혼자일 수 없었어요.

카를로 로벨리라는 세계적 물리학자도 그의 에세이 ‘무엇도 홀로 존재하지 않는다’에서 말했죠. “우리가 보는 모든 것은 공명합니다.”라고요. 그래서일까요? 책, TV, 핸드폰, 노트북, 음악, 산책, 뭐든 그 곁에서 진정한 의미의 ‘홀로’는 결코 있을 수 없는 일이었어요. 사람 대 사람이 아니더라도 무언가에 의지하며 살아갈 수밖에 없는 존재.


떠 먹여주다시피 하는 정보과잉 시대에서는 남들이 좋다고 하는 것은 일단 눈길이 가고, 몇 번의 딴지를 걸다 보면 어느새 손길이 가 있기도 했어요. 좋아요를 누르는 손가락은 가벼웠지만, 화면을 끄고 난 뒤의 무게는 달랐어요. 하지만 이것은 이성과 취향이 협응한 결과이고 문제라고 할 것까진 없었죠.


‘사랑에 빠진 게 죄는 아니잖아!’ 유명한 드라마 대사가 떠오르네요.

사건은 이성이 손을 놓는 한순간에 벌어졌어요. 이성을 뒤흔든 주범은 스트레스였다는 것이 다수설이었죠.

긴장, 불안, 부담이라는 것들 속에서 마음은 제대로 바라보거나 판단하지 못했어요. 결국 스스로 자신을 상하게 하고, 닳게 만드는 ‘죄’를 짓게 되었죠.


스트레스의 다른 말이 있다면 무엇이 있을지 문득, 궁금해지네요.

운동 후에 찾아오는 근육통, 코앞에 닥친 시험이나 마감일 때문에 잠을 줄여가며 ‘포기하지만 말자’ 기를 쓰다가, 소금물에 절인 배추가 되어 버린 컨디션. 사실 이것들은 금세 인생 무용담이 되잖아요. 이런 스트레스는 마치 몸에 좋은 HDL 콜레스테롤이 만들어진 셈이라고 생각되거든요.


대체 무엇에 속수무책으로 사로잡혀 버렸을까요?

가장 큰 문제는, 자신도 모르게 일어났다는 것이었죠.


마음을 가불(假拂)할 수 있을까요? 이 지금을 넘기면, 다음의 나는 멀쩡할 것만 같은 착각이었나 싶어요. 좀먹는 시간, 몸을 회복하는 동안에 다시 마음이 지칠 수 있다는 것을 알지만 모른 척, 아니 모르는 상태가 맞겠네요. 어쩌면 알아도 어떻게 할 수 없는 상황이었을지도요. 어쨌든 마음과 몸은 공생(共生)이라, 병든 마음이 하는 짓은 몸에 직격탄을 던지고, 아픈 몸은 마음을 지치게 해요. 결국 그것은 알아 볼 수밖에 없는 일이 되죠.

여러 해 사계절을 보내며 점점 시들고 쪼그라져 들다가 어느 고통 속에서 깨닫게 되어요. 내가 채우고 있는 것은 채워지지 않는 공허함이나 허탈감이 아니라, ‘달콤함(糖)’ 그리고 ‘당연히 그렇게 될 일(當)’이었다는 것을요.


부당(不當)이라 느끼게 되는 상황은 어떤 순간이든 그 누구에게나 있고, 그것은 결과와 무관하게 ‘성장’이라는 이름으로 위로받게 되는 것 같았어요.

당연(當然)할 수 있는 이치를 제대로 인식하지 못한 채, 시나브로 채워버린 순간순간의 쓰디쓴 달콤함(糖)은 나의 자유와 책임의 무게를 깨닫게 했어요.


그런데, 어떤 달콤함의 대가는 개인의 문제가 아닌 국가 차원의 문제가 되는 경우가 있더군요. 최근 논란이 되는 ‘설탕세(Sugar Tax)’는 개인의 입맛과 선택에 국가의 개입이 갖는 의미를 생각하게 했어요.

내가 느낀 나의 자유와 책임의 무게가 과연 여기에 닿아있을까요?


문학에서 단맛은 종종 유혹과 몰락의 상징으로 등장하기도 해요. 단테의 「신곡」에서 죄인들이 쾌락에 취해 길을 잃듯, 어떤 달콤함은 방향을 잃게 만들어요. 어쩌면 이것은 그럴만한 일이라고도 볼 수 있죠.


그런 이유에서였을까요? 어쩐지 '딴지 거는 일' 혹은 '딴짓'을 게을리하지 말아야겠다는 결심을 하게 되었어요. 우선 너무 힘들면 시도조차 안 된다는 맹점이 있으니, 나만의 루틴을 파악해 두는 것이 필요한데요. 나의 결심이란, 최선을 다해 뉴턴의 운동 제1법칙인 관성의 법칙 그리고 중력의 법칙을 거스르는 일이었어요.


내셔널지오그래픽에서 ‘자이로스코프 작용’을 보았어요. 자전거 바퀴를 공중에 매달고 돌리면, 회전하는 바퀴가 외부 힘에 저항하며 회전축 방향을 유지하려고 하기 때문에 바퀴가 기울어지지 않는다는 얘기였어요.

나만의 회전축 방향을 유지하기 위해 저항하는 방식은 딴지를 거는 것이고 이것은 비교적 단순했어요. 몇 시간을 앉아있었다면 몇 시간은 서있거나 걷고, 한동안 정적인 상태였다면 동적인 활동을 하고, 시도해 보지 않은 것과 반대 또는 상대적인 것들로 자극을 받는 것은 삶의 균형을 유지하는 데에 무척 중요하고 소중한 순간이라는 것 그리고, 무엇을 실천해야 하는 때는 당장(當場)에도, 늦지 않다는 것을 깨달았죠. 의지의 문제이기도 하지만 그 의지가 용기를 내게 하려면 이런저런 시도가 있어야 한다는 것을요.


그리고 또 알게 된 것은 어떤 사건의 진실된 시작과 이유를 찾기란 쉽지 않다는 것과 하던 대로만 하고, 먹고, 살고, 가기에는 인생이란 돌보고 둘러볼 여지가 있다는 것이었어요. 그런데, 그러려면 엇박자로 몸을 움직일 필요가 있었어요. 우스워 보일 수 있지만, 무엇을 하던 중에 불쑥 일어서거나 고개를 좌우로 돌려버리는 식 말이에요. 나만의 타이밍을 만들어 보는 거죠. 이것은 쉽지 않기에 더 의미가 있지 않을까요?


두 발로 밟은 페달 위에서 흔들리며 균형을 잡고, 스치는 풍경과 냄새 그리고 소리에 의지하고 감각하면서, 울퉁불퉁 가보지 않은 길이라도 쉬면서 견디면서, 결과와 상관없이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갈 수 있다는 것, 그 의미를 알 것 같아요. 일, 사람, 관계, 먹고 사는 일에서 내가 어찌 할 수 없는 것이 대부분이지만, 그럼에도 거스를 수 있는 것들은 분명 존재해요. 균형을 잡기 위해 취사선택한 나만의 시도에 중독되어 보는 것도 괜찮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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