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있는 동안 떠나지 않을 불안이라는 '분홍 코끼리'를 생각합니다.
아내가 입원했습니다. 아내는 장모님 병간호에 지쳐 몸에 탈이 났습니다. 혈액 염증 수치가 높고, 열이 오르내리기를 반복합니다. 일주일 입원하고도 회복하지 못했습니다. 원인을 찾기 위해 추가로 검사를 받아야 합니다.
지난 며칠은 온통 아내 걱정으로 보냈습니다. 다행히 아내는 입원할 때보다는 많이 나아졌습니다. 돌아보니, 아내 걱정으로 내 개인적인 불안을 잊고 지냈습니다. 아내 걱정을 하기 전에는 연말 승진이나 전보와 같은 개인적인 불안이 컸습니다. 불안의 정도가 심했습니다. 아내 건강에 대한 큰 불안이 생겼기 때문에, 내 개인적인 불안은 작아졌습니다.
모든 감정과 심리적 문제에는 목적이 있다는 심리학 이론이 있습니다. 그간 내가 주로 느껴왔던 '개인적인 불안'을 감정의 목적론에 대입해 봅니다.
우선 나는 불안하기 위해 불안해야 했습니다. 불안은 생존을 위해 항상 예민하게 벼리고 있어야 하는 감정입니다(앞선 글에서 생존 본능을 자주 언급했기 때문에 설명은 생략합니다). 불안하기 위해, 불안할 거리들을 내 생각과 경험에서 애써 찾아내서 잘도 적용해 왔습니다.
다음으로 나는 인정과 사랑 욕구의 결핍을 채우기 위해 불안해야 했습니다. 내가 억울한 일을 당했다는 걸 알리려면 불안함을 자주 느끼고, 나약해져야만 인정과 사랑 혹은 관심을 받는 데 유리했습니다.
이런 목적을 갖는 개인적인 불안은 아내의 건강이라는 더 큰 불안의 등장으로 희석되었습니다.
내적 불안보다 더 큰 외적 불안이 생겨서, 어떤 경우든 인간으로서 가지고 있어야 하는 불안이라는 목적을 달성하니, 굳이 나를 괴롭히면서 내 안에서 불안을 찾을 이유가 없어졌습니다. 이 경험으로 내적 불안이 외적 불안보다 스트레스가 심하고, 자각해서 벗어나기 더 어렵다는 걸 알게 되었습니다.
불안이라는 피할 수 없는 코끼리를 느낄 수 있는 동전으로 단순화해 봅니다. 동전의 한쪽 면은 '내적 불안'입니다. 다른 한쪽 면은 '외적 불안'입니다. 전자는 '절대적 불안', 후자는 '상대적 불안'이라고 불러도 좋습니다.
절대적 불안은 상대적 불안이 크게 다가오면 느낄 겨를이 없습니다. 절대적 불안은 은근하고 지속적입니다. 상대적 불안은 갑자기 생기지만 일시적입니다.
정지우 작가는 <<우리는 글쓰기를 너무 심각하게 생각하지>>라는 책에서, 글쓰기는 '내 안의 부정적인 것들과 매일 싸워나가는 과정'이라고 표현합니다. 달리 말하면 불안이 글을 쓰게 하는 동기입니다.
>> 언젠가 글쓰기는 ‘적대’에서 시작한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그 말이 오랫동안 내 안에 남았다. 그 적대란, 꼭 실제의 그 누군가를 비판하거나 비난하는 태도라기보다는, 내 안의 부정적인 것들과 매일 싸워나가는 과정이 아닐까? 나는 늘 그 무언가와 싸우기 위해 글을 쓴다. 내 안에 있는 그것들과 싸워 이기고자 애쓰는 그 모든 과정이 글쓰기다. 나는 거의 매일 싸우고 있다. 그리고 거의 매일 조금씩 이겨내고 있다. 내가 써낸 글들은 아마도 그런 전쟁의 상흔, 혹은 기념비 같은 것들일지도 모른다. >>
외적 불안(상대적 불안)은 대개 나만의 문제가 아닙니다. 나의 의지와 무관하거나 불가항력적인 문제입니다. 외적 불안은 생겼다가 사라지기를 반복합니다.
내적 불안(절대적 불안)은 대개 나만의 문제인 경우가 많습니다. 개인의 성향이나 살아온 환경이 모두 다른 것처럼 개별적입니다. 내적 불안은 어느 정도 내 의지의 문제이지만, 없어지지 않습니다. 불안은 살아있는 동안은 사라지지 않을 인간의 숙명입니다.
내적 불안(절대적 불안)은 없애야 하는 문제가 아니라 어떻게 이용하느냐, 좀 고급스럽게 표현하자면 어떻게 '승화'하느냐의 문제입니다.
바람직한 승화의 예 중 하나는 정지우 작가가 말하는 '내 안의 부정적인 것들과 매일 싸워나가는 과정' 즉 글쓰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