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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라르마이 Oct 13. 2023

13. (책임) 운이 따르다

자랑하지 않는 이유

너의 날들이 남아 있는 한, 너의 힘도 그러하리니.  _희망의 이유(제인 구달) 


 

학부모로서 가장 긴장되었던 순간이 있었습니다. 쌍둥이가 같은 날 같은 대학교에서 대입 면접을 보게 되었습니다. 면접은 30분 동안 3가지 주제에 대해 글을 작성하고 15분 동안 발표하는 형식입니다.


면접 날 아침, 날씨는 쌀쌀했습니다. 가족이 함께 차로 면접 장소인 대학교에 갔습니다. 딸과 아들을 차례로 면접 장소로 들여보냈습니다. 저와 아내는 쌍둥이를 들여보낸 후, 아들이 지원한 학부 건물 앞에서 면접이 끝나길 기다렸습니다. 다른 학부모들도 그 주위에서 아이가 잘 해내길 바라는 간절한 마음으로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최종 면접의 경쟁률은 2대 1입니다. 이제 당락을 결정할 마지막 관문만 남았습니다. 여기까지 온 학생들은 모두 실력이 비슷합니다. 면접에서 한 두 마디 차이에로도 당락이 결정됩니다. 운이 어느 정도 작용할 수밖에 없습니다.


지난날을 돌아보면, '운이 좋았기 때문에 쌍둥이가 여기까지 온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을 새삼스럽게 하게 되는 순간이었습니다.


ㅣ 노력에 운도 따라야 한다


딸아이는 초등학교 저학년 때 수학에 대한 이해가 부족했습니다. 아내가 유일하게 딸아이를 직접 가르치려 시도했던 과목입니다. 그러나 아내는 직접 가르치길 바로 포기했습니다.


부모가 아이를 직접 지도하는 것은 득 보다 실이 크다고 앞에서 말했습니다. 부모가 지도할 때 답답한 마음을 아이에게 투사하면 아이는 주눅이 듭니다. 주눅이 들면 아이는 공부가 싫어집니다.


부모는 절대적 지지자가 되어 주는 것이 가장 큰 역할이어야 하는데, 부모가 직접 학습 지도를 하면 지지자 역할을 하기 어렵습니다. 지지자가 아니라 지시자가 됩니다. 부모가 지시자가 되면 아이와 갈등 관계에 놓입니다.


우리에게는 다행히 딸아이 이모인 처제가 도움을 주었습니다. 처제는 우리가 사는 동네에서 수학 학원 강사로 일하고 있었습니다. 딸이 수학에 대한 개념을 잡지 못하고 있을 때 처제가 강의하는 학원에서 수업을 들었습니다. 처제는 가끔 집에 와서 딸아이 수학을 봐주기도 했습니다. 그 덕분으로 딸은 수학의 약점을 극복하고 스스로 해내는 단계에 올랐습니다. 아마도 딸아이 이모가 한동네에 살면서 도와주는 운이 작용하지 않았다면 훨씬 어려움이 많았을 것입니다.


아들은 고등학교 배정 운이 좋았습니다. 자립형 사립 고등학교에 2대 1 정도 경쟁률의 면접과 추첨을 거쳐 입학했습니다. 고등학교에서 아들은 원하는 진로를 선택하기 위해 신문반 활동을 했습니다. 아들이 다닌 학교에서는 정기적으로 토론 대회를 개최했습니다. 아들은 사내 토론대회에서 준우승까지 하면서 토론에 대한 자신감을 키워갔습니다.


아들의 고등학교 성적은 인문계에서 상위권이었지만, 원하는 서울대학교에 수시로 갈 수 있을지는 장담하기 어려운 상황이었습니다. 수시에서 연세대학교 특별전형과 고려대학교는 서류 전형에서 탈락했고, 서강대학교만 합격했습니다. 그런 아들이 서울대학교는 최종 면접까지 왔습니다. 


아들은 결국 면접을 통과해서 합격했습니다. 토론 대회를 통해 갈고닦은 토론 실력이 면접에서 효과를 낸 듯합니다. 토론 대회를 개최하는 고등학교에 진학해서, 토론 실력을 쌓을 수 있었던 것도 어느 정도 운이었고 생각합니다.


지나친 행동은 어떤 것이든 인간들의 삶에 찾아올 때 필시 해를 끼치리라.  _안티고네(소포클레스)


ㅣ 운을 인정하고 자랑은 적게 한다 ㅣ


쌍둥이의 성취에 대해 겸손해야 하는 이유를 이런 '운'에서 발견합니다. 쌍둥이의 성취는 쌍둥이가 다른 아이들보다 뛰어나서라기보다 조금 더 운이 좋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대학교가 아이의 행복이나 앞으로 인생까지 좌우하는 전부는 아닙니다. 대학 입시라는 어려운 관문을 통과했지만, 앞으로 감당해야 할 그만큼의 책임이 남습니다. 운이 따른 덕분이라고 생각하면 큰 성취를 이뤘더라도 자만하거나 지나치게 자랑하지 않게 하는 겸손함을 줍니다.


언제든지 운이 따르지 않으면 실패하거나 좌절할 때가 옵니다. 운의 역할이 최소화되게 하려면 실력을 키워야 합니다. 운이 따랐을 때 '이것은 운이 따른 덕분이다'라고 어느 정도 인정해야만, 실력을 차근차근 키우는 걸 게을리하지 않습니다. 이것이 쌍둥이의 성취를 자랑하는 걸 조심하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아이를 위해서도 자랑은 조심해야 합니다. 자랑은 아이들의 자부심을 키워주기도 하지만, 지나치면 사소한 실패나 실수에도 아이가 부담을 크게 느끼게 하는 짐이 되기도 합니다.


부모가 아이의 성취를 운으로 돌리는 것은 그 나머지는 온전히 아이의 노력 덕분이라는 무언의 메시지입니다. 부모가 아무리 자식에 대해 자랑을 한다고 할지라도, 그 이면에는 부모의 역할에 대한 자기 자랑이 있습니다.


부모는 부모로서 역할을 할 뿐, 아이의 학업적 성취는 부모의 성취가 아니라는 마음가짐이 중요합니다. 그래야만 아이도 자기 공부, 자신의 인생이라는 자각을 갖고 스스로 공부하고 인생을 개척해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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