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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미야 Oct 03. 2018

나는 무엇을 본 것일까?

찰나의 순간, 면접에서 보지 못한 것들 

면접관으로 참여하다

LG디스플레이에서 마케팅 팀장으로 근무할 때였다. 연말에 대졸 신입 사원 면접이 있어서, 면접관으로 참여한 적이 있었다. 인사팀에서 메일로 받은 최종 면접 후보들의 리스트를 보면서 "아, 정말 대학교 졸업하고 취업하기가 힘들구나"라는 생각을 했다. 왜냐하면 총 12명의 최종 후보자들의 학벌과 스펙은 소위 SKY 혹은 해외 유학파가 전부였고, 영어점수, 동아리 활동, 사회경험, 그리고 본인이 LG에 입사해야 하는 분명한 이유 등, 어느 면에서도 우열을 가리기 어려울 정도였기 때문이다.


찰나의 순간, 단 30분

두 명씩 진행되는 면접 시간은 단 30분. 총 12명을 2인 1조씩 6개 팀으로 나눈다. 각 팀당 30분의 시간으로 진행되는 면접. 면접관은 상무급 임원 3명, 팀장 2명, 인사팀 1명으로 구성되어 있었고, 각 면접관은 모니터에 뜨는 평가표에 각 항목별로 1-5점 척도로 입력을 한다.


30분을 두 명으로 나누면 한 명당 15분이 주어질 것이고, 면접관이 던지는 이러저러한 질문 시간을 빼면 정작 본인이 자신을 소개할 수 있는 시간은 길어야 10분 남짓. 자칫 질문이 길어지거나 상대 후보자에 대한 면접 시간이 길어진다면 나를 보여줄 수 있는 시간은 10분 미만.


이제 써버린 카드는 더 이상 쓸모가 없다

그 판단으로 우리 팀으로 입사시킬 한 명을 선택해야 했다. 이제부터 학교, 스펙, 영어점수, 그리고 성별은 더 이상 변별력이 없다. 여기까지 왔으면 이미 써 버린 카드일 뿐. 면접관도 후보자도 모두 새로운 카드를 꺼내야 한다.


빠르게 오고 가는 질문과 답변. 정답도 오답도 없었다. "마케팅이란 무엇이라고 생각합니까?", "B2B와 B2C 마케팅의 차이점을 말해보세요", "다른 좋은 기업도 많은데 우리 회사를 지원한 이유가 무엇입니까?", "혹시 다른 회사에 입사해 놓고 보험용으로 지원하는 건 아닌가요?", "본인의 단점을 말해보세요" 이변은 없었다. 마치 예상했다는 듯 모범답안에 가까운 답변을 빠르게 쏟아낸다. 


아주 작은 차이로 선택을 하게 되고

결국 한 친구들 선택했다. 선택한 이유를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아주 작은 차이였겠지만 입사에 대한 간절함, 절박함, 진정성 이런 감정들이 나에게 전달되었기 때문이다. 상대 후보가 너무 긴장을 한 나머지 목소리가 약간 떨렸다는 점도 이 친구에게는 운으로 작용했겠지만.


그렇게 우리 마케팅팀에 입사한 새내기 친구가 입사 3개월이 지난 다음 문득 나에게 드릴 말씀이 있다고 오더니, 안 주머니에서 사직서를 꺼내서 퇴사하겠다고 한다. 본인이 원하던 회사에 중복 지원을 했었는데 방금 합격 통보를 받았다고 한다. 얼굴을 보니 이미 나에게 미안한 표정 따위는 아니다. 이번 기회가 아니면 너무 후회를 할 것 같다면서. 보내주지 않아야 할 이유를 굳이 찾을 필요도 없었다. 그렇게 준비하고 올 정도면 잡는다고 잡힐 상황이 아니라는 것을 경험상 잘 알고 있었다.


나는 무엇을 본 것일까?

문득, 그 목소리가 가늘게 떨리던, 탈락시켜야 했던 후보자의 얼굴이 떠올랐다. 과연 나라면 똑같은 압박 면접 상황에서 어떻게 대처했을까? 만약 그때 이 친구를 합격시켰더라면 어땠을까? 그리고 새로운 회사로 옮긴다는 이 친구는 이직에 대한 고민을 더 이상 하지 않을까? 여러 가지 생각이 머리를 맴돌다 머무르게 된 하나의 질문 - '나는 면접에서 무엇을 본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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